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즈오까초중 창립 50돐을 맞이한 새 세대의 결의


《앞으로의 50년을 우리가 책임지겠다》

1964년 4월 태평양을 굽어보는 풍치좋은 곳에 자리잡은 시즈오까초중 개교의 첫 종소리가 울렸다. 그때로부터 50년. 1, 2세들의 넋을 이어 오늘은 3세가 중심이 되여 시즈오까초중 새 교사를 훌륭히 일떠세워 이곳 민족교육을 계승해나갈 굳은 결의로 가슴불태우고있다.

새로 준공된 교사

새로 준공된 교사

민족교육의 불씨

전교생이 출연한 장단놀이로 막을 올린 새 교사 준공모임 및 창립 50돐 축하공연. 저학년생들의 생활무용, 고학년 무용부의 쌍무, 시랑송, 합창… 동포들은 민족교육의 화원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기쁨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전교생의 합창

전교생의 합창

이곳 학생들은 소년단을 중심으로 3년간에 걸쳐 학교창립 50돐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다. 2012학년도에는 《시즈오까민족교육의 불씨를 알자》운동을 벌려 옛 교사, 학생들의 사진, 초창기 교원들의 강의, 력대 교원들의 인터뷰 등을 통하여 시즈오까민족교육의 력사를 상세히 조사하였다. 2013학년도에는 《50명 동포를 만나는 기쁨》운동을 벌려 전년도에 수집한 력사자료를 토대로 자기들이 만든 삐라를 가지고 동포집을 찾아가 함께 사진을 찍고 벽보를 작성하였다.

금학년도에는 자신들의 떳떳한 모습으로 동포들에게 감동을 주자고 공연련습과 함께 동포들의 사랑으로 세워진 학교를 알뜰히 꾸리는 사업에 힘을 넣었다. 동교 임선애 소년단지도원은 《학생들은 운동과정에 이제까지 몰랐던 학교의 력사를 알게 되면서 창립 50돐을 빛내이기 위해서 스스로 의견도 내고 주동적으로 나서게 되였다.》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어느 학생이 발표마당에서 《학교의 모습과 학생수는 달라져도 웃는 표정이나 눈동자는 옛날 사진과 비교해도 지금과 하나도 다름이 없고 상급생, 하급생 다같이 의좋게 지내는 모습 또한 꼭같다.》고 말한것이 인상깊었다고 덧붙였다.

2012학년도 졸업생인 리미영학생(아이찌조고 2학년)은 소년단운동을 통하여 우리 학교의 력사가 동포들의 힘으로 이어온 력사라는것을 알았으며 앞으로 동포사회를 지켜나가는 모습을 후대들에게 보여줄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고 느꼈다고 하면서 《학생수나 동포사회의 축소 등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만이 앞섰지만 오늘의 힘있는 시즈오까동포사회의 모습을 보고 신심을 가졌고 앞으로의 50년을 위해 자기도 한몫 다하고싶다.》고 말하였다.

50년후를 내다보고

녀성동맹 세이부지부 맹원어머니들의 장단놀이, 료리기구를 사용한 어머니회의 료리장단, 아버지회와 청상회의 중창, 녀성동맹 고문들의 중창, 교원들의 중창… 분위기가 고조되는 속에서 마지막으로 《조청 50명대합창》이 피로되였다.

50돐 기념채리티뽀로샤쯔를 입고 노래를 부르는 조청원들

50돐 기념채리티뽀로샤쯔를 입고 노래를 부르는 조청원들

《우리 자랑 이만저만 아니라오》, 《우리 동포 닐리리》를 부른 그들은 학교를 위해서라면 휴일도 마다하지 않고 학교미화사업, 프리마케트, 청상회와 합동으로 진행한 채리티보링을 비롯한 애교활동에도 적극 떨쳐나섰다. 보다 좋은 교육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일구일만엔》기금운동에서도 큰 몫을 했고 행사준비는 물론 당일에도 음료수나 채리티수건을 판매하여 행사성공을 위해 쉴새없이 일했다.

《우리의 모습으로 동포사회에 힘을 안겨주고싶다.》는 일념으로 노래하는 조청원들의 모습은 1, 2세 고문들을 비롯한 동포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었으며 미더운 그 모습에 눈물을 흘리는 동포들도 있었다.

조청본부 문인수위원장(28살)은 처음에는 《어르신들이 다 해주겠지》 하는 생각이였지만 응당한 일인것처럼 서있는 우리 학교를 앞으로 어떻게 지키고 발전시키겠는가고 생각했을 때 우리 세대가 맡아나서야 한다고 생각하고 시즈오까초중 졸업생뿐만아니라 다른 지방에서 와있는 조청원들도 하나로 묶어세워 활동해왔다고 한다. 그는 《앞으로는 애교활동은 물론 조청원들이 동포사회전반에 어떻게 기여해나갈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 조청세대가 앞으로의 50년을 내다보면서 활동하겠다.》고 결의를 표명하였다.

시즈오까에서 나서자란 민족교육의 불씨들이 이곳 동포사회에 새로운 불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글-김유라기자, 사진-리철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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