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들의 위훈(5)/전국에 전파된 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


발단은 자그마한 아마공장, 자립경제의 토대축성

1959년 조선에서는 기계가 기계를 낳는 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의 불길이 세차게 타올랐다. 그후 줄기차게 벌어진 이 운동을 통하여 기계제작공업의 급속한 발전이 이루어졌으며 인민경제 여러 부문의 공장, 기업소들에서 자력갱생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1959년 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의 불길이 세차게 타올랐다.

이 운동의 발단은 전문기계공장이 아니라 조선의 북변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경공업공장인 주을아마공장(당시)이였다.

공작기계란 기계를 만드는데 리용되는 기계, 설비를 통털어 이르는 말이다. 여기에는 기계제품의 소재를 깎거나 갈거나 뚫거나 해서 가공하여 요구되는 형태를 만들어내는 기계, 부속품을 만드는데 필요한 주조, 단조, 프레스설비와 같은 소재제작설비, 금속절삭기계 등이 속한다.

전국이 5개년계획(1957년~61년)수행에 떨쳐나섰던 당시 도처에 수많은 공장들이 일떠서고 수많은 기계설비들과 부속품들이 요구되였다. 희천공작기계공장, 구성공작기계공장을 비롯한 전문기계공장은 있었으나 전문기계공장들의 능력만으로는 기계설비들을 원만히 보장해줄수는 없었다.

한편 일부 사람들은 공작기계와 같은 그런 복잡한 기계는 의례히 전문기계공장에서나 생산할수 있는것으로 알고 현존기계공장생산능력을 높여야 한다느니, 기계공장을 더 사들여와야 한다느니 하면서 빈 말공부만을 하고있었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1958년 9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철과 기계는 공업의 왕이다!》라는 구호를 제시하시고 공업부문에서 필요한 기계설비와 부속품들을 자체의 힘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전군중적운동을 벌리도록 로동계급을 힘있게 불러일으키시였다.

주석님의 교시를 높이 받들고 전국의 공장, 기업소들에서는 공작기계를 자체로 만들어 공무직장의 기술장비를 강화하기 위한 사업을 적극 벌리였다.

여러 공장, 기업소들에서 각종 공작기계를 만들어 설비와 부속품들을 자체로 생산보장하였다.

여기에서 선구자적역할을 한것이 바줄을 생산하는 자그마한 주을아마공장(함경북도 경성군)이였다.

당시 이 공장에 있던 공무동력설비로서는 피대선반 4대와 직결선반 1대가 전부였다. 하지만 공장의 로동계급은 1959년에 생산을 3배로 늘일 대담한 목표를 내세웠다.

높이 세운 목표를 실현하자면 많은 공작기계가 있어야 했는데 이를 자체의 힘으로 만들어낼것을 결심하였다.

공장의 일군들과 로동계급은 우선 볼트나 나트 등을 깎을수 있는 단능(単能)선반제작에 나섰다.

그런데 그 누구도 해본적이 없고 설계기술마저 없다보니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연하였다. 게다가 일부 사람들은 부속품도 똑똑히 못 깎으면서 선반을 만든다는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신심을 잃고 동요하였다.

공장에서는 6명의 핵심로동자들을 선반제작조의 기둥으로 선정하였으며 새로 내온 공무동력부에 공작기계에 파악이 있는 로동자들을 배속시키는 조치를 취하였다.

로동자들은 선철을 가열하여 녹이는 용선로를 개조하여 그 능력을 확장하였으며 선반을 만드는데 필요한 소재들도 파철무지에서 수집하여 리용하였다. 그리고 이미 있는 선반을 분해하여놓고 하나하나의 부속품들을 속사하여 주물하였으며 치차의 강도문제는 자동차의 변속장치를 리용하여 해결하였다.

그리하여 단능선반제작에 착수한지 4개월만인 1958년 12월에 드디여 선반을 만들어내였다.

그들은 이 경험에 토대하여 만능(万能)선반의 제작에 착수하였다.

그러던 때인 1959년 3월중순 이 공장을 찾으신 주석님께서는 로동자들이 자체의 힘으로 용선로를 만들어 쇠물을 뽑고 기계설비를 만든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고, 낡은 절삭기계 몇대를 가지고 자체의 힘으로 공작기계를 새끼친것은 용감하고 대단한 일이라고 치하하시였다.

이윽고 조립중에 있는 만능선반기를 보시고 로동자들을 고무해주시였다.

주석님의 현지지도에 고무된 공장의 로동자, 기술자들은 그후 무려 40여대의 공작기계를 생산하고 자기들이 생산한 공작기계로 기본생산설비들을 보수하였으며 필요한 기계까지 만들어 공장의 규모를 2배이상으로 늘이였다.

기계공장도 아닌 자그마한 아마공장의 로동계급이 제손으로 만든 한두대의 공작기계를 보시면서 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이라는 새로운 대중적운동을 구상하신 주석님께서는 평양에 올라오신 후 1959년 5월에 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 확대회의를 여시고 모든 공장, 기업소들에서 공작기계 한대가 한대이상의 공작기계를 새끼치는 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을 전군중적으로 벌릴것을 전투적과업으로 내세우시였다.

주석님께서는 백번 말해주는것보다 한번 보여주는것이 낫다고 보시고 회의 도중에 회의참가자들에게 각종 공작기계를 만들어 방적설비와 기계부속품들을 자체로 생산보장하고있었던 평양견방직공장과 평양방직공장을 보여주도록 하시였다.

상무위원들을 데리고 친히 공장들을 돌아보신 주석님께서는 자체로 기계설비를 보장한 경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시며 하자고 하는 사상만 있으면 못할 일이 없다, 이 사상이 바로 당의 사상이라고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그후 주석님의 교시에 따라 전국의 공장, 기업소들에서도 전문적인 공작기계생산직장 또는 작업반이 조직되였으며 국가에서 로력과 자재를 더 받지 않고 내부예비를 동원하여 공작기계를 한대라도 더 만들어내기 위한 대중적운동이 힘있게 전개되였다. 그리하여 불과 한해사이에 전국적으로 계획외에 1만 3,000여대의 공작기계가 생산되였다.

(조선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