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졸본과 국내성탐방기(하)/손문규
2012년 11월 05일 16:45 문화・력사고구려의 옛 수도를 찾아서
졸본과 국내성탐방은 강행군이였으나 참으로 많은것을 배운 나날이였다.
고구려의 옛 수도를 돌아보면서 무엇보다도 고조선,고구려,발해 등 우리 고대사에 대하여 주체적립장에 튼튼히 서서 학습을 깊이며 공화국의 력사학계가 최근년간 이룩한 귀중한 성과들을 잘 알아야 한다는것을 절실히 느꼈다.
이번 탐방을 통하여 桓仁과 集安의 고구려유적들이 세계적으로 자랑할만한 유적으로 소중히 보존된것을 보고 가슴 흐뭇해졌다.
그러나 안내원의 해설과 현지자료에서는 고구려의 건국년대문제, 집안의 《尉那巖城》인 山城子山城을 《丸都城》으로 보는 문제, 태왕무덤과 장군무덤의 주인공문제 등에서 우리 력사학계가 내놓은 견해와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있다.
특히 고구려의 건국년대를 두고 현지에서 발행된 소책자에는 종래대로 《기원전 37년》이라고 지적하면서 기원 3년(대무신왕 22년)에 수도를 国内城으로 천도할 때까지 卒本은 40년간 고구려의 수도였다고 지적하고있다.
우리의 력사학계에서는 세나라중에서 제일 먼저 봉건국가를 세우고 주도적역할을 논 고구려는 기원전 277년에 건국했다는 사실(1991년에 제2판《조선전사》(3, 고구려사)와 《조선통사》(상)에서)을 이미 밝혔다.
우리 학계에서는 고구려는 950년간이나 존속한 국가라는 옛문헌기록으로 보아 적어도 기원전 3세기에 건국되였다고 볼수가 있다는것, 그리고 12세기에 편찬된 《삼국사기》에는 広開土王이 12대손으로 되여있으나 광개토왕릉비에는 주몽으로부터 17대손이라고 밝혀져있으므로 5대왕이 빠진 사실 등을 그 주요 근거로 들었다.
력사학계에서는 많은 분석검토를 거쳐 새로 5대왕을 찾아내고 건국년대를 갑신년을 기준으로 삼아 240년 더 거슬러올라 B.C.277년으로 확정하였다.이에 따라 고구려사를 새롭게 서술하게 된것이다.따라서 고구려의 첫 수도 卒本城은 기원전 277년부터 기원3년까지 약 280년간 존재한것으로 된다.이것은 우리 력사학계가 초기 봉건국가들의 건국년대들에 대한 주체적인 고찰에 기초하여 우리 나라 력사를 바로잡은것이다.
탐방과정에서 느낀것은 또한 고구려나 발해의 력사를 마치 중국땅안에 있는 《중국의 소수민족》으로서의 조선족의 력사로, 중국력사의 한 부분으로, 《지방정권》의 력사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들은 태고로부터 오늘의 중국동북지방은 중국의 령토였고 거기서 살던 주민들을 중국의 소수민족이였으며 고구려나 발해는 중국땅에서 나라를 세우고 중국의 왕조에 대하여 처음부터 《책봉》을 받고 《조공》을 한 《속국》 또는 《지방정권》이였다고 보고있는것이다.이렇게 보는것은 력사의 발전과정을 무시하고 력사적사실을 외곡하는 잘못된 견해이다. 이는 또한 력사주의원칙에 대한 란폭한 위반으로서 대민족본위로 력사를 고찰하려는 민족배타주의적견해로 된다.
현재 遼東과 중국 동북지방의 넓은 땅은 태고로부터 봉건시대 중기까지 우리 민족의 조상들의 삶의 터전이였다.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조선력사학계에서는 정확히 지적하고있다.
과거 력사상에 존재하였던 나라들사이의 관계를 론하는데서 주의해야 할 문제는 현재의 령역을 기준으로 하여 그 지역에서 창조된 력사를 다 현재 그 나라안에서 살고있는 민족들의 력사로 보아서는 안된다는것이다.
즉 어떤 큰 나라의 력사를 쓰는데서 현재 그 령역안에서 흥망한 나라들의 력사를 그 땅안에서 있었던 일로서 연구,서술할수 있겠지만 현재의 령역이 예로부터 그 나라 령역이였다고 하거나 현재 그 나라의 지배적지위를 차지하고있는 민족이 예로부터 그 지역을 지배하였다고 해서는 안될것이다.(론문《고구려는 대외관계에서 시종일관 자주권을 고수한 나라》〈력사과학〉1993년 제1호 P.40∼46))
조선력사학계가 옳게 지적하고있는바와 같이 일부 나라 학계에서 주장하는 이러한 그릇된 견해들은 다른 민족의 조상의 력사를 손상하며 민족국가들사이의 우호와 친선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수가 있다.
최근 조선력사학계는 고조선,고구려, 발해를 중심으로 한 고대중세사연구가 왕성히 진행되고 새로운 성과를 이룩하여 슬기로운 우리 인민의 력사를 연구하는데 큰 기여를 하고있다.
이번 고구려옛유적을 돌아보면서 고구려는 우리 나라 력사발전에 선도자적,중심적역할을 담당수행한 국가였다는것 그리고 존엄있고 자주성이 매우 강하고 빛나는 력사를 가진 동방의 강대국이였다는 립장을 똑바로 가져야 한다는것을 재확인하게 되였다.
올해 여름에 조직된 고구려옛유적의 력사탐방은 공화국에서 이룩된 고대사의 귀중한 연구성과에 대한 리해와 인식을 한층 깊이며 앞으로 력사교수의 질을 높일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였다.
(력사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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