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아카운트

또다시 드러난 《탈북자》의 생지옥같은 생활

2012년 11월 16일 13:53 공화국

《앞날의 희망 기대할수 없는 암흑천지》

【평양발 정무헌기자】《거간군들은 정보원의 조종밑에 우리 주민들을 남조선으로 끌어가고는 당국에서 돈을 받고 월남도주한자들에게서도 돈을 빨아내며 이중으로 돈벌이를 하고있다.》, 《TV에서 나를 유혹하였던 화려한 생활은 모두 거짓이고 기만이였다.》, 《남조선에서 <탈북자>들이 일자리를 구한다는것은 하늘의 별따기이다.》, 《남조선은 돈과 약육강식이 판을 치고 인간의 초보적인 삶과 생존권마저 무참히 짓밟히며 앞날에 대한 희망조차 기대할수 없는 암흑천지이고 인간생지옥이다.》

일시적인 어려움에 못이겨 비법월경하여 감언리설에 속히워 남조선으로 끌려갔다가 거기서의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조국으로 돌아온 김광혁, 고정남씨부부의 회견(8일, 인민문화궁전)을 통하여 남조선 정보원의 지시밑에 진행되는 북측주민에 대한 비렬한 유인책과 월남자들의 비참한 생활처지가 다시금 만천하에 드러났다.

회견에서 그들이 이야기하는 남조선에서의 생활은 말그대로 비참하였다.

인민문화궁전에서 진행된 김광혁, 고정남씨부부의 기자회견(사진 주미래기자)

생계비 위해 형식상의 리혼

김광혁씨와 고정남씨는 2008년 3월과 9월에 각각 중국으로 비법월경하고 타이, 방코크를 거쳐 남조선에 넘어갔다. 거간군들의 입에서 들은 남조선에서의 환상적인 《행복한 생활》.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어디가나 따라다니는 《탈북자》란 딱지, 차별적인 랭철한 눈길, 얻기 힘든 일자리, 비싼 세금, 굶기를 밥먹듯 하는 생활의 나날이였다. 《탈북자》들속에는 자기들의 불행한 처지를 절망하다가 타락하여 범죄의 길에 들어서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당국에서는 남조선사회에서의 《순응》을 위해 《탈북자》들에게 명목상 생계비를 지출하지만 그 액수는 보잘것없는것이였으며 결혼이나 취업 등 생활이 《안정》된 시점에서 자동적으로 끊기우는 《직업도 가정도 제대로 가질수 없게 하는 무서운 올가미》(고정남씨)였다.

어떻게 하나 남조선에서 살아보려고 가정을 이룬 김광혁씨와 고정남씨도 결혼신고서를 내자마자 생계비를 끊기였다. 두명의 생계비를 다 합쳐야 한달의 세금이나 겨우 낼 정도였던 그들에게 있어서 《생계비의 끝》은 《생활의 끝》을 의미하였다. 그들은 고민끝에 가정을 이룬지 2달도 못되여 다시 생계비를 얻기 위해 형식상의 리혼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들이 당국에서 지출되는 생계비에 의거할수밖에 없었던 리유는 취업의 어려움에서였다.

일자리를 구해보려고 애를 써보아도 매번 《탈북자》란 리유만으로 거절당하다가 끝내 똑똑한 일자리를 얻지 못하였다. 겨우 손전화기부분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시간별로 일하는 일거리를 잡았으나 다른 로동자들과의 불공평한 처사에 항의하자 회사측은 《눈섭하나 까딱하지 않고 이런것들이 어디서 왔는가고 하면서 우리를 내쫒았다.》(김광혁씨)

그후 김광혁씨는 남조선땅에 왜 왔는가고 울분을 토하면서 늘 술에 취하였고 그로 하여 병까지 터졌다고 한다.

남편이 앓아 누운데다가 임신까지 하게 된 고정남씨는 자격을 가지면 직업을 얻을수 있다고 생각하여 간난신고끝에 간호학원에 들어갔다. 그러나 교원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수 없어 다른 학생들에게 물어보아도 무시당할뿐아니라 환자들은 《탈북자》한테서는 치료를 안받겠다고 하면서 눈까지 흘기며 피해버리는 정도였다.

그 모든 랭대와 멸시속에서, 또한 해산한지 열흘만에 손과 얼굴이 퉁퉁 부어오른 상태에서도 학원으로 가면서 겨우 손에 쥔 자격증도 《휴지쪼각이나 마찬가지》(고정남씨)였다.

그들은 살기가 힘들어 하느님을 믿고싶어서가 아니라 돈을 준다고 하기에 나중에는 교회당에까지 찾아다니였다고 한다.

앞날에 대한 절망으로 하여 그들은 조국으로 돌아올 각오를 하게 되였던것이다.

비행장에서 가족과 상봉

중국에 다녀온다고 하면서 남조선을 떠난 그들은 심양을 거쳐 비행기로 조국으로 돌아오게 되였다.

죄스러운 마음을 안고 평양비행장에 내린 그들이였으나 뜻밖에도 해당 일군들이 나와 따뜻이 손잡아주며 반갑게 맞아주었으며 고정남씨는 부모형제들과 감격적인 상봉도 하였다. 뿐만아니라 조국에서는 부모와 함께 살 살림집까지 마련하여주었다고 한다.

《조국을 위해 한 일도 없고 죄되는 짓밖에 한것이 없다. 그러나 조국은 죄많은 우리를 따뜻한 품에 너그러이 안아주었다.》(김광혁씨)

회견에서 그들은 거간군들에게 속히워 끌려간 사람들에게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고 주저없이 조국으로 돌아올것을 호소하였으며 조국은 자기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관대하게 대해주며 따뜻이 안아주고있다고 강조하였다.

(조선신보)

Facebook にシェア
LINEで送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