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 바로잡는 《열쇠》가 사도에/사도광산의 조선인강제로동


지난 시기 1,200명을 넘는 조선인들이 강제로동에 시달린 사도광산(니이가다현)을 일본정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 하고있다. 정부는 《江戸시대》의 금생산량과 채굴법에 《부가적가치》가 있다고 하는 한편 조선인강제로동의 력사를 부정하는 자세를 취하고있다.

이곳에서의 조선인강제로동실태를 알아내기 위해 사도광산을 찾았다.

조선인강제로동의 력사가 있는 사도광산

력사 알리는 자료

사도광산에서의 조선인강제로동은 1939년이후 본격화되였다.

광산로동으로 인해 심한 페염에 시달린 일본인로동자들이 불어나 출광실적이 떨어졌으며 많은 일본사람들이 출병되여 로동자수가 부족하게 되였기때문이다. 그 결과 1945년까지에 1,200명을 넘는 조선인들이 이곳에서 로동을 강요당하였다.

광산에서의 로동조건과 로동실태는 매우 렬악한것이였다.

조선인로동자들은 주로 착암, 운반 등의 위험한 현장에 배치되였다. 자료・佐渡鉱業所《半島労務管理ニ就テ》에 의하면 사도광산에 끌려온 조선인들중 140명이나 도망을 갔다는 기록이 있다. 이 한가지 사실만 보아도 조선인에 대한 극심한 로동강요와 민족적차별의 실태를 엿볼수 있으며 리직할 자유도 없었다는것도 알수 있다.

이곳에서의 조선인강제로동은 1991년 일부 조선인로동자들의 명부가 공개된것을 계기로 알려지게 되였다.

1991년에 공개된 명부의 일부. 《改姓届》라고 씌여졌다.

명부는 당시 이 광산에 담배를 팔았던 가게에서 발견되였다. 명부에는 44년부터 45년까지 동원된 조선인 230여명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기록되여있다. 이외에도 《抹消届》, 《異動届》, 《改姓届》등도 있어 귀국하거나 도망을 간 조선인, 다른 로동지역에로 파견된 조선인, 창씨개명을 당한 조선인의 이름이 적혀있다. 이 명부는 현재 佐渡博物館이 관리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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