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의 흔적을 찾아서/오끼나와


가해자로서의 일본의 력사를 부정하는 정치흐름이 로골화되고 이른바 력사수정의 풍조속에서 교육을 받은 세대들이 인터네트상의 류언비어를 《사실》로 알고 헤이트크라임을 일으킨 사건도 발생하고있다. 그러나 아무리 부정해도 사라지지 않는 력사의 흔적들이 지금도 일본각지에 남아있다.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지배의 력사, 조선반도와 일본의 인연이 깃들어있는 곳들을 소개해나간다.

죽어도 빼앗기지 않는 저항의 뜻/한의 비

한의 비

오끼나와현 중부에 위치하는 読谷村에는 전쟁에 동원된 조선인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비석이 있다. 일본시민단체가 중심이 되여 2006년에 건립한 《한의 비(恨之碑)》이다.

비석은 전쟁에 동원되여 억울하게 희생된 그들을 추모하기 위해 강인창씨의 발기로 건립되였다. 그는 오끼나와전쟁에 동원된 생존자였다.

비석에는 눈을 가리워 사형대로 끌려가는 로동자와 그의 발을 붙잡고 울부짖는 어머니, 그들의 뒤에서 총을 잡는 일본군인의 모습이 새겨졌다. 제작한 金城実씨는 《인간의 존엄은 죽음앞에서도 저항의 의사를 물려주지 않는다.》고 작품에 담은 뜻을 밝혔다.

희생자의 분렬/평화의 비

조선반도출신자들의 평화의 비

1995년 당시 大田昌秀県知事는 치렬한 전투가 벌어진 오끼나와전쟁의 비극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자는 맹세를 담아 평화기념공원(糸満市)안에 《平和의 碑》를 건립하였다. 비석에는 전쟁으로 희생된 군인과 민간인 24만 1, 632명(2021년 6월시점)의 이름이 새겨졌다.

여기에 조선반도출신자들의 비석도 있다. 그들이 태여난 당시 조선반도는 분렬되지 않았으며 전쟁으로 희생되였을 때 그들은 모두 같은 조선사람들이였다. 그런데 沖縄県은 희생자의 이름을 신청한 단체(총련, 민단)를 북과 남으로 판별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으로 비석을 나누며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겼다고 한다.

루명을 썼던 조선인/사끼마미술관

사끼마미술관

오끼나와현 宜野湾市에 위치하는 佐喜眞美術館은 米軍普天間飛行場의 일부토지를 되찾고 세워졌다. 여기에는 오끼나와전쟁의 실태를 현상한 하나의 작품이 전시되여있다. 관장인 佐喜眞道夫씨는 丸木位里, 俊부부가 제작한 《沖縄戦의 図》을 보고 이 그림을 오끼나와에 두고싶다는 념원을 품게 되였으며 10년의 세월을 걸쳐 미술관을 세웠다.

오끼나와전쟁 생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제작된 그림에는 《공작원》의 루명을 씌워져 억울하게 살해당한 구중회라는 조선사람의 모습도 그려졌다. 생죽음을 당한 그의 모습과 표정이 생동하게 묘사되여있다.

(김사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