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들을 찾아가 봉사하는것을 가장 큰 기쁨, 보람으로 여기였던 《우리 분회장》


총련도꾜 아다찌지부 모또기6분회의 고 한훈분회장

《총련분회대표자대회-2012》(10월 20~21일, 도꾜)에서 한 총련도꾜 아다찌지부 모또기6분회 부분회장의 토론은 대회참가자들속에서 커다란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분회장으로 열성껏 일하다가 지난 8월 5일, 64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난 한훈분회장의 애국충정의 삶을 회고하면서 그 뜻을 이어 분회사업에서 혁신을 일으키겠다고 눈물을 머금으며 굳게 결의다지였다.

한훈분회장은 언제나 동포들과 함께 있는것을 기쁨과 보람으로 여기였다.(앞줄 왼쪽에서 3번째가 한훈분회장)

총련 모또기6분회는 아다찌지부에서도 가장 힘있는 분회로서 한훈분회장의 부친인 한봉두동포가 14년동안 분회장으로 사업하였으며 지난 시기 총련 전체대회에서도 토론한적이 있는 자랑많은 분회이다.

도꾜조고를 졸업한 후 로동을 하면서 조청반장, 조청지부상임을 거쳐 총련분회 부분회장으로 사업한 그가 분회장사업을 맡았을 때는 50살되던 해였다.

분회장으로 선출된 분회총회에서 그는 선대 분회장들처럼 아무리 장사가 바쁘고 몸이 고달파도 동포들속에 들어가 동포들을 위하여 복무하는것을 자신의 중요한 일감,보람으로 여기고 힘껏 사업해나갈것을 굳게 마음먹었다.

이 결의대로 그는 한달 1번 분회위원회를 꼭꼭 가지고 분회위원들의 의견을 모으고 분공을 조직하며 분회위원들과 함께 매월 첫주 일요일을 동포집을 찾아가는 날로 정하여 그것을 무조건 실천하였다.

분회장이 앞장서니 분회위원들도 《동포들을 위하여 아득바득 애쓰자.》는 일념으로 뭉치게 되였으며 그러한 분회위원들의 활동을 보고 동포들은 회비와 출판물대금을 미리 준비하고 분회장과 위원들을 기다리게 되였다.

한훈분회장은 동포들을 꾸준히 찾아갔을뿐아니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동포들을 자기 집으로 불러 그들과 유쾌한 한때를 보내며 한가족, 친형제처럼 지내였다. 그런 속에서 동포들은 스스로 가정일까지 분회장에게 털어놓게 되였다.

한훈분회장은 분회일만이 아니라 총련지부 부위원장직책도 맡아 동포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헌신하였으며 지부낚시소조인 《조우회》를 책임지고 사업하였다.

한훈분회장은 이처럼 동포들을 아끼고 사랑하였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결코 타협하지 않고 매우 엄격했다.

그는 비전임일군이라고 하여 조직에서 결정한 일을 그대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동포들앞에 나설 자격이 없다고 늘 말했다고 한다. 동세대들은 그가 조청반장, 조청지부 부위원장시기부터 조직의 결정에 엄격하였다고 말하고있다.

조청지부상임들이 아침에 모여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학습을 하던 때의 일이다. 공장로동자였던 그는 상임들이 모이는 시간에는 자기가 일터로 나가야 하므로 남보다 1시간 일찍 나와 혼자 회상기를 읽고 학습과제를 어김없이 수행하면서도 조직이 결정한 학습시간에 상임들과 같이 학습하지 못했다고 자기비판을 하였다.

한훈분회장은 우리 학교가 있어야 총련의 대가 이어진다고 하면서 3명의 딸들을 우리 학교에 보내고 조선대학교까지 졸업시켰을뿐아니라 그들모두를 우리 학교 교원으로 내보내였으며 지부와 분회사업은 물론 학교사랑운동과 학생인입사업에서도 항상 앞장섰다.

유모아넘치는 능란한 화술로 동포들의 웃음을 자아내며 동포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의 기쁨과 웃음을 보는것을 제일 큰 보람으로 여기여 마른일 궂은일을 가리지 않고 열정을 다 바쳐왔기에 동포들은 그를 《우리 분회장》이라 부르며 존경하고 따랐던것이다.

그러던 그가 2년전에 《암》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진단을 받게 되여 입원과 퇴원을 거듭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그러나 그는 아픔을 참지 못하여 진통제를 먹으면서도 동포들앞에서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총련 22전대회 때에도 병원에서 외출허가를 받고 대회에 참가한 후 분회동포들에게 대회에 참가한 감동을 열정을 담아 말하는것이였다.

무서운 병마와 싸우면서도 오직 분회와 동포들을 위한 일에 한몸바쳐온 한훈분회장의 심장속에서 끓어번진것은 과연 무엇이였던가.

그것은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을 하늘처럼 믿고 따르며 충직히 일생을 마무리한 애국의 선대들이 지녔던 자기 령도자들에 대한 티없이 맑고 깨끗한 충정심이였고 그 길에서 일생을 바치리라는 불굴의 신념이였다.

2010년 9월 력사적인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은원수님께서 주체위업의 최고령도자로 높이 추대되시였을 때 분회장은 부분회장들에게 이런 영광과 경사가 또 어디에 있느냐고,우리 모두 원수님을 충정으로 받들어나가자고 말하였다

분회장은 병원에 입원했을 때에 지부위원장이 가져온 조국의 예술영화 《백옥》을 수록한 DVD를 여러번 보고 감동을 금치 못하였으며 주석님과 장군님의 은정속에 빛나는 일생을 산 영화의 주인공처럼 자기도 끝까지 충신의 모습으로 살아갈 결의를 다지고 또 다지였다.

그러던 한훈분회장은 림종을 앞두고 찾아온 부인과 딸, 사위들에게 자기 수령, 자기 령도자에게 충실히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가족들과 분회위원들은 분회장의 소지품속에서 예술영화 《백옥》을 보고 감격을 금치 못하여 장군님께서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에게 흰 양복을 지어주시였는데 자기도 영화의 주인공처럼 령도자에 대한 티없이 맑고 깨끗한 충정을 안고 살 마음으로 흰 양복을 만들었다고 총련지부위원장에게 쓴 편지를 보았다.

한훈분회장의 부인인 녀성동맹분회 조문자부분회장은 남편은 조국의 은정과 동포들의 사랑만을 받으며 한생을 마친 행복한 사람이였다고 하면서 령도자에 대한 남편의 충정의 마음을 알고 그에게 흰 양복을 입히여 영결하였다.

2년전 총련중앙 허종만책임부의장(당시)의 지도밑에 진행된 《새 전성기를 열기 위한 총련도꾜 아다찌지부 경험청취모임》에서 한훈분회장은 여러 지방 총련지부위원장들 앞에서 2012년에 아다찌지부가 새로운 전성기개척을 위한 도약대를 맨 선참으로 마련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피력하였다.

분회장의 이 결심대로 오늘 총련 아다찌지부 일군들과 동포들은 12월 17일까지 새 전성기개척의 도약대를 훌륭히 마련하여 김정일장군님께 기쁨의 보고를 드릴 충정의 한마음으로 량심의 경쟁, 애족애국의 성스러운 경쟁인 지부경쟁의 마지막 집중전을 충천한 기세로 벌리고있다.

분회대표자대회의 토론에서 한훈분회장의 뜻을 이어나갈 결심을 표명한 강상훈부분회장을 비롯한 모또기6분회 분회위원들과 동포들은 지금 《총련분회대표자대회-2015》(새 전성기 2차대회)에서 영예의 《새 전성기 애족애국모범기》를 기어이 쟁취할 목표를 내걸고 모범창조운동에 힘차게 떨쳐나서고있다.

 (조선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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