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묶음 《삶의 이야기》 눈물


기쁨도 슬픔도 파문체럼 전해지고 이어진다

기쁨도 슬픔도 파문체럼 전해지고 이어진다

돌쪼각/허윤자

3년전, 5학년생이였던 맏아들이 돌쪼각을 손수건에 곱게 싸서 보물처럼 소중히 집에 가져온 일이 있었다.

아들은 그것을 조용히 내앞에 내밀어놓았다.

《이게 뭐냐? 돌쪼각을 어데서 가져왔니?》

《학교 건설장에 떨어져있었던 돌쪼각이예요. 추억이 깃들어있으니 간수할래요.》

東日本大震災로 인하여 가뜩이나 교사가 낡은지라 여기저기 금이 가서 위험하다고 판단한 온 동포, 학부모들이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하여 《새 교사 건설운동》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

1세동포들의 피와 땀 그리고 수많은 눈물과 감동이 스며있는 낡은 교사를 중기로 헐어서 새로운 교사를 지을 준비가 척척 진행되고있었다.

학생들은 사라져가는 낡은 교사에서 배우며 노래하던 추억과 웅장하게 일떠설 새로운 학교 모습을 그려보며 설레이는 기대감이 어린 가슴속에 소용돌이치고있었겠지.

1세분들의 넋을 가슴에 새겨가자고, 마음의 보물로 고이 간수하려고 소중히 집에 가져온 돌쪼각…

문득 생각이 나서 주어온 돌이긴 하나 맏아들의 가슴속에 어느새 민족의 마음이 남몰래 싹튼것 같아 소박한 아들의 소행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학교창립 70돐을 맞는 뜻깊은 올해!

동포들과 아버지, 어머니들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하여, 東京조선제1초중급학교를 빛내이기 위하여 아이들은 오늘도 힘차게 발걸음을 내디딘다.

칼바람 부는 이국땅 일본에서 우리 아이들의 힘찬 조선노래소리가 울려퍼질 때 동포들과 학부모들은 똑똑하고 용감한 우리 아이들의 모습에 무한히 고무되여 그 언제나 감동과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하여 밝은 미래를 향해 웃으며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더는 차별받지 않는 세상에서 살수 있도록, 자랑스런 조선민족의 한 성원으로서 가슴펴고 살아갈수 있도록 어른들은 오늘도 고민하며 행동하는것이다.

《高校無償化》적용과 조국통일성사…

이루어야 할 과제는 많을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이 《돌쪼각》을 소중히 간수하는 기특한 마음을 곧바로 키워갈수 있도록 어른들이 본보기가 되여 그 앞을 걸어가고싶다.(녀성동맹 東京 荒川지부 자녀교양부장)

통일의 모습/김명희

북과 남 일본의 많고많은 무대에 서왔지만 잊을래야 잊을수 없는 무대가 있다. 그중의 하나가 2000년 12월에 진행된 서울공연이다. 금강산가극단 결단이래 처음으로 진행된 이남공연, 이역의 찬바람속에서 주체예술을 꿋꿋이 지켜오신 선배들이 꿈속에서도 그려본 고향공연이였다.

금강산가극단에 입단하여 영광스러운 조국의 무대에 서는것이 저의 첫째 꿈이였고 그 다음 목표가 우리 말로 이남땅동포들에게 인사를 드리는것이였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서자란 고향땅에 아직은 아버지, 어머니도 가보지 못한 그 당시 자기가 먼저 가게 되는 송구스러움이 기쁨보다도 앞섰던것을 어제일처럼 기억한다.

이남땅에 첫발을 내디딘 순간, 나는 신기한 감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여기가 진짜 처음 와보는 곳일가? 이 그리운 느낌은 무엇일가? 이남동포들이 어쩐지 그리운 할머니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이남동포들은 우리가 《말이 통해서 좋다》며 뜨거운 혈육의 정으로 따뜻이 부둥켜안아주었다.

일본에서 나서자란 저희들의 공연이 이남동포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기대와 불안이 엇갈리는 가운데 무대에 나선 나를 향해 혈육의 정 넘치는 뜨거운  박수갈채가 객석에서 터져올랐다.

《정다운 이남동포여러분! 우리 드디여 왔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서자란 고향땅에 우리 드디여 왔습니다.》

드디여! 정말 드디여… 저의 눈가에서는 절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반세기를 넘는 기나긴 세월,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을가…

하나된 감격으로 무대가 울고 객석이 울고 공연장이 눈물바다로 휩싸인 그날, 우리의 노래소리는 금강산가극단을 안아키워준 조국의 하늘가에 울려퍼졌다.

공연후 모든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연회석상에서 어깨겯고 눈물속에 부른  《우리의 소원》을 저는 지금도 잊을수가 없다.

그날 우리는 북도 남도 해외의 구별이 없는 하나의 대가정이였다.

그것이 바로 내가 본 《통일》의 모습이였다.

언어도 피줄도 노래도 하나인 우리 민족! 금강산가극단공연이 이남땅에서 자랑차게 진행된 그 시각, 공연장은 통일의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12월이 올 때마다 겨울의 랭기는 도리여 나에게는 통일의 뿌듯함을 되살리게 해준다.(금강산가극단 공훈배우)

조국과 더불어/김대연

조국의 배려로 1990년부터 모든 고급부 3학년생들이 수학려행으로 조국방문의 길에 오르게 되여 학생들은 조국땅 이르는 곳마다에서 눈물을 많이도 흘렸다.

지난 7월 오매에도 그리던 조국땅을 밟은 우리 학교 고3학생들 역시 그러하였다.

금수산태양궁전에서, 련계학교를 비롯한 여러곳의 공연마당에서, 친척면회, 조국을 떠나기 전날 밤에 열린 연회마당 그리고 당일 아침 비행장에서…

보름동안의 조국방문중 가는 곳마다에서 조국의 따뜻한 사랑을 온몸으로 느껴 흘린 학생들의 눈물에는 아무런 가식도 꾸밈도 없었다. 하기에 이역땅 일본에서 고생하는 우리 학생들을 친부모, 친동생처럼 대해준 조국인민들 역시 그들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조국인민들이 자기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직접 보고 크게 감동된 학생들은 여느때없이 조국을 한층 몸가까이 느끼게 되여 앞으로는 이역에서도《조국과 더불어》

살아갈 결심을 가슴깊이 새기군 하였다.

허나 오늘 반공화국, 반총련 광풍이 쉴새없이 휘몰아치는 일본땅에서《조국과 더불어》

살겠다는 마음을 간직해나간다는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리상》과 《현실》의 갈등속에 모대기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당시 세계적으로

류행한 SARS영향에 의해 유일하게 모두 조국방문을 못했던 2003학년도 졸업생들의 생각이 자꾸만 났다.

고3이면 당연하게 수학려행으로 조국을 방문할줄 알던 그들이 흘린 슬픔과 억울함의

눈물모습, 그후 많지는 않았으나 섣달 강추위속의 조국을 힘들게 찾아간 학생들이 좋을

때만이 아니라 힘들 때일수록 우리에게 더 큰 사랑을 돌려준 《조국과 더불어》 살아가

겠다고 울면서 이야기한 그때의 광경이 지금도 눈에 삼삼하다.

지난 조국방문시의 공연에서 한 녀학생은《조국이 우리를 따뜻이 불러주듯이 우리도 조

국을 뜨겁게 따르고싶다.》는 내용이 담긴 결의시를 읊었다.

학생들의 맑은 눈동자와 순진한 마음 그리고 학생들이 제몸으로 느끼던 《알고 받는 사

랑보다 모르고 받는 사랑이 더 크다》고 하는 말에 접하면서 나자신 그들과 함께《조국

과 더불어》 살아갈 결심을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흘린 눈물수만큼 가슴깊이 아로새겼다. (大阪조고 교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