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선으로 끌려갔다가 조선에 돌아온 김광호부부, 고경희녀성과의 국내외기자회견 진행
2013년 01월 25일 10:07 조국・정세 주요뉴스조선중앙통신에 의하면 남조선으로 끌려갔다가 공화국으로 돌아온 김광호부부, 고경희녀성과의 국내외기자회견이 24일 인민문화궁전에서 진행되였다.
기자회견에는 조선의 출판보도부문과 총련의 기자들, 외신기자들, 그리고 조선에 체류하고있는 해외동포들이 참가하였다.
먼저 김광호부부와 고경희녀성이 남쪽으로 끌려가게 된 경위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함경북도 연사군 연수리태생인 김광호씨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고난의 행군시기 돈에 눈이 어두워 여러번 비법월경을 한것으로 하여 법적제재도 받았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2009년 8월 당시 약혼녀였던 집사람까지 데리고 또다시 중국으로 몰래 넘어갔다.
어느한 산막에 숨어있으면서 돈벌이감을 마련해보려고 하였으나 허사였다.
그러던중 리요셉이라는 목사를 비롯하여 남조선괴뢰들과 결탁된자들의 마수에 걸려들었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나는 남조선에 대한 환상에 빠져있었다.
남조선에 가야 돈을 많이 벌고 잘 살수 있다는 놈들의 꼬임에 쉽게 넘어가게 되였다.
량강도 백암군 상담리에 고향을 둔 김옥실녀성(29살)은 김광호씨를 알게 된후 그와 함께 중국으로 비법월경하였다고 하면서 이렇게 계속하였다.
남편을 따라 중국에 갔지만 이역땅에서 돈을 번다는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큰 돈을 벌자면 남쪽으로 가야 한다고 하였다.
나는 그에게 남조선에는 가지 말자고 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남편이 괴뢰정보원 앞잡이들의 마수에 걸려든 상태였기때문에 어쩔수 없었다.
그래서 하는수없이 남편을 따라 남조선으로 가게 되였다.
김광호씨는 남쪽에 가면 돈도 벌고 잘 살수 있을것이라는 생각은 망상이였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정작 가보니 남조선이야말로 정말 더러운 세상이였다.
우리는 열심히 일하면 잘 살수 있을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어떻게 하나 버티여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사기와 협잡,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험악한 세상에서 도저히 살아갈수가 없었다.
아이까지 태여나자 불안은 더욱 커졌다.
서로 물고뜯고 속이고 속히우는 남쪽땅에서 우리의 운명은 물론 딸애의 앞날도 책임질수 없었다.
조국으로 돌아가고싶은 생각이 불같았지만 지은 죄가 많아 나로서는 선뜻 용단을 내리지 못하였다.
그러던 지난해 6월 남조선으로 끌려갔다가 공화국으로 돌아간 박정숙녀성의 기자회견소식을 듣게 되였다.
조국에서는 그의 과거를 묻지 않고 너그러이 안아주었고 훌륭한 집에서 아들, 며느리와 함께 행복하게 살도록 해주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조국으로 돌아갈 결심을 더욱 굳게 다지였다.
그러나 한켠으로는 조국에서 과연 나같은 죄인을 용서해주겠는가 하는 불안도 없지 않았다.
사실 나는 남조선으로 나가기전에 조국에서 법적제재를 받고있던 몸이였다.
그래서 망설이고있었는데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
우리를 남조선으로 유인해간 놈에게 계약금을 물지 못한것이 화근이 되여 법정에 끌려가게 되였다.
불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결국 재판에서 지고 집까지 떼워야 할 기막힌 처지에 빠졌다.
이렇게 되고보니 그 저주로운 곳에서 더 이상 살고싶지 않았다.
우리는 법적제재를 받더라도 조국으로 기어이 가겠다는 결심을 내리고 지난해말 공화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였다.
이어 발언한 고경희녀성(37살)은 량강도 혜산시 강구동에서 살았는데 그곳에는 11살, 12살나는 아들, 딸이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지금도 아이들을 두고 어디로 가는가고 하면서 앞을 막아나서던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끝내 집을 나섰던 자신을 생각하면 저주롭기 그지없다.
2011년 3월 중국으로 비법월경하였던 나는 심양에서 허사장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였다.
돈벌이를 도와주겠다는 그자의 꼬임수에 얼리워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가 종당에는 그해 6월 남조선으로 끌려갔다.
내가 남조선에서 지낸 기간은 악몽속에 보낸 날과 달이였다.
남조선사회의 랭혹한 현실에 마음을 붙일수 없었고 항시 불안과 눈물속에 살았다.
길을 가다가도 아이들만 보면 두고 온 자식들생각으로 미칠것만 같았고 밤이면 고향이 그리워 잠못들며 고독감에 몸부림쳤다.
먹고 살아야 하겠기에 부지런히 뛰여다니였지만 《탈북자》라는 리유로 그 어디서도 일자리를 구할수 없었다.
그러던 그해 12월 나는 장군님께서 서거하시였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게 되였다.
비록 죄를 짓고 남조선에 왔지만 주석님과 장군님의 품속에서 마음껏 공부하며 자라온 지난날을 잊을수 없었다.
온 나라 인민들이 장군님의 령전을 찾고 또 찾겠는데 자식도 고향도 다 버린 반역자가 되여 장군님령전에 꽃한송이 드릴수 없게 된 자신을 끝없이 저주하였다.
주석님께서 서거하시였을 때 나는 부모와 함께 매일 주석님의 동상을 찾고 또 찾았다.
우리 아이들이 곁에 없는 이 엄마를 두고 얼마나 원망하고있을가 하고 생각하니 가슴이 더욱 찢어지는것만 같았다.
드디여 나는 조국으로 돌아가리라 마음먹었다.
나는 북에 있는 아이들을 데려오겠다고 속이고 중국으로 빠져나와 그토록 그리던 조국의 품에 안기게 되였다.
이어 그들은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였다.
조선중앙통신사 기자: 지금 남조선괴뢰들은 비렬한 방법으로 조선의 주민들을 유인, 랍치해가면서도 《탈북자》요, 《인권》이요 하면서 소동을 피우고있는데 그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었으면 한다.
대답(고경희녀성): 남조선에 간 사람들중에는 공화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친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주변나라들에 갔다가 괴뢰들의 유인, 회유에 걸려 끌려간 사람들이다.
괴뢰들은 이런 사람들을 《탈북자》라고 하면서 떠들어대고있다.
나의 경우를 보아도 그렇다.
사실 나는 중국에 가면 돈을 벌수 있다고 해서 비법월경하였지 남조선으로 가려고 한것이 아니였다.
그런데 심양에서 알게 된 허사장이라는자는 돈을 벌자면 베이징으로 가야 한다고 하면서 나를 데리고갔다.
정작 베이징에 가서는 언어가 달라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다느니, 통제가 심해졌다느니 하다가 나중에는 차라리 남조선으로 가면 어떻겠는가고 하는것이였다.
내가 말을 듣지 않으니 그럼 카나다로 가라, 거기에 가면 돈도 벌수 있고 카나다국적만 가지면 고향에도 갈수 있다고 하는것이였다.
그러면서 더는 도와줄 길이 없다, 카나다로 가는것도 싫으면 이제는 혼자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면서 회유절반, 위협절반 하였다.
허사장은 카나다로 가자면 타이로 가야 한다고 하면서 리명옥이라는 녀자를 소개해주고는 보증금계약서에 지장을 찍으라고 하였다.
나는 그후 이놈저놈이 이끄는대로 중국의 곤명을 거쳐 타이의 《난민수용소》라는 곳으로 가게 되였다.
《난민수용소》는 타이에 불법입국한 사람들을 관리처리하는 곳인데 나는 거기에 가서야 카나다로 보내준다는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괴뢰패당은 《난민수용소》에 조선의 주민들을 가두어놓는 방을 따로 준비해놓고 거기에서 남조선으로 끌어가기 위한 모략을 꾸미고있다.
대답(김광호씨): 지금 괴뢰들은 주변나라들에 저들의 앞잡이들을 배치해놓고 조선의 사람들을 남조선으로 끌어가기 위한 비렬한 놀음을 계속 벌리고있다.
중국에서 처음 만났던 남조선목사라고 하는 리요셉이라는 놈도 중국에 드나들면서 조선의 주민들을 남조선으로 끌어가는것을 업으로 하고있었다.
나를 남조선으로 유인한 《탈북난민인권련합》 회장이라는 김용화놈도 그런자이다.
이자는 우리에게 남조선에 가면 《집도 주고 정착금도 주고 열심히 일하면 잘 살수 있다.》고 귀맛좋은 소리를 늘어놓았다.
우리가 월남도주자들을 림시관리하는 《하나원》에서 나오기 바쁘게 찾아와서는 보증서에 계약된 금액을 빨리 바쳐야 다른 사람들을 데려올수 있다고 떠벌이였다.
이처럼 남조선괴뢰들이 《탈북자》요 뭐요 하고 떠들어대지만 실지에 있어서는 도처에 뿌려놓은 저들의 앞잡이들을 통하여 조선의 주민들을 강제로 끌어가고있다.
평양신문사 기자: 남조선이 황금만능의 썩어빠진 사회라는데 대하여 말해주었으면 한다.
대답(김광호씨): 남조선은 사기협잡이 판을 치는 세상, 생눈알도 뽑아먹을 험악한 사회이다.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우리부부는 남조선에 가서 괴뢰당국의 앞잡이인 김용화라는 놈에게 계약서대로 주게 되여있는 돈을 다 주지 못하였다.
얼마안되는 돈마저 떼우고나면 살아갈수 없었기때문이였다.
그래서 한달후에 마저 물기로 하였는데 그자는 막무가내로 매일같이 우리를 못살게 굴었다.
하루는 그놈의 행실에 너무 격분하여 크게 다툰적이 있었는데 그놈은 《좋다. 후에 법정에서 꼭 만날 때가 있을게다.》하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후 뜻밖에도 집을 압수하니 수표하라는 문서장이 날아들었다.
너무도 억이 막혀 《법원》이라는데 찾아가 항의하였더니 재판에서 이기려면 증인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것이였다.
그래서 한 사람을 증인으로 내세웠으나 그도 돈에 매수되여 결국 우리는 재판에서 지고 집도 떼우게 되였으며 엄청난 재판비용까지 물게 되였다.
돈만 찔러주면 증인도 원쑤로 돌변하여 허위증언을 하고 돈이 없으면 피해자가 피고석에 앉아야 하는 불법무법의 사회가 바로 남조선이다.
대답(김옥실녀성): 저희부부가 어느 한 회사에서 일하던 때였다.
하루는 회사 사장의 처가 우리를 시장에 데리고가서 옷을 사준적이 있었다.
옷이 생각보다 너무 비싸서 싫다고 하니 돈을 내라고 하지 않겠으니 그냥 받으라고 하는것이였다.
남조선과 같은 날강도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월급을 받을 때 돈이 엄청나게 줄어들어 리유를 물어보니 사장의 처가 며칠전에 사준 옷값을 잘랐다는것이였다.
이렇듯 남조선사회라는것은 앞에서는 선심을 쓰는척 하지만 뒤에서는 남의 주머니를 털어내고 피를 빨아내고 뼈를 갉아내는 강도소굴이다.
내가 임신하였을 때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
나는 한푼이라도 벌어보려고 뛰여다녔지만 도저히 일자리를 얻을수 없었다.
그래서 임신한 몸이였지만 여기저기 정처없이 떠돌아다니였다.
그 과정에 배의 선체밑에 들어가 도색작업을 하다가 열물까지 토하며 쓰러지기도 하였고 쓰레기청소를 하다가 실신한적도 있었다.
떠돌이생활을 하다보니 아이를 낳을 거처지가 문제였다.
고민하던중 한 로인이 자기가 가지고있는 짐함으로 된 《집》을 리용하라고 하여 거기에 거처하게 되였다.
그런데 그곳은 전기도 물도 없는 외딴 산기슭에 있는 집아닌 《집》이였다.
당장 겨울이 닥쳐와 할수없이 거기에 들었는데 남편마저 일자리를 구하느라 곁에 없으니 도저히 견딜수 없었다.
임신 8개월 되는 몸을 끌고 산판을 헤매며 땔나무를 해다가 장작을 패고 멀리 인가에까지 내려가 물을 길어와야만 했다.
그런데 며칠후 집주인은 갑자기 나에게 전기와 물을 끌어오지 못할바에는 당장 나가라고 하는것이였다.
알고보니 집주인이 짐함《집》을 리용하게 한것은 불쌍히 여겨서가 아니라 나를 리용하여 전기와 물을 끌어오자는 속심이 있었기때문이였다.
대답(고경희녀성): 남조선은 황금만능의 사회일뿐아니라 극단한 개인주의와 인간증오사상으로 가득찬 악의 세상이다.
나는 남조선에서 먹고 살기 위해 손전화기부분품검사를 비롯하여 닥치는대로 일을 하였다.
처음해보는 일이여서 모든것이 눈과 손에 설었다.
그래서 옆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눈을 흘기면서 제대로 대답도 하지 않고 언제나 멸시와 랭대뿐이였다.
너를 배워주면 내가 일자리를 떼워야 한다는 극도의 경계심과 개인주의에 물젖은 남조선사회의 현실 그대로였다.
남조선에서는 옆집에서 사람이 죽어도 전혀 상관이 없고 더우기 혼자살다 죽으면 며칠이 지나도록 알지 못해 시신이 썩어나가기도 한다.
서로 사심없이 배워주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함께 도와주며 기쁜일이 있으면 모두가 축하해주는 공화국과는 너무도 판이한 세상이였다.
하기에 몸은 사람들속에 있어도 항상 외로운 섬에 홀로 있는듯한 느낌이였다.
얼마나 고독하게 살았으면 혀마저 굳어져서 조국에 돌아왔을때 사람들이 나를 벙어리인줄로 알았겠는가.
남조선은 미래도 없는 사회이다.
보육원에서 운다고 아이를 침대에 내팽개쳐 팔이 꺾어지고 또 아이가 자지 않는다고 하여 수면제를 먹였다가 죽이는 일도 례상사로 되고있다.
학생들이 엄청난 학비때문에 학교가 아니라 길거리에서 방랑하고 지어 자기 몸의 장기까지 팔겠다고 광고하고 꽃망울을 피워보지도 못한채 목숨을 끊고있다.
어디가나 실업자가 차넘치고 지하철도를 비롯한 공공장소에는 로숙자, 류랑걸식자들이 우글거리고 각종 범죄가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있다.
그런가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막대한 돈을 탕진하며 차마 눈뜨고 볼수 없는 변태적이고 렵기적인 광경들이 펼쳐지고있다.
오늘 남조선에서는 로동자들이 도처에서 괴뢰당국과 회사측의 부당한 처사에 분격을 금치 못하면서 생존권을 위한 투쟁을 벌리고있다.
괴뢰당국자들이 입만 벌리면 경제와 민생이요, 정의와 민주주의요 하고 떠들지만 그것은 순전히 인민들을 기만하기 위한 허튼 수작이다.
정말 남조선은 인간의 존엄도 사회적정의도 인륜도덕도 깡그리 말살되여가고 사기와 협잡, 권모술수, 부정부패와 패륜패덕이 판을 치는 썩고 병든 사회이다.
조선중앙방송위원회 기자: 남조선괴뢰들이 악랄하게 벌리고있는 반공화국대결책동에 대해 목격하였거나 체험한것이 있으면 말해주었으면 한다.
대답(김광호씨): 2011년 어느날 담당형사 심형규놈이 내가 일하던 곳에 찾아와 김밥과 순대를 내놓으며 고생이 많다고, 어서 들라고 하면서 곰살궂게 노는것이였다.
그러면서 《천안》호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고 하는것이였다.
내가 왜 그걸 나한테 물어보는가고 하니 다른 《탈북자》들에게도 다 물어본다는것이였다.
그래서 내가 그것은 자체부주의로 일어난것으로 본다, 어떻게 금방 쏜 어뢰에 녹이 쓸수 있는가고 하면서 사람들은 남조선당국의 얼림수로 보고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그자는 대번에 얼굴이 새파래지면서 가지고왔던 김밥과 순대꾸레미를 다시 싸가지고 가버리였다.
북에서 살던 사람들의 입을 통해 《천안》호사건이 북의 소행이라는것을 여론화하려고 하였는데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 신경질을 부린것이다.
지난해 9월 남조선에서 공화국을 헐뜯는 《북인권영화제》라는것이 열리였는데 그때 상영된 영화들을 모두 무료로 관람시킨다는 광고가 나붙었었다.
돈이 된다면 벼룩이가죽도 벗겨낼 세상에서 숱한 돈을 뿌려 만든 영화를 공짜로 보여준다는것자체가 말도 되지 않을 소리였다.
후에 알고보니 괴뢰당국이 사람들에게 반공화국적대감을 불어넣기 위해 이처럼 막대한 자금을 탕진하며 광대극을 벌린것이였다.
대답(고경희녀성): 지금 남조선괴뢰들은 반공화국모략책동에 써먹기 위한 자료수집에 열을 올리고있다.
괴뢰들은 《탈북자》들을 통하여 공화국의 경제형편과 국가기관들의 위치 등을 알아내려고 집요하게 책동하고있다.
내가 《하나원》에 갇혀있을 때인데 하루는 괴뢰통일부에서 두놈이 나타나 공화국에 있는 오빠에 대해 물어보는것이였다.
오빠가 주민등록사업을 한다고 하니 대뜸 중국에 아는 사람이 있는가고 하였다.
내가 없다고 하자 다른 말을 더 하지 않고 후날 자기들에게 전화를 하라고 하면서 전화번호까지 대주었다.
그후 한놈이 전화를 걸어왔는데 나를 식당에 초청하였다.
놈은 중국에 가서 오빠와 련계를 취하여 그가 쓰는 콤퓨터하드를 떼 오라고 하는것이였다.
그러면서 려권과 려비도 주겠다, 그것만 가져오면 큰 돈도 차례지고 필요한것을 다 해결해주겠다고 하는것이였다.
나는 지은 죄도 씻을길 없는데 또다시 나의 가정과 조국에 죄되는 일을 하고싶지 않았다.
중국에 머물러 있을 때인데 괴뢰정보원의 앞잡이노릇을 하던 허사장이라는 놈과 리명옥이 주고받는 전화대화를 들은적이 있었다.
그날 리명옥은 허사장에게 남조선에 오는 사람들이 신발을 가지고 떠났는지 알아보라고 하는것이였다.
내가 허사장에게 무슨 신발을 말하는것인가고 물어보았더니 그놈이 지껄이는 말이 사람이 신는 신발이 아니라 북에서 가지고오는 당원증과 필림이라고 하는것이였다.
그러면서 남조선에서 그런것을 요구하는데 성사되면 뭉치돈을 받게 된다고 하였다.
이처럼 남조선괴뢰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화국을 헐뜯고 동족대결을 부추기는 반민족적, 반통일적행위를 끊임없이 감행하고있다.
총련 조선신보사 기자: 공화국으로 다시 돌아온 소감이 어떠한지 말해주었으면 한다.
대답(고경희녀성): 꿈을 꾸는것만 같다.
공화국에서는 천벌을 받아 마땅할 나를 처벌할대신 오히려 너그럽게 용서해주고 따뜻이 안아주었다.
뿐만아니라 꿈에도 보고싶던 어머니와 두 자식과 함께 새집에서 행복하게 살게 해주었다.
그리고 조국에 돌아온후 아들의 생일을 맞게 되였는데 조국에서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아들의 생일상까지 차려주었다.
김정은원수님을 친어버이로 모시고 온 나라가 화목한 하나의 대가정속에 따뜻한 사랑과 정을 나누며 사는 사회주의제도가 제일이며 조선의 인민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
대답(김옥실녀성): 나서 자란 고향과 조국을 떠나 그 어디에 간대도 차례질것은 멸시와 천대밖에 없다.
더우기 썩어빠진 남조선에 대한 환상은 제손으로 제눈을 찌르는 어리석은 짓이며 자살행위이다.
대답(김광호씨): 우리가 공화국의 품에 안긴 며칠후 인공지구위성《광명성-3》호 2호기가 성과적으로 발사되였다는 감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였다.
공화국이 인공지구위성을 성공적으로 쏴올린것도 놀라왔지만 온 나라 인민이 기뻐하고 과학자, 기술자들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이런것을 남조선사회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한다.
령도자와 인민이 한마음한뜻이 되여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해 헌신해가는 공화국의 미래는 창창하다.
우리는 김정은원수님을 높이 모시고 이제부터 새 출발하여 강성국가건설에 지혜와 열정을 다 바쳐가겠다.
(조선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