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비참한 종말은 민족과 력사의 준엄한 심판/남조선 전민항쟁에 관한 중앙통신사 상보
2017년 03월 22일 09:00 공화국조선중앙통신사는 21일 남조선인민들이 대중적투쟁으로 박근혜에게 철추를 내리고 친미파쑈독재기반을 밑뿌리채 뒤흔들어놓은 전민항쟁의 력사적사실을 전하기 위한 상보를 내였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남조선인민들의 대중적초불투쟁에 의해 만고역적 박근혜가 청와대에서 쫓겨났다.
박근혜는 심복의 총탄에 맞아 뒈진 애비처럼 민심의 초불에 타죽은 괴뢰대통령으로 남조선정치사에 치욕스러운 오명의 한페지를 남기였다.
조선중앙통신사는 남조선인민들이 대중적투쟁으로 희세의 악녀, 극악무도한 매국노, 민족반역자에게 철추를 내리고 친미파쑈독재기반을 밑뿌리채 뒤흔들어놓은 전민항쟁의 력사적사실을 전하기 위하여 이 상보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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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말부터 130여일간에 걸쳐 온 남녘땅을 뜨겁게 달구며 전개된 전민항쟁은 반인민적악정과 사대매국, 동족대결만을 일삼아온 독재의 원흉, 부정부패의 왕초 박근혜역도에 대한 남조선인민들의 쌓이고쌓인 원한과 분노의 폭발이였다.
남조선사회는 인민을 개, 돼지로 취급하며 《유신》독재부활과 반인민적악정으로 남녘땅을 중세기적암흑천지, 민주, 민생, 민권의 가장 참혹한 불모지로 전락시킨 박근혜에 대한 분노로 끓어번졌다.
바로 이러한 때인 지난해 10월 박근혜년과 최순실족속을 둘러싼 전대미문의 권력형부정부패, 《국정》롱락사건인 《박근혜, 최순실추문사건》이 터졌다.
박근혜가 측근들을 내세워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비법적으로 설립하고 부정축재해온 사실, 이 두 재단설립에 깊숙이 개입한 최순실이 박근혜집권 초기부터 역도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국정》을 좌지우지한 사실 등 사건의 추악한 내용들이 언론을 통해 드러났다.
남조선정치사에 류례없는 특대형부정추문사건에 사회는 죽가마끓듯 하였다.
바빠난 박근혜는 10월 25일 이를 시인한 《대국민사과》발표놀음으로 사회여론을 눅잦혀보려고 교활하게 책동하였으나 그것은 오히려 전민항쟁발발의 기폭제로 되였다.
《국민을 무시한 섭정권력의 실체가 드러났다.》, 《사상류례없는 국정롱단세력청산에 나서라.》, 《무법적권력의 지지기반은 완전히 무너졌다.》, 《국민들에게 호소한다. 이제는 모두 거리로 나서자.》라는 웨침이 남녘땅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속에 각계 단체들은 적극적행동에로 넘어갔다.
25일 인터네트에는 오는 29일 서울의 광화문광장에 초불을 들고 모이자는 글이 올랐다. 이 글은 26일 저녁무렵까지 2만 5,000여회 조회되였다.
28일 민주로총과 전국농민회총련맹을 비롯한 50여개의 단체들을 망라한 2016민중총궐기투쟁본부는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가지고 남조선각계층이 박근혜를 징벌하기 위한 초불투쟁에 떨쳐나설것을 호소하였다.
29일 2016민중총궐기투쟁본부와 각 지역 시민단체들의 주최하에 서울의 광화문광장을 비롯한 남조선 전지역에서 일제히 범국민행동이 전개되였다.
로동자, 농민, 야당의원, 교수, 가정부인, 로인, 대학생, 중, 고등학교 학생, 어린이 등 남녀로소모두가 분노의 초불을 켜들고 거리로 달려나갔다.
4.16련대와 백남기투쟁본부, 《싸드》배치저지전국행동, 민주주의국민행동, 진보련대 등 29개 투쟁단체들로 구성된 《11.12 박근혜퇴진촉구 시민대행진 추진위원회》는 박근혜에게 11월 12일 정오까지 《대통령》직을 사퇴하며 만일 국민의 명령을 끝내 거부한다면 범국민적투쟁으로 기어이 불법《정권》을 끌어낼것이라는 최후통첩을 들이댔다.
리화녀자대학교의 학생, 교원들이 시국선언을 발표한것을 발단으로 대학들에서 시국선언운동이 개시되였다.
이 운동에 남조선 전지역의 로동계, 농민계, 학계, 문화예술계 단체들은 물론 고등학교 학생들까지 합세하였다.
각 대학들에서 박근혜탄핵 대학생운동본부를 결성하고 투쟁에 진입하였다.
숙명녀자대학교, 성공회대학교, 동국대학교, 서강대학교, 전주대학교, 광주교육대학교 등 각 대학의 총학생회와 학생운동단체들을 망라한 박근혜《정권》퇴진 전국대학생시국회의가 조직되고 동맹휴학을 비롯한 공동행동이 벌어졌다.
문화예술인들이 박근혜퇴진과 시민정부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를, 그리스도교, 불교, 원불교, 천도교, 카톨릭교의 종교인들은 박근혜퇴진 5대종단운동본부를 조직하였다.
인천과 경기도, 대전, 전라남도, 부산, 광주, 남조선강원도, 제주도를 비롯한 전지역을 포괄하는 16개 지역에서 대책기구들이 구성되고 부문별, 지역별 운동본부, 시민행동, 시국회의, 대책회의 등 투쟁단체들이 늘어났다.
남조선강원도지역의 100여개 시민사회단체, 종교단체들은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강원행동을 결성하고 박근혜《정권》을 퇴진시키고 민주주의와 민생, 평화를 지키기 위한 제2의 6월인민항쟁을 선언하였다.
보수세력내에서도 박근혜에 대한 반감과 현 《정권》유지에 대한 위기감이 급격히 높아졌다.
《새누리당》내의 비박근혜파와 《7인회》를 비롯한 《보수원로》들, 학자들, 경상도지역의 전통적인 보수지지층도 박근혜에 대한 환멸감을 표시하며 물러날것을 주장해나섰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들까지도 박근혜가 그대로 버티고있으면 민심이 더욱 악화된다고 하면서 역도년의 《하야》를 요구하였다.
용암마냥 이글거리던 분노에 찬 민심이 터친 《박근혜탄핵!》, 《박근혜하야!》의 함성은 서울에서부터 제주도에 이르는 온 남녘땅에 울려퍼졌다.
삶의 무덤, 자유의 무덤, 인권의 무덤, 희망의 무덤을 불사르기 위한 투쟁의 초불이 료원의 불길이 되여 전지역으로 급속히 확대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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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에서의 초불투쟁은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전민항쟁이였다.
지난해 11월 9일 2016민중총궐기투쟁본부와 시민사회단체련대회의 등 전지역의 1,550여개 단체들로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비상국민행동)이 결성되였다.
비상국민행동은 각 지역의 투쟁상황을 신속히 집계하면서 선전수단들을 통해 매 단계의 투쟁방향과 일정, 집회의 주제와 행동방식, 준비품 등을 통일적으로 알려주면서 초불투쟁을 조직적이며 대중적인 항쟁으로 승화시켜나갔다.
이 나날 비상국민행동에 망라된 단체들의 수가 2,300여개로 늘어나 항쟁대오는 더욱 확대강화되였다.
민주세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던 친미보수《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보다 위력한 투쟁에로 넘어갔다.
보수, 부패세력의 소굴인 청와대와 《정부》, 《국회》청사, 《총리》공관앞은 박근혜탄핵을 위한 주요 집회 및 시위장소로 화하였다.
시위군중은 남조선항쟁사상 처음으로 청와대 100m앞까지 진격하여 반동의 아성을 초불로 에워싸고 역적무리들과의 전면대결전을 벌리였다.
항쟁참가자들은 인민들이 흘린 피의 대가가 헛되이된 지난 시기의 교훈들에 립각하여 민중이 주인된 새 제도, 새 사회, 새 세상을 이룩하는것을 투쟁목표로 제기하였다.
그들은 단순히 박근혜를 탄핵하는데 그치지 않고 선거제도를 개선하고 로동자들에 대한 기본임금제를 보편화하며 재벌위주의 특권적인 경제정책을 페지하는것, 남북관계를 회복시키며 조선반도핵문제해결과 평화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회담을 재개하는것, 미국의 《싸드》배치와 일본《자위대》의 조선반도진입을 막고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과 일본군성노예문제《합의》를 무효로 하는것 등을 10대과제로 내세웠다.
청소년학생들이 각계층과 함께 들고일어나 련일 투쟁기세를 올리였다.
그들은 《분노하라 청년이여!》, 《4.19혁명과 5.18광주민주화운동, 6월민중항쟁의 전통을 살리자!》, 《우리가 앞장서서 혁명정권 세우자!》 등의 구호들을 추켜들었다.
이에 질겁한 괴뢰보수패당은 《청년층이 정치활동의 전면에 나섰다.》, 《〈전대협〉이나 〈한총련〉과 같은 학생운동조직들이 부활될수 있다.》고 비명을 질렀다.
나어린 소년, 소녀들도 《최순실의 나라에서 더이상 살수 없다.》, 《박근혜는 하야하라.》 등의 구호를 웨치며 초불투쟁에 합류해나섰다.
고등학교 학생들은 대학입학시험을 마치는 길로 박근혜퇴진투쟁에 진입하였다.
력대적으로 정치와 거리를 두고 대중투쟁에 잘 나서지 않은것으로 하여 《최후의 시위세력》으로 불리워온 변호사들, 공무원들, 체육인들, 애기어머니들까지 시위대오에 들어섰다.
가장 극우보수적인 인터네트모임의 성원들도 《박근혜는 자기를 지지한 사람들을 바보로 만드는 가장 나쁜짓을 했다.》, 《박근혜를 빨리 버려야 한다.》고 하면서 반역집단을 압박해나섰다.
소속과 정견, 성별과 나이에 관계없이 모두가 박근혜탄핵투쟁에 떨쳐나섰다.
10월 29일에 전개된 1차 초불투쟁으로부터 12월 3일 6차 초불투쟁까지의 기간 서울에서 연 503만여명, 지방에서 연 128만여명이 대규모집회와 시위에 참가하였다.
지난해 10월말부터 올해의 3월 11일 박근혜탄핵을 경축한 날까지 20차례나 전개된 대중적초불투쟁은 참가자수에서 연 1,700만명이라는 인민항쟁사상 최대의 규모를 기록하였다.
특히 12월 3일에 있은 초불집회규모는 232만명으로서 리승만역도를 거꾸러뜨린 1960년 4.19인민봉기와 군부파쑈독재를 끝장낸 1987년 6월인민항쟁을 훨씬 뛰여넘었다.
각지에서 뻐스와 렬차 등 수송수단들이 모자랄 정도로 수많은 군중이 주말마다 대규모초불집회가 진행되는 서울과 주요도시들에로 모여들었다.
전민항쟁이 다양한 형식과 방법으로 진행되였다.
민심의 의지가 담긴 단두대와 상여, 박근혜년을 가두어넣은 교도소모형을 비롯한 가장물들이 투쟁의 광장들에 련이어 출현하였다.
풍자투쟁열풍이 고조되는 속에 박근혜일당의 추악한 꼴을 담은 인형들, 조형물, 그림, 노래, 소설, 극들은 사회적으로, 인격적으로 완전히 매장된 역적무리의 비참한 종말을 예고해주었다.
역적무리를 하나의 바줄에 묶어 처형하는 모습을 연출하거나 박근혜년의 말투를 유모아적으로 조소하는 방식, 청와대에 집단적으로 년의 해임명령서를 발송하는 행동, 뻐스시위, 오체투지행진, 건물벽에 민심을 반영한 글 새기기, 《박근혜정권 생명연장의 꿈이 꺼지기 바란다》는 취지에서 1분간 일제히 초불과 LED등, 손전화기조명을 끄는 《저항의 1분》행사 등 투쟁은 나날이 새롭게 전개되였다.
상점, 식당 등의 경영자들, 공무원들은 출입문과 창문, 건물벽들에 《박근혜탄핵》, 《박근혜는 퇴진하라》라는 현수막들을 걸어놓고 초불투쟁에 지지성원을 보내였다.
각계층은 장기투쟁으로 넘어가는데 맞게 대규모초불투쟁과 함께 공동성명발표, 손전화기와 인터네트를 통한 탄핵청원 등 다양한 형식들을 적극 배합해나갔다.
박근혜퇴진싸이트, 초불집회싸이트들이 개설되여 역도년의 퇴진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이 활발히 벌어졌다.
인터네트에서 1,000만명 온라인초불집회가 진행될 때 전라남도 려수시 거문도앞바다에서는 《룡왕님이 노하셨다, 당장 퇴진하라》, 《박근혜 즉각 구속수사하라》 등의 구호들을 내붙인 10척의 배들이 렬을 지어 고동소리를 울리며 해상시위를 벌리였다.
언론계도 대중적초불투쟁에 합세해나섰다.
신문, 통신, 방송들이 초불투쟁소식을 긴급속보로 다루면서 민심의 요구와 주장을 상세히 보도하였다.
항쟁전기간 주요인터네트홈페지들에 게시된 초불집회소식이 2008년 미국산소고기수입반대투쟁때의 근 3배인 9만 3,520여건에 달하였다.
로동자들은 굴착기로 괴뢰서울중앙지방법원을 들이쳐 출입문과 시설물들을 짓뭉갰고 농민들은 각지에서 뜨락또르를 비롯한 농기계들을 몰고 서울로 진격하였다.
한 종교인은 《한일군사협정 비판, 박근혜대통령은 내란사범, 즉각 물러나라… 경찰은 내란사범 박근혜를 체포하라… 경찰은 해산하라… 나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이라는 글을 남기고 몸에 불을 달아 항거하였다.
《자유한국당》으로 간판을 바꾼 이전 《새누리당》사에 내걸었던 《국민여러분 죄송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격노한 군중의 썩은 닭알세례로 얼룩졌고 여당의 기발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박근혜가 《정치적고향》으로 여기는 대구에서 역도의 사진이 휴지쪼박이 되고 도로바닥에 그려놓은 년의 상통과 특대형부정추문사건을 풍자한 그림들을 짓밟는 행사가 진행되였다.
경상북도에서는 격노한 시위자들에 의해 박정희족속이 살던 집이 불에 타고 《박근혜는 자살하라.》 등의 글이 거리들에 나붙었다.
초불을 형상한 LED등을 비롯하여 소도구들과 선전물들을 제작봉사하고 시위자들에게 식사를 보장해주는 항쟁지원열기가 거리와 마을들을 휩쓸었다.
남녘인민들의 거세찬 박근혜탄핵초불투쟁에 발맞추어 미국, 일본, 카나다, 프랑스, 도이췰란드 등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살고있는 동포들도 련대적인 초불투쟁과 시국선언운동, 시위행진을 벌리였다.
남조선인민들은 물론 우리 동포들이 사는 그 어디서나 광범하게 벌어진 박근혜퇴진투쟁은 역도년의 숨통을 시시각각 옥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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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민주, 통일의 새 세상을 안아오기 위한 남조선인민들의 전민항쟁은 사대매국, 보수세력과의 첨예한 대격전이였다.
지난해 12월 9일 《국회》에서의 탄핵안통과로 궁지에 몰린 박근혜와 그 일당은 《헌법재판소》에 탄핵리유를 인정할수 없으므로 기각되여야 한다는 《답변서》를 제출하고 특검의 청와대수색령장집행을 거부하였다. 지어 부정추문사건을 놓고 《오래전부터 기획한것이 아닌가 하는 점을 지울수 없다.》, 초불시위는 《체제를 반대하는 세력의 결합이다.》고 떠벌이면서 어떻게 하나 탄핵사태를 역전시켜보려고 발악하였다.
세인을 경악케 하는 특대형부정추문사건이 반동적통치기반을 붕괴시키는 무서운 정치태풍으로 화하는데 바빠난 박근혜는 궁지에서 헤여나기 위해 《대통령》비서실장과 청와대 수석비서관들, 《문고리3인방》으로 불리우는 최측근 비서관들을 사퇴시키는 기만극을 벌려놓았다.
죽을 죄를 지었다며 머리를 조아리던 최순실도 첫 재판에서부터 범죄를 모두 부인하다못해 뻔뻔스럽게도 무죄를 주장하였는가 하면 괴뢰서울중앙지방법원은 삼성전자 부회장 리재용에 대한 구속령장을 기각시키였다.
괴뢰보수패당은 박근혜의 집권행적을 극구 찬양하는 《치적》백서발간놀음을 벌리는 한편 낡아빠진 반민족적, 반통일적, 반인민적정책을 고수하려고 발광하였다.
공범자인 괴뢰대통령권한대행 황교안은 특검의 청와대수색과 수사기간연장을 가로막았으며 괴뢰정보원은 고위공직자들의 업무용손전화기를 페기처분하여 범죄증거들을 없애버리려고 책동하였다.
청와대관계자들과 보수떨거지들은 깡패들을 내몰아 《북풍》조작과 맞불집회란동으로 남조선사회에 살벌한 살륙과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역적패당의 비렬하고 악랄한 책동은 군중의 격분을 더욱 자아내게 하였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과 각계층은 이번 초불혁명이 지난 1987년의 6월항쟁처럼 미완성의 시민혁명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박근혜가 말로 해서 물러나지 않으면 힘으로 끌어내자고 하면서 투쟁의 강도를 계속 높여나갔다.
시위군중은 《박근혜탄핵만이 초불을 든 국민의 응어리진 마음을 풀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박근혜없는 봄을 위해 초불을 더 높이 들자.》고 웨치며 보수패당과 끝까지 싸울것을 다짐하였다.
탄핵안의 《국회》통과이후 박근혜를 권력의 자리에서 끌어내린 날까지 대규모초불투쟁이 무려 13차례에 걸쳐 전개된것은 불의를 용서치 않으려는 항쟁참가자들의 드팀없는 의지의 과시였다.
이 나날 항쟁참가자들은 새해 첫날과 정월대보름, 설명절에도 그리고 온몸이 얼어드는 강추위와 눈비속에서도 낮과 밤을 이어가며 싸웠다.
각성된 인민들의 힘찬 투쟁에 의해 마침내 특검과 《헌법재판소》는 3월 6일과 10일 각각 역도년의 범죄혐의를 확정하고 탄핵을 최종결정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피의 바다가 재현될것》이라느니 뭐니 하며 진보세력을 위협하던 박근혜의 잔당들은 년의 파면이 선고되자 복통이 터져 죽어자빠지는 등 해괴망측한 몰골을 보이였다.
세계언론들은 박근혜탄핵심판과 관련하여 《남조선국민이 대통령을 파면시킨 사상초유의 혁명》, 《사상 최장기간, 최대규모로 폭발한 절대다수 민중의 분노》, 《134일간 쉬임없이 불타오른 초불혁명의 위대한 승리》, 《정의가 구현된 새 시대로 나아갈수 있는 발판》 등으로 광범히 보도하였다.
남조선인민들의 전민항쟁은 친미파쑈독재집단의 반동적통치기반을 밑뿌리채 뒤흔들어놓았다.
지금 남조선에서는 청와대의 통치력이 마비되고 보수의 《전통지지터밭》인 경상도지역에서 박근혜와 반역정당에 등을 돌려댔으며 행정부 관료들은 분노한 민심에 기가 눌리워있다.
박근혜를 권력의 자리에서 끌어내린 력사적인 이 초불투쟁은 반파쑈, 반독재민주화투쟁형식의 하나로 되였다.
정세전문가들은 이번 초불투쟁이 교활한 보수세력의 수에 넘어가지 않았다, 시민세력이 보수집권세력을 크게 이겼다, 기존의 리론으로는 도저히 설명할수 없는 이변이 일어났다고 분석하였다.
시민사회단체, 청년학생단체, 종교단체, 야당들은 성명, 론평, 담화, 기자회견 등을 통해 줄줄이 쏟아져나온 권력형부정부패사태는 보수세력자체가 얼마나 거대한 범죄집단, 반민중적집단이였는가를 잘 보여준다고 하면서 박근혜를 넘어 보수《정권》자체를 갈아엎고 국민이 주인된 새 세상을 세워나갈것을 호소하고있다.
《초불시민은 부당한 권력을 탄핵시키는것이 끝이 아니며 새로운 세상을 향한 긴 려정의 시작임을 안다.》, 《아래로부터 민주주의력량을 성장시키자.》, 《대학과 작업장, 지역사회에서 우리모두 거인이 될수 있다. 곳곳을 광화문으로 만들자. 광화문에서처럼 싸워 승리하자.》, 《60년 해묵은 부패와 적페를 청산하고 사회 전부문에 똬리를 튼 모든 특권, 차별과 싸워 모두가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스스로 참여해야 세상이 좋아진다고 각성하게 된 이번 경험은 력사적전환점이 될것이다.》 …
남조선각계층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과 각 분야의 개혁을 위한 요구사항을 담아 2017초불권리선언을 발표하였다.
선언을 통해 그들은 재벌체제개혁, 공안통치기구개혁, 정치, 선거제도개혁, 좋은 일자리와 로동기본권, 사회복지, 생존권, 남녀평등과 사회적소수자권리 보장, 남북관계와 외교안보정책개혁, 언론개혁 등을 초불혁명의 과제로 제기하였다.
남조선인민투쟁사에 뚜렷한 자욱을 남긴 전민항쟁은 박근혜와 같이 인민의 머리우에 군림하여 민중의 지향과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부정의의 세력은 반드시 멸망하며 정의와 진리로 뭉친 인민의 힘은 그 무엇으로써도 막지 못한다는것을 보여주었다.
남조선에서 4.19인민봉기, 6월인민항쟁과 같이 대중적항쟁들이 벌어졌지만 이번처럼 수백만대중이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지펴올린 정의의 초불로 반동통치의 괴수를 탄핵시키고 친미보수세력의 명줄을 끊어놓은 사변은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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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와 보수패당의 가련한 처지는 사대매국과 동족대결, 반인민적악정과 파쑈통치, 부정부패를 일삼아온 만고죄악이 가져온 응당한 결말이다.
인민의 목소리, 인민의 의지를 거역한 역적무리의 무덤행은 력사의 필연이다.
남조선인민들은 박근혜를 전민항쟁의 홰불로 단호히 심판한 그 기세, 그 열기로 력사와 민족의 오물들을 종국적으로 매장하고 민중이 주인된 새 정치, 새 제도, 새 사회를 안아오기 위한 대중적투쟁에 힘차게 떨쳐나서고있다.
(조선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