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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해방전쟁사적지, 7.27 앞두고 참관자 증가

2013년 07월 26일 09:00 공화국

《미제의 내리막길 시초 열어놓은 곳》

조국해방전쟁사적지를 찾는 시민들의 수가 전승 60돐(1953.7.27)을 가까이할수록 계속 늘어나고있다.

사적지의 강사에 의하면 6월부터 지금까지 매일 수천여명의 시민들이 참관하고있다고 한다.

한편 전승 60돐을 앞두고 사적건물들과 사적물들을 영구보존하기 위한 여러가지 대책들이 강구되였다.

김일성주석님께서 사업하신 최고사령부 지휘처의 집무실(평양지국)

김일성주석님께서 사업하신 최고사령부 지휘처의 집무실(평양지국)

후대에게 물려주는 재보

평양시 룡성구역(전쟁당시 평안남도 강동군 시족면 건지리)에 위치한 사적지는 김일성주석님께서 조국해방전쟁시기인 1951년 1월부터 1953년 7월까지 930여일간 계시면서 전쟁승리를 위한 사업들을 령도하신 곳이다.

300여정보에 달하는 부지에 주석님께서 사업하신 최고사령부 지휘처를 포함한 70여동의 건물들과 사적비,조국해방전쟁사적관 등이 있다.

주석님께서는 1976년 4월을 비롯하여 여러차례나 찾으시여 이곳은 미제가 내리막길에 들어서는 시초를 열어놓은 뜻깊은 곳이라고 전쟁시기 일들을 회고하시였다.

1987년 8월과 1998년 4월을 비롯하여 이곳을 여러차례에 걸쳐 찾으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주석님께서 어떤 곳에 계시면서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미제를 타승하시였는지 후대들에게 잘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석님의 생애에서 조국해방전쟁사적지만큼 의의깊고 사연많은 곳은 없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사적지를 원상그대로 보존하여 새 세대들에게 만년재보로 물려주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에 대하여 지적하시였다.

최고사령부 작전실(평양지국)

최고사령부 작전실(평양지국)

로선전환방침 제시

주석님께서는 이곳 집무실에 계시면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를 비롯한 200여차의 회의를 지도하시였다. 또한 국내외의 인사들과 군인들,인민들과 외국인들을 접견하시였다.

1951년 1월 전후복구건설총계획을 작성할데 대한 임무를 주시였으며 나라의 축산업발전을 위한 전망도를 검토하시고 경공업전시회도 조직하도록 하시고 지도하시였다. 체육선수들의 배구경기도 보아주시고 전후 체육발전의 지침도 마련하시였다.

한편 1952년 12월 이곳에서 재일조선인 련락원을 만나시여 오랜 시간 담화를 나누시면서 재일조선인운동이 민족적애국운동으로 되여야 한다는 강령적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사적지의 김성임강사는 사적지를 찾는 총련의 일군들과 동포들 특히 새 세대 청년학생이 재일조선인운동의 로선전환방침이 제시된 뜻깊은 이곳을 흥분속에 돌아보고있다고 말한다.

미제가 떨군 0.5t짜리 폭탄(평양지국)

미제가 떨군 0.5t짜리 폭탄(평양지국)

뜻깊은 사적물들

사적지에는 주석님의 천출위인상을 보여주는 사적물들도 있다.

1951년 7월 자정이 가까워오는 때까지 집무를 보시던 주석님께서 잠간 휴식을 하시러 나오신 사이 반동들의 조종을 받은 미군비행기가 기총사격을 하였었다.

총탄은 주석님께서 좀전까지 집무를 보시던 방의 창문을 뚫고나가 주석님께서 앉아계시는 토방으로부터 1.5m떨어진 굴뚝밑에 박혔었다.

1952년 8월 하루에만도 두차례나 달려든 130여대의 미군폭격기들은 백수십여개소에 폭탄과 휘발유통들을 떨구었는데 지휘처뒤산에서 대공방어전투를 지휘하시던 주석님으로부터 20m가량 되는곳에 떨어진 0.5t짜리 폭탄이 불발되였다.

폭발반경이 400여m가 되는 이 폭탄은 현재까지 떨어진 곳에 보존되여있다.

조국해방전쟁사적지의 일군들은 주석님의 전승업적을 더욱 빛내이기 위하여 사적지와 사적물의 영구보존관리대책을 강구하며 사적관을 새로 개건보수하기 위한 사업을 착실히 진행하고있다.

【평양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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