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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자들이 말하는 유인모략의 실상/평양에서 좌담회

2013년 10월 04일 14:41 공화국

《회유와 강박에 넘어갔다》

조선중앙통신은 9월 30일, 남조선괴뢰패당의 유인랍치책동에 의하여 남조선에 끌려갔다가 조국으로 돌아온 함경남도 단천시 동암동에 살던 박진근씨(49살), 량강도 혜산시 련봉1동에서 살던 장광철씨(33살)와의 좌담회가 이날 고려동포회관에서 진행되였다며 그들이 모략에 걸려 남쪽으로 끌려가게 된 경위 등에 대해 상세히 소개하였다.

《탈북자》라고 불리우는 월남자가 북으로 돌아와 기자회견, 좌담회가 진행되기는 작년의 2번에 이어 올해 4번째가 된다.

박진근씨는 돈에 눈이 어두워 중국으로 넘어가 떠돌아다니던중 정보원의 마수에 걸려 2011년 10월 남조선으로 끌려갔다가 남조선사회에 환멸을 느끼고 올해 7월 돌아왔다.

장광철씨는 정보원과 결탁된 거간군들의 간계로 지난해 3월 남조선에 끌려갔다가 얼마전에 돌아왔다.

좌담회에서 발언하는 박진근씨(오른쪽)와 장광철씨(가운데, 조선중앙통신)

좌담회에서 발언하는 박진근씨(오른쪽)와 장광철씨(가운데, 조선중앙통신)

귀맛좋은 말. 끈질긴 설득

박진근씨는 돈을 벌어보자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2011년 5월 중국으로 비법월경하였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집저집 숨어살며 헤매이던 어느날 화룡시에서 산다고 하는 김효성이라는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그는 나를 걱정해주는척 하면서 훌륭한 안식처를 마련해주겠다고 귀맛좋은 말을 늘어놓는것이였다.

며칠후 나를 찾아와 하는 말이 《여기서 이렇게 숨어살지 말고 남조선으로 가라. 거기에 가면 마음편히 잘 살수 있다.》고 하는것이였다.

차마 역적으로 될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남조선에 가지 않겠다고 하자 그자는 끈질기게 설득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자가 갑자기 나타나 하는 말이 《네가 여기에 몰래 와서 숨어사는 사실이 들짱났다. 이제 공안국에서 너를 잡으러 올것이다. 그렇게 되면 북으로 끌려가 감옥신세를 면할수 없다.》고 하는것이였다.

겁에 질려 어쩔바를 몰라하는 나에게 놈은 기다렸다는듯이 후회하지 말고 결심을 잘하라고 공포를 불어넣는것이였다.

결국 회유와 강박에 굴복하자 그놈은 자기가 전적으로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나를 차에 태우고 시장에 나가 옷들을 사준다, 식당에 데려간다 하며 극성을 부리였다.

알고보니 그놈은 중국에서 우리 주민들을 유괴하여 남조선으로 끌어가는것을 전문으로 하는 정보원의 끄나불이였다.

며칠후 나는 남조선에 가면 그 대가로 돈을 얼마만큼 내야 한다는 계약서에 지장을 찍고 김효성이 소개해준 정체모를 놈들에게 인계되였다.

이렇게 라오스와 타이를 거쳐 저주로운 남조선에 끌려가게 되였다.

장광철씨는 몇해전에 불법월경한 누이가 돈을 주겠다고 하니 같이 가자는 낯모를 사람의 꼬드김에 넘어가 그를 따라서게 되였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지난해 1월 어느날 이른 새벽 그자와 함께 압록강대안의 어느 한 곳에 나갔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온다는 누이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내가 점점 초조해하자 그자는 날이 밝으면 위험하니 얼른 강을 건너가서 누이를 만나보고 다시 돌아오자고 재촉하는것이였다.

나는 그자를 따라나섰다.

국경을 넘어선 그자는 한참동안이나 여기저기를 살피는척 하더니 누이에게 무슨 사정이 생긴것 같다고 하면서 이제는 돌아가자고 해도 늦었다, 이왕 넘어온김에 누이를 만나보고 다음날 돌아가자고 하는것이였다.

나는 하는수없이 그자를 따라 길림시의 어느 한 지역에 도착하였는데 놈은 나에게 손전화기를 주면서 누이한테서 오는 전화이니 받으라고 하는것이였다.

전화내용인즉 다른 생각을 하지 말고 안내자의 요구에 순순히 따르라는것이였다.

내가 영문을 몰라하자 그자는 《누이는 지금 남조선에서 잘 살고있다. 남조선에 가면 집도 돈도 주고 생활조건도 다 보장해준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남조선으로 가자고 꼬드기는것이였다.

순간 너무도 기가 막혀 말도 나가지 않았다.

남몰래 집을 떠나오면서 두고온 안해와 한살짜리 아들애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서 돌아가겠다고 하였더니 그자는 이제는 늦었다, 비법월경자인 당신을 법기관에서 가만 놔두겠는가, 처자야 앞으로 데려오면 되지 않는가고 하였다.

남조선에 가면 잘 살수 있다는 환상과 공화국에 돌아가야 법적제재를 받을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모대기던 나는 누이가 있는 남조선으로 가기로 작정하였다.

그후 나는 이놈저놈에게 끌려 타이의 《난민수용소》에까지 가게 되였다.

내가 《탈북》을 도와준다는자에게 왜 남의 나라에까지 와서 이런 일을 하는가고 물은적이 있다. 그놈은 북의 영상을 흐리게 하기 위해 몸살을 앓는 사람들에게서 묵돈을 받을수 있기때문이라고 하는것이였다.

지금 공화국의 북부국경일대에는 이러한 인신매매거간군들이 수많이 돌아치며 우리 주민들을 노리고있다.

박진근씨(조선중앙통신)

박진근씨(조선중앙통신)

일자리 얻기 힘들어

장광철씨는 남조선에서 보낸 1년간은 악몽의 나날이였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계속하였다.

괴뢰들은 나와 같은 사람들을 정보원과 《하나원》이라는데 가두어놓고 3개월 지어는 6개월동안 조사놀음을 벌린 후 내놓는데 그 순간부터 먹고살기가 정말 막막하다.

남조선에 끌려간 사람들은 일자리를 얻기 힘들다.

임금은 남조선로동자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여기저기 헤매다가 춘천의 어느 한 아빠트건설장에서 휘틀을 조립하는 일감을 겨우 잡은적이 있다.

그런데 《팀장》이라는자는 나를 보고 기술이 없다, 같이 일할수 없다고 생트집을 걸더니 나중에는 내쫓는것이였다. 결국 그 일감마저 떼우고말았다.

박진근씨는 《탈북자》라고 하여 끝내 직업을 얻지 못하였다고 한다.

어디 가나 천대와 수모

박진근씨는 《탈북자》들은 어디 가나 참을수 없는 천대와 수모를 받는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절망에 빠진 《탈북자》들은 범죄와 자살의 길로 굴러떨어지고있다.

내가 아는 한성남이라는 사람은 남조선에 끌려온지 1년도 안되였는데 먹고 살기가 막막하여 절망속에 몸부림치다가 아빠트에서 떨어져 죽었다.

그렇게 비참하게 죽어도 누구하나 거들떠보지 않으며 남조선보수언론도 이에 대해 외면하고있다.

그것은 저들이 유괴한 사람들의 비참상이 세상에 알려지는 경우 괴뢰들이 떠드는 《난민구제》와 《인권보호》의 허울이 벗겨지는것과도 관련되지만 《탈북자》들을 들개만큼도 여기지 않는 남조선사회의 풍조와도 관련되여있다.

장광철씨(조선중앙통신)

장광철씨(조선중앙통신)

조국을 찾게 된 동기

박진근씨는 6월 텔레비죤에서 남조선에 끌려갈번 했던 청소년들의 좌담회소식을 듣고 공화국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잘못되였다고 한 괴뢰들의 말이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기를 돌려세워보려는 담당형사의 회유와 계속되는 방해책동을 뿌리치고 공화국의 품에 다시 안기게 된데 대하여 말하였다.

장광철씨도 언제한번 정든 고향과 사랑하는 처자를 잊은적 없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태여난지 넉달밖에 안되는 아들애를 남겨둔채 안해에게 어디로 간다는 말조차 없이 집을 나섰던 나였다. 배은망덕한 자신이 끝없이 저주스러웠다.

그러던 4월 조선로동당 제4차 세포비서대회에서 하신 김정은원수님의 연설내용을 접하게 되였다.

설사 엄중한 과오나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에게 99%의 나쁜점이 있고 단 1%의 좋은점, 량심이 있다면 그 량심을 귀중히 여겨야 하며 대담하게 믿고 포섭하여 재생의 길로 이끌어주어야 한다고 하신 원수님의 연설내용을 읽고 또 읽었다.

꼭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같았다.

나의 심장은 공화국의 품으로 다시 돌아갈 일념으로 불탔고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어머니조국의 품에 안기였다.

(조선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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