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상회 제17차총회〉총회에서 발표된 보고와 토론에서


청상회의 활동에 대한 보고와 자신의 경험을 토로

총회에서는 4명의 대표가 활동보고와 토론을 하였다.

먼저 《NPO법인 우리 학교》 김강우리사장이 보고하였다.

보고에서는 10년,20년후를 내다보고 동포사회와 우리 민족에 공헌할 인재육성을 재정적으로 방조할 목적밑에 2008년 7월 1일에 결성한 이 조직이 지난 1년간 애국선대들이 지켜온 동포사회의 귀중한 재산을 계속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하여 높은 지향과 능력을 가진 인재를 키우기 위한 동포변호사육성장학금사업을 법과대학원에 다니는 학생 6명과 사법시험수험자격을 가지는 청년 6명 계 12명에게 288만엔을 급부하였으며 이로써 지난 5년간을 통하여 루계 58명의 학생들에게 1,172만엔을 급부하게 되였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장학생속에서 합계 13명의 동포변호사가 나온데 대하여 언급하면서 동포변호사들의 협력밑에 무료법률상담을 실시하고 동일본대진재에서 피해를 입은 동포,학생들에게 뜨거운 동포애 넘친 지원금을 피해지에 전달하기 위한 창구로서 사업해왔다는것을 보고하였다.

이어서 제6기(2013년도) 사업계획을 보고하였다.

새로 선출된 류한성리사장을 중심으로 6기기간은 회원확대에 주력할것을 정하면서 동포변호사육성장학금급부사업을 계속 진행하는 한편 동포변호사아드바이저제도를 새로운 형식과 방법으로 전개할 문제,민족교육지원을 비롯한 새로운 형식의 인재육성사업을 연구,집행할 문제,동일본대진재지원모금사업을 계속 벌릴 문제,선전광보사업을 힘있게 전개할 문제를 보고하였다.

다음으로 경제방조사업에 대하여 청상회중앙 김태룡상임간사가 보고하였다.

보고에서는 경제방조사업을 보다 적극 벌리는것은 현시기의 일본의 경제적환경과 동포사회현실에서 매우 중요하고 긴급한 문제로 나서고있다고 하면서 중앙의 유기업부회와 음식업부회,IT부회,도꾜청상회 음식업부회와 부동산부회,히로시마청상회 건설부회,오사까의 변호사,사법서사,세리사,행정서사로 꾸린 전문아도바이저법률상담제도 등 지난 시기의 경험에 토대하여 경제경영사업의 가지수를 결정적으로 늘인 기간이였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코리안비지네스스쿨 도까이의 경험에 기초하여 6월에 개교하고 벌써 9건의 새 비지네스플란이 나와있는 코리안비지네스쿨간또, 10월 개교할 코리비지깅끼,4명의 기업가에게 사업계획과 융자알선방조를 진행한 히로시마청상회의 기업가육성프로젝트, 도호꾸블로크의 TKB프로젝트,규슈의 드리챌렌지 등 기업가육성체계를 전국적규모로 전개할 확고한 전망이 열린 기간이라고 보고하였다.

끝으로 청상회 회원들이 애국선대들의 기업정신을 이어 경제방조사업의 《그릇》과 사업가지수를 계속 늘이기 위한 사업체계를 더 잘 갖추며 대상의 폭을 확대해나갈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다음으로 가나가와청상회 리성대부회장이 토론하였다.

그는 조고졸업후 일본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여 일본기업에 취직하니 《우리 조직》과 접촉이 없이 《반조직》상태에 있었던 자신이 청상회를 만나 회장으로 임명되면서 민족교육을 지키는 사업, 명부정리,회원확대사업,회비징수사업,학습회를 운영하는 사업,지역관하의 가장 큰 행사인 여름행사를 조직함으로써 중앙에서 《우수KYC상》을,가나가와현청상회 년간운동에서도 우승하게 되였으며 그 과정에 많은것을 배우게 되였다고 하였다.

그는 일본학교를 거쳐 일본회사에 다니는 과정에 믿을수 있는것은 자기만이고 남을 비판,공격하는것에 익숙되여있던 자기가 청상회활동과정에 모든 문제를 《플러스 사고방식》에 기초하여 건설적인 의견을 내고 문제해결을 위한 방도를 자기들의 힘으로 찾아낼수 있다는것을 절실히 느끼게 해주었다고 하였다.

그는 올해 2월 가나가와현지사가 돌연히 우리 학교에 대한 보조금지출을 정지한다는 폭거를 감행했을 때 청상회사업에서 배운대로 《플러스 사고방식》으로 가로막은 난국이 아무리 커도 그 누구에게 의거하는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이 선두에 서서 명확한 비죤을 제시하면 반드시 학교를 지키자는 수많은 동포들이 호응해줄것이라고 사고를 전환하여 올해 4월부터 남부조선초급학교 교육회 회장대리로 사업할것을 결심하게 되였으며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교육의 질보장과 선생님들의 인건비를 보장할것을 학부모들과 동포들앞에서 선언하였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1학기간 운동을 전력적으로 벌린 결과 찬조금수입에서 목표액을 달성하고 금학년도 학교운영에 대한 전망을 세울수 있게 하였다고 말하였다.

특히 전승 60돐경축 청상회대표단의 한 성원으로 23년만에 조국을 방문하고 남부조선초급학교의 련계학교를 찾아가 조국의 선생님들, 학생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하고 조국의 현실을 직접 보면서 조국은 자신의 가슴속에 신념이라는 큰 선물을 주었을뿐만아니라 《반조직》으로부터 완전히 졸업시켜주었다고 하였다.

끝으로 그는 청상회와 교육회활동,조국방문을 통하여 동포사회와 우리 운동의 생명선인 민족교육을 앞장에 서서 끝까지 지켜나가는것이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임을 알게 되였다고 하면서 조성된 난국을 반드시 뚫고나갈것을 굳게 결의다졌으며 참가자전원에게 배포한 남부조선학교의 주변지도를 가리켜 남부지역을 포함한 가나가와에 이사오신 친척, 동포의 정보가 있으면 사소한 정보라도 남부교육회 리성대앞으로 FAX, 전화를 달라, 그러면 우리 학교팜플레트를 가지고 인입사업에 나가겠다고 뜨겁게 호소하였다.

마지막으로 중앙청상회 허청호부회장이 토론하였다.

그는 청상회에서 활동한 17년간을 자기 인생과 더불어 돌이켜보겠다고 하면서 첫시기 아이를 일본학교에 보내는 문제를 놓고 여러 회원과 자주 부딪치니 힘들었다고 하였다.

그는 초급부 3학년때 지바초중에 편입한 후 가정사정으로 岡山초중,茨城초중고를 다녔고 조고졸업후 도꾜,군마,사이따마,시모노세끼,후꾸오까 등 여러곳에서 살았으나 가는 곳마다 동포들이 친자식,친동생처럼 대해주었다고,우리 학교와 동포들이 자신을 키워주었다고 말하였다.

그는 조선사람으로서의 아이덴티티는 자신이 생활속에서 직접 느끼고 배우고 경험하는 과정에 형성되며 특히 어릴 때 자라나는 환경은 매우 큰 영향이 있다고 말하면서 자신도 조선학교에서 동무들과 지내고 조직과 학교를 위해 헌신하고있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동포애와 접하고 우리 동무가 좋다, 조선사람으로 태여나서 좋았다고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과정에 민족자주의식이 형성되였다고 하였다.

따라서 자신은 가장 중요한 환경인 조선학교에 한사람이라도 다니도록 하고싶어서 청상회활동을 벌렸다고 하였다.

그는 일본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피해자》라고 하면서 이 아이들에게도 민족성을 심어줄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것이 자기 세대가 지닌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란것도 배우게 되였다, 각계각층 동포들을 다 망라한 동포사회를 후대들에게 넘겨주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청상회시기에 일본각지에 가치관을 공유하는 동무가 생긴것이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인생의 보물이라고 하면서 자기 딸도 더 많은 귀중한 친우를 찾고싶다고 래년도에 조선대학교에 진학할것을 결정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는 선대들이 마련하고 지켜온 조직과 학교를 대를 이어 지켜나가는것은 말처럼 쉽지 않지만 우리 후손들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기 신념을 지니고 당당히 살아나가기 위해 지혜와 힘을 모아나가면 어려움도 뚫고나갈수 있다고 하였다.

끝으로 그는 청상회를 졸업한 후도 변함없이 자신을 키워준 우리 학교와 동포사회를 위하여 계속 헌신분투하겠다고 결의다지였다.

(조선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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