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상실의 아픔 이겨내고 《우리 분회장》의 뜻 이어가리/조광훈


총련도꾜 오따지부 마고메분회 고 김맹 분회장을 추모하여

총련도꾜 오따지부 마고메분회장을 근 40년간 해온 김맹 분회장이 오랜 투병생활끝에 7월 14일 73살을 일기로 서거하였다. 육친을 잃은것과 같은 상실감과 슬픔이 동포들의 가슴을 때린다.

《우리 분회장》이라고 누구나가 정을 담아 불렀다. 락천적이며 성실하고 수수한 인품은 동포들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김맹 분회장은 마고메분회의 공로자였다.

최근 2년간 총련 오따지부사업의 중심은 도꾜제6초급의 새 교사건설사업이였다. 마고메분회는 김맹 분회장을 선두로 새 교사건설기금사업과 준공식에 많은 동포들을 동원하는데 주력하였다.

우리 분회에서는 명단화된 59호를 전호방문하여 기금에 대한 협력요청과 준공식참가를 호소하였는데 분회장은 다리아픔을 참고 예정된 호수를 우리와 함께 방문하였다. 그 희생정신에 머리가 수그러졌다.

분회동포들속에 깊이 들어간 결과 총련결성 60돐경축 재일동포대축제나 새 교사 준공식에 많은 동포들이 참가하였다.

마고메분회에서는 1세들의 유산을 잘 관리운영함으로써 2009년에 유치반 뻐스를 구입할 때나 구 교사보수수리사업 그리고 학교운영의 방조금으로서 적지 않은 돈을 희사하였으며 동일본대진재 복구지원사업에도 적극 나섰다.

김맹 분회장은 근 40년간의 분회장사업을 통하여 가장 기뻤던 일은 분회의 독자적재원을 확보하고 학교와 분회동포들에게 환원해줄수 있었던것이라고 하였다.

늘 동포들에게 봉사하고 동포들의 기쁨을 자기의 기쁨으로 여기는 분이였다. 분회장의 부인인 주숙자씨는 《책임성이 강하며 남을 위하는 일념으로 성실히 일해온 남편이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아들, 딸들도 그런 아버지를 존경하며 자랑으로 여기고있다.

감사, 위로하는 모임

마고메분회와 김맹 분회장의 이름은 떼여놓고 생각 못하며 그의 로고는 대단히 크다. 하기에 올해초 분회신년모임의 석상에서 분회장에게 감사를 드리고 위로하자는 제기가 있었을 때 모두가 찬성해나섰으며 총련과 녀성동맹이 합동으로 준비사업을 맡아하였다. 4차례의 사전협의를 가지고 분회동포들에게 모임의 취지를 알리고 적극 참가할데 대하여 호소하기도 하였다.

모임에는 36명의 동포들이 참가하였다. 분회장에게 감사장을 전달하고 기념품으로 손목시계를 드리였으며 녀성대표 2명이 분회장부부에게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이날 모임은 마고메분회의 력사를 엮은 자료가 배포되였다는데도 의의가 있었다.

사진첩에는 2중모범분회칭호를 쟁취한 시기의 1세 동포들의 사진이 수록되여있으며 연혁사와 력대 분회장 명단, 《조선신보》에 게재된 분회활동에 대한 기사 등 귀중한 자료들이 있다.

이것을 모임에 참가한 모든 동포가정에 기념으로 나누어주었다. 젊은 세대들이 마고메의 전통을 이어줄데 대한 기대를  담아서였다.

기념촬영후 회식을 하였는데 참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즐겁게 진행되였다.

이날 분회장은 모임을 조직해준데 대해 사의를 표하고 앞으로도 분회사업에 투신할 결의를 다지였다. 그날로부터 4개월, 분회장은 너무도 일찌기 세상을 떠났다.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총련지부집행위원회에서 마고메분회가 토론을 하게 되여 분회장의 자택에서 토론내용을 검토하였다.

협의가 끝날 무렵 분회장은 조국해방 70돐기념야회의 초롱(提灯)설치를 걱정하였다. 40년간 초롱을 해마다 설치해온 분회장이였다.

총련지부고문이 설치는 지부위원장이 맡아하게 되였으니 걱정말라고 하였다. 분회장은 그런가 하면서도 납득이 가는 기색은 아니였다.

그날이 분회장이 서거하는 전날이였다.

고별식은 7월 18일 총련 오따지부와 마고메분회의 합동장으로 엄숙히 거행되였다.

《우리 분회장》은 우리 곁을 떠났다.

그러나 분회장이 남긴 애국애족의 뜨거운 마음과 동포사회를 위하는 고상한 정신은 우리의 가슴속에 영생할것이다. 나는 상실의 아픔을 이겨내고 분회장의 뜻을 이어나가리라고 그의 령전앞에서 굳게 다짐하였다.

(총련 오따지부 마고메분회 부분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