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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침77년, 진상규명 강력히 요구/우끼시마마루사건 희생자추도모임

2022년 08월 30일 14:22 력사

일제의 조선강점에 의해 수난을 겪은 조선인들이 해방후 조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실은 《우끼시마마루》가 교또 마이즈루앞바다에서 폭침된 사건이 발생한지 77년이 지났다. 올해도 진행된 우끼시마마루사건 77주년 추도모임(8월 24일)에서 참가자들은 희생자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하루빨리 사건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며 한결같은 마음을 가다듬었다.

참가자들은 《殉難의 碑》앞에서 손을 모아 희생자들을 추모하였다.

《우끼시마마루》는 1945년 8월 22일 수천명의 조선인을 실어 아오모리현 시모기따반도를 출항하였다. 하지만 당초 목적지였던 부산항이 아닌 교또부 북부의 위치하는 마이즈루앞바다에 와서 24일에 폭침되였다. 이 사건은 당시 일본정부의 발표에 의하더라도 500명을 넘는 희생자를 내였으나 77년이 지난 오늘에도 배가 폭침된 원인과 승객, 희생자들의 정확한 수는 밝혀지지 않고있다.

시민들에 의한 진상규명활동으로 인해 배의 폭발은 일본해군부가 자행한것이 아닌가고  추측되여있으나 일본당국은 사건의 진상을 숨기고있다.

우끼시마마루사건 77주년 추도모임에서는 총련본부와 녀성동맹, 조청, 류학동, 교또중고에서 20명의 동포들이 참가하였다.

처음으로 추도모임에 참가한 김영수청년(京都産業大学 4학년, 고베조고출신)은 《고급부시기 력사수업을 통해 사건에 대해 알게 되였다. 그 실태를 더 깊이 알고싶어서 추도모임에 참가하게 되였다.》고 한다. 그는 1978년부터 이곳 《殉難의 碑》공원에서 추도모임이 진행되여온 사실에 대해 《교또에 와서 알게 되였다. 일본시민들과 동포들이 함께 모임을 개최하고있는 점에 의의를 느꼈다.》고 하면서 《오늘 배운것을 실천에로 이어가곘다.》고 결심을 피력하였다.

추도모임은 코로나사태속에서 3년만에 정상개최되였다. 오래간만에 참가했다고 하는 녀성동맹교또 정영희부위원장 겸 조직부장은 공원에 배치된 《殉難의 碑》가 일본 미술교원들의 협력밑에 건립된데 대하여 언급하면서  《당시 마이즈루초급과 三丹지부 관계자들이 우끼시마마루사건과 관련된 사업을 일본시민들과의 대외사업, 우리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하였다고 생각하니 과거청산문제를 한사코 외면해온 일본정부에 대해 대를 이어 진상규명을 촉구해야 한다는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였다.》고 말하였다.

력사를 기억하기 위해

추도모임에 참가한 동포들

이날 추도모임에서는 3년만에 교또중고 성악부성원들이 추도가 《해당화 피여나네》를 불렀다. 이전 교또중고 국어교원이 작사한 이 노래는 매해 추도모임마당에서 불리우고있다.

성악부 주장인 김명심학생(고3)은 《억울하게 희생된 무고한 동포들을 추도하고 이 사건을 후대들에게 전해나가자는데 소조원들의 의견이 모아졌다.》고 말하였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력사를 기억하고 진상규명활동을 이어나가는것이다. 500명을 넘는 동포들이 희생된 현장에 와보니 더욱 학습을 잘해야겠다는 결심을 가다듬게 되였다.》(김명심학생)

총련교또 강세철위원장은 《우끼시마마루사건은 일제의 식민지지배이후의 력사적맥락속에서 일어났다. 력사수정주의와 맞서싸우고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앞으로도 일본시민들과 힘을 합쳐 활동을 전개해나가겠다.》고 강조하였다. (김사영기자)

(김사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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