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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축복받은 날에/량학철

환갑을 축복해준 제자들과 함께

해가 바뀌여 3주일이 지난 어느 날. 오사까조고 제37기 3학년6반동창회에 초대되여 나는 지정된 음식점으로 갔다.

조고를 졸업한지 30년이 지나서 하는 동창회라서 그런지 제자들에게는 한결 감회가 깊었던것 같았다.

하긴 언제부터였을가.《선생님, 이번 동창회에는 시간을 꼭 내여 참가해주셔야 합니다.》

동창회실행위원인 우리 학교 학부모의 《간절한》당부였다.

(아니, 3년전에도 참가했댔는데 뭘 새삼스럽게 자꾸만 강조하는지…)

반신반의였긴 하나 실지로 동창회마당에 가보니 아니나다를가 졸업30주년기념동창회는 나의 환갑축하모임을 겸한것이였다.

사업상 이따금씩 만난 제자들도 있거니와 졸업후 처음 보는 지극히 반가운 제자들도 참가했다.

만나 회포를 나누기도 바쁘게 진행을 맡은 동무가 조용히 말문을 떼였다.

《그럼 학생시기처럼 선생님한테서 우리 반 출석을 호명해받자고 합니다.》

일순 흐뭇한 웃음과 기대감이 함뿍 어린 얼굴들이 일제히 나더러 돌려지는것이였다.

(출석이라곤 이제껏 30년동안 불러보지 못했는데… 설마 동창회자리에서 부르다니!?)

어쩔바를 모르던 나의 손에는 학생들이 준비해놓은 출석부가 쥐여지는것이였다.

《강○○!》

《옛!》

힘주어가며 학생들의 이름을 호명해가노라니 이 학생들과 함께 하던 하많은 추억이 눈앞에 스치는듯하였다.

조대졸업후 대학원을 거쳐 일본대학 교수를 하는 12년간 최우등생, 도꾜에 시집간 후 아이를 모두 조선대학교에 보낸 편입생, 지역상공회 총무부장, 사업체 일군, 기업가, 의학박사, 간호사, 교원… 그리고 의당히 아이를 우리 학교에 보내여 꿋꿋이 계주봉을 이어가고있는 제자들. 그래 그속엔 금학년도 《꽃송이》현상모집1등, 중앙구연대회 금상을 쟁취한 우리 학교 학생의 아버지들도 있었거니.

내 기억에 남는 한 제자도  참가하고있었다.

중급부졸업후 일본고등학교에 가지 않으면 안된다던 그를 나는 장인, 장모에게 일부러 맡기기로 하였다. 입학전이였다 보니 장인이 경영하는 공장에서 로동하면서 며칠 지내기로 하였는바 장인내외간은 《아들》하나 생겼다고 친부모처럼 살뜰히 보살펴주었던것이다.

그런즉 마침내 조고에로 입학하게 된 그를 3년간 담임맡아 졸업시킨지도 30년, 추억의 갈피를 거슬러오르며 가뜩이나 감개무량하던 참에 그가  한 말이 또 내 가슴을 정히 울려주는것이 아니가.

《환갑을 맞이하신 오늘에도 선생님이 우리 학교 선생님으로서 우리들앞에 서계시는것이 동창생 모두의 자랑입니다.》

30주년동창회실행위원들이 품들여 준비한 화상편집묶음상영이 시작되였다.

30년전 수학려행으로 찾은 조국방문 그 나날의 감격과 기쁨이며 학창시절의 잊지 못할 숱한 청춘화폭들이 화면 그득히 연신 비쳐가자 동창회좌석은 형언 못할 그리움으로 하여 여기저기서 담소의 꽃이 피는것이였다.

오사까조고 제37기 3학년6반 30주년동창회는 교육일군된 나의 등을  뜨겁게 밀어주며 래일에로의 새 활력을 이 가슴속에 마냥 심어주었다.

《안○○》

《옛!》

출석번호 마지막이름을 부른다.

내가 《환갑》을 맞이했다고 들어 처음으로 동창회에 참가한 동무였다.

《다시 만나자.》

《응, 그때까지 잘 있어.》

졸업후 갈 길은 서로 달랐건만 민족교육의 화원에서 함께 배우고 자란 42명의 제자들,  《환갑》을 축복받은 날 30년세월이 흘러 맞이한 뜻깊은 동창회를 계기로 찬란한 개화기를 열어놓을 앞날에로 함께 활보할 미더운 동지가 되여주길 바라며 나는 귀로에 올랐다.

(이꾸노초급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