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장군님 탄생 80돐〉백두산지구를 혁명전통교양의 대전당으로/거룩한 령도의 자욱을 더듬으며


량강도 백두산지구는 김일성주석님의 혁명력사와 투쟁업적이 깃들어있는 혁명의 성산 백두산과 혁명전적지들이 있는 유서깊은 땅이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주석님의 영생불멸의 업적을 빛내이고 영원히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온갖 로고를 바치시였다.

삼지연지구 혁명전적지건설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시는 김정일장군님(2009년 3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1968년 7월 항일혁명투사들과 함께 량강도안의 혁명전적지들과 혁명사적지들을 돌아보시였다.

당시까지도 삼지연지구의 혁명전적지들은 근 30년전의 상태그대로 방치된채 세월의 비바람속에 서서히 제모습을 잃고있었다. 초목이 성해지고 락엽이 덧쌓여 희미하게 나있던 길들과 숙영터들, 우물자리들은 쉬이 알아볼수 없게 묻혀버렸다.

이제 10년만 더 지나면 어디가 어딘지 분간조차 할수 없게 될것이였다.

동행한 항일혁명투사는 너무도 허전한 마음을 누를길 없어 삼지연에 온 소감을 물으시는 장군님께 여기에 귀중한 혁명사적이 깃들어있다는 표식비라도 자그마하게 세워놨으면 좋겠다고 하며 뒤말을 잇지 못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다하지 못한 그의 마음속말이 가슴을 저미시는듯 눈길을 드시고 천고의 밀림을 이윽토록 바라보시였다.

그럴수록 장군님의 심중에는 삼지연을 혁명전통교양의 대전당으로 꾸리실 원대한 구상이 더욱 불타올랐다.

장군님께서는 삼지연은 정깊은 고장이라고 하시면서 삼지연못가에는 수령님을 모시고 조국으로 진군하던 항일혁명투사들의 발자취가 새겨져있기때문에 앞으로 여기에는 표식비가 아니라 웅장한 대기념비를 세우고 인민의 문화휴양지로 훌륭히 꾸려 어버이수령님의 구상과 투사들이 그려보던 리상이 꽃펴나게 해야 한다고 절절히 교시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우리 당은 어떤 풍파가 닥쳐와도 수령님께서 이룩하신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100% 계승하고 100% 실현하여 수령님께서 념원하시는대로 조선혁명을 끝까지 완성해나갈것이라고 교시하시였다.

그이의 철의 신념이 맥맥히 굽이치는 가르치심이였다.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에로 참관자들의 대오가 끝없이 흐르고있다.(2020년 2월, 조선중앙통신)

그후 삼지연혁명전적지에는 정중히 모신 주석님의 동상을 중심으로 하여 여러편의 조각군상들, 혁명사적비 등으로 구성된 혁명사적대기념비가 훌륭하게 건립되게 되였다.

한편 보천보와 포평, 신사동, 청봉숙영지에 주석님의 동상을 정중히 모시고 혜산시에는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 대홍단벌에는 무산지구전투승리기념탑, 김형직군에는 포평혁명사적탑이 높이 세워졌다.

곳곳에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를 원상대로 잘 꾸리고 그를 통한 혁명전통교양의 바람을 세차게 일으켜주신 장군님이시였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1956년 6월, 10대의 어린시절에 백두의 혁명전통을 견결히 수호하고 빛내이실 억척같은 신념을 지니시고 평양제1중학교 답사행군대를 이끄시여 주석님의 거룩한 발자취가 새겨져있는 로정에 대한 행군에 나서신 때로부터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백두산지구를 여러차례 찾으시여 이곳 지구가 혁명전통교양의 대로천박물관으로 전변되게 하시였다.

혁명전적지의 군소재지답게

백두산기슭의 태고연한 원시림속, 궁벽하던 삼지연시가 아름답고 살기 좋은 인민의 고장으로 솟아난것도 장군님의 숭고한 사랑과 현명한 령도가 안아온 결실이다.

1963년 8월, 주석님을 모시고 삼지연마을을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림산로동자들의 가정을 돌아보시고 도의 일군들에게 혁명전적지에서 살고있는 인민들이 더 잘살도록 보살펴주라고 당부하시였으며 그후 또다시 삼지연군(당시)을 찾으시여 백두산의 관문인 삼지연읍을 잘 꾸릴데 대하여 거듭 간곡히 교시하시였다.

그리하여 인민들의 생활수준을 높이며 삼지연읍을 혁명전적지의 군소재지답게 잘 꾸리기 위한 사업에 달라붙었다.

삼지연시가 본격적으로 꾸려지기 시작한것은 1976년 여름부터였다.

그해 7월 삼지연을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무산지구전투(김일성주석님께서 1939년 5월 22일과 23일에 무산지구에서 조직지휘하신 전투. 일제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으며 100여일의 고난의 행군을 승리적으로 총화하고 국내인민들을 크게 고무하였다.)승리 40돐에 즈음하여 삼지연못가에 대기념비를 세우고 이 일대의 혁명전적지들과 사적지들을 더 잘 꾸리는것과 함께 삼지연읍을 훌륭히 건설할데 대한 설계도를 펼쳐주시였다.

주석님께서는 일찌기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거느리시고 삼지연못가에서 휴식하시면서 장차 조국을 해방한 다음 경치좋은 이곳 삼지연을 인민의 휴양지로 꾸리실 원대한 구상을 펼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주석님의 높으신 뜻을 받드시여 삼지연일대를 현대적인 휴양지로 변모시키면서 특히 삼지연읍을 혁명전적지의 군소재지답게 훌륭히 꾸려주시려고 각별한 관심을 돌리시였다.

그리하여 《김일성동지혁명사상연구실》과 학생소년궁전, 줄지어선 2, 3층짜리 현대적인 살림집들과 병원, 학교, 유치원과 탁아소, 상점과 식당들이 일떠섰다.

무산지구전투승리 40돐을 맞으며 1979년 3월 새집들이 경사로 흥성이는 삼지연을 또다시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삼지연읍의 새 거리를 오래도록 바라보시며 삼지연이 천지개벽을 했다고 못내 기뻐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2000년대에도 삼지연군을 여러차례 찾으시여 이곳 인민들의 생활을 보살펴주시였다.

산간문화도시의 표준으로

새로운 주체100년대 들어 삼지연시를 새시대의 요구에 맞게 꾸리는 사업이 추진되였다.

삼지연시는 오늘 산간문화도시의 훌륭한 표준, 리상적인 본보기지방도시로 전변되였다.

김정은원수님께서는 삼지연시는 장군님의 고향군이고 조선혁명의 발원지이며 혁명전통교양의 대로천박물관이라고 하시면서 삼지연시를 잘 꾸리는것은 장군님의 업적을 더욱 빛내이고 당의 혁명전통을 견결히 옹호고수하는데서 나서는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하나로 보시였다. 원수님께서는 몸소 설계가가 되시고 시공주, 건설주가 되시여 현지지도하실 때마다 새로운 높은 단계의 휘황한 설계도를 펼쳐주시고 건설물들의 부족점들도 하나하나 바로잡아주시면서 삼지연시건설이 최상의 수준에서 진행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그리하여 장군님의 불멸의 령도자욱이 어려있고 항일혁명투사들의 피와 땀이 스며있는 삼지연시는 산간문화도시의 훌륭한 표준, 리상적인 본보기지방도시로 전변되였으며 오늘은 전국의 농촌마을을 삼지연시수준으로 건설하는 사업이 적극 추진되고있다.

(조선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