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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의 증인을 찾아서/공화국이 걸어온 70년의 로정 7〉《고난의 행군》시기 발휘된 혼연일체의 위력

2018년 11월 28일 14:55 공화국 주요뉴스

《강성대국에로의 대통로》, 5만명 청년들이 건설

5만명 조선청년들이 《고난의 행군》시기 약 42km의 웅대한 고속도로인 청년영웅도로를 세계에 보란듯이 건설해놓았다.

최악의 시기에 착공

평양시와 남포시를 잇는 약 42km의 웅대한 고속도로인 청년영웅도로는 《고난의 행군》시기 5만명 조선청년들이 세계에 보란듯이 건설해놓았다.

당시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중앙위원회 조직부 지도원으로서 1개 려단의 공사지휘를 담당하였던 로철현 청년운동사적관 관장(50살)은 청년영웅도로건설의 의의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청년영웅도로의 건설은 그저 도로건설이라는 단순한 실무적인 공사가 아니였다. 적대세력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일떠서는가를 보여주며 수령의 두리에 단결된 우리의 위력을 과시하기 위한 공사였다. 나어린 청년들이 이를 악물고 용약 건설에 떨쳐나섰는데 공사장은 련일 격렬한 싸움터와도 같았다.》

1990년대 조선인민은 말로써는 이루다 형언할수 없는 전대미문의 시련을 겪어야 했다. 조선언론들도 후날에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를 두고 생사존망의 위기였다고 돌이켜보군 하였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초, 쏘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국가들이 련이어 무너지고 제국주의자들은 저들의 《승리》를 요란스럽게 광고하였다.

그러던 94년 7월, 조선인민은 하늘같이 믿고 따르던 민족의 어버이 김일성주석님을 잃었다. 청천벽력같은 비보에 온 나라가 가슴을 에이는 슬픔과 통곡에 잠기였다.

엎친데 덮치는 격으로 대홍수가 모든것을 휩쓸어갔던가 하면 다음에는 왕가물이 모든것을 말리워버렸다.

한편 붉은기를 높이 추켜들고 사회주의를 고수하려는 조선을 고립압살하기 위해 제국주의자들은 사면팔방으로 책동하였다.

그런 속에서 인민들은 당시 《대용식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배를 곯았으며 추위에 떨었다. 가혹한 생활난속에 가슴아픈 희생도 있었다. 살아서 견디여내는것자체가 기적이라 할수 있는 최악의 위기였다. 서방에서는 《북조선의 붕괴는 시간문제》라고까지 떠들었다.

바로 그러한 시기 조선인민은 김정일장군님께서 구상하시는 강성대국건설의 튼튼한 토대를 닦아놓았던것이다. 숨죽은 공장을 살리고 나라의 쌀독을 채우는데 그치는것이 아니라 나라가 흥하던 때에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거창한 사업이였다. 안변청년발전소건설, 강원도로부터 시작된 토지정리 등도 그러한 사업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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