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의 흔적을 찾아서/나가사끼


가해자로서의 일본의 력사를 부정하는 정치흐름이 로골화되고 이른바 력사수정의 풍조속에서 교육을 받은 세대들이 인터네트상의 류언비어를 《사실》로 알고 헤이트크라임을 일으킨 사건도 발생하고있다. 그러나 아무리 부정해도 사라지지 않는 력사의 흔적들이 지금도 일본각지에 남아있다.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지배의 력사, 조선반도와 일본의 인연이 깃들어있는 곳들을 소개해나간다.

《또 하나》의 강제련행섬/다까시마

바다너머에 보이는 다까시마

원자폭탄이 투하된 피폭지 나가사끼에서 전범국가와 기업에 의한 일본의 가해사실을 확인할수 있는 장소의 하나가 다까시마이다. 나가사끼항에서 배를 타고 약 35분의 거리에 있는 나가사끼반도 서쪽 앞바다에 위치한 有人島이다. 이른바 《군함도(하시마)》까지 가는 길에 위치한다. 일찌기 탄광업으로 《번영》한 이 섬에는  과거 하시마와 합하여 2만명이상이 살았으나 현재는 약 370명이 살고있다. 이 땅은 전쟁중 수많은 조선인로동자들이 강제련행되여 희생된 곳이기도 하다.

이름없는 희생자를 추모/공양탑

공양탑

공양탑(千人塚)은 다까시마항에서 섬내를 순환하는 뻐스를 타고 약 10분, 거기서부터 도보로 10분거리의 숲속에 위치한다. 1920년 4월에 三菱高島炭鉱이 건립하였다. 현재는 長崎市의 관리하에 있으며 출입금지구역으로 되여있다. 이 공양탑은 과거에 다까시마의 탄광로동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추도하기 위해 세워졌다. 지난 시기 이 안에 있었던 조선인, 중국인 등 희생자들의 유골은 현재 거기서 약 5분거리에 있는 金松寺 납골당에 보관되여있다.

숨겨진 력사/석탄자료관

석탄자료관

1988년에 개관한 石炭資料館은 三菱高島炭鉱과 관련된 자료를 보존, 전시하고있다. 지난 시기 탄광로동자들의 삶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나 자료 등 관내 전시물은 모두 일본의《近代化의 功績》이라는 표현으로 일관하고있다.

일본의 력사연구자인 竹内康人씨는 강제련행된 조선사람들이4, 000여명에 달한다고 추정하면서 《火葬認許証下附申請書》(1925년부터 45년까지의 일본, 조선, 중국인 사망자에 대해 기록한 자료)에 기초하여 45년까지 100명 가까운 조선인로동자들이 落盤에 의한 圧死, 窒息, 가스폭발 등으로 사망한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는 전후 三菱가 厚生省勤労局에 제출한 사망자명단에서 이 희생자들이 포함되여있지 않다고 지적하고있다.

(한현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