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대유희장/개건보수공사가 일으킨 각성
2012년 10월 17일 15:31 공화국《일터의 주인》, 《인민의 봉사자》로
【평양발 김지영기자】 지금 개건보수된 만경대유희장의 입구에는 대형사진판이 세워져있다. 《유희장의 어제와 오늘(대비편)》이라는 제목이 달린 게시판에는 이전의 시설과 새로 변모된 시설의 사진들을 나란히 붙였다. 《조국은 병사들의 위훈을 잊지 않으리(투쟁편)》는 개건보수공사에 참가한 인민군군인들의 작업모습을 소개하고있다. 사진판에 없지만 공사는 또 다른 변화도 가져다주었다. 군인들과 함께 작업한 유희장의 일군들과 종업원들의 사상관점, 일본새가 크게 바뀐것이다.
직무태만에 대한 자책감
《김정은원수님께서 유희장을 찾아주시지 않았더라면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별고없이 보내고있을것이다. 그이께서만이 그토록 엄한 지적으로 우리의 과오를 들추어내실수 있었다.》
지난 5월 8일 김정은원수님께서 유희장을 돌아보시였다. 인민을 위한 시설들이 말그대로 한심한 상태로 방치되여있었다.
물놀이장 로동자 류춘일씨(43살)의 일터도 인민들에 대한 복무정신이 령이 아니라 그 이하라고 비판받아 마땅한 수준이였다. 시설들은 도색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1985년에 준공된 물놀이장은 그후 한번만 보수를 하였는데 그때 바닥에 깔았던 미장인조석을 뜯어서 그 대신에 콩크리트를 깔고 자갈을 박아놓았다.
《원수님께서는 몸소 밟아보시며 인민들이 걸으면 발바닥이 아플것이라고 하시였다. 당시로서는 일군들이 보수비용을 타산하여 저렴한 콩크리트바닥을 선택했을수 있는데 구실이 되지 않는다. 원수님께서는 언제나 철저히 인민의 편에 계신다.》
그날 원수님께서는 예고없이 유희장을 찾으시였다. 지배인을 비롯한 수명의 간부들이 그이를 안내하였다. 거기서 오고간 대화내용을 알지 못한 종업원들은 원수님을 자기 일터에 모시게 된것을 《기쁜 일》, 《자랑할만한 일》로 착각하고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있은 총화모임에서 유희장의 관리운영에 대한 엄격한 질타가 있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관성렬차를 조종하는 주림호씨(46살)는 그때 《자책감이 울컥 치밀어올랐다.》고 한다.
《설비불량을 구실로 유희기구의 정상운영을 하지 않았던 일이 생각났다. 자신의 직무태만을 깊이 뉘우치고 마음을 새로 다지게 되였다.》
군인들의 모습에서 배워
만경대유희장을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변모시킬데 대한 김정은원수님의 명령을 받들고 이틀후에는 조선인민군의 건설력량이 현지에 도착하였다. 군인들은 등에서 배낭을 벗어놓자마자 작업에 달라붙었다.
유희장의 일군, 종업원들도 《건설주》로서 공사에 몸을 푹 잠갔다. 그런데 그때까지 유희장의 주인으로서 제구실을 하지 못했던 이들은 최고사령관께서 파견하신 건설자들의 모습에서 충격을 받았다. 군인들은 순간도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공구를 잡은 손이 터갈라져 피가 나오면 붕대를 감고 다시 일손을 잡았다. 《시간이여! 우리를 따르라!》, 《걷는자는 비켜라!》는 구호판이 곳곳에 세워진 공사장은 령도자의 뜻을 무조건 끝까지 관철하려는 군인들의 정신세계를 산현실로 펼쳐보였다.
유원지총국 한용원국장(54살)은 인민군대와 함께 작업하는 나날에 일군들과 종업원들이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자기들의 《첫 결심》을 다시한번 똑똑히 확인하게 되였다고 한다.
《만경대가 어떤 곳인가. 유서깊은 혁명의 성지에 인민을 위한 유희장을 꾸려놓으신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의 뜻을 변함없이 현실에 구현해나가야 할 일군들이 어떤 사상관점을 가지고 일해야 하는가. 김정은원수님께서 보내주신 군인건설자들이 그것을 가르쳐주었다.》
인간개조의 과정
개건보수공사는 넉달 남짓한 기간으로 끝났다. 면모를 일신한 만경대유희장은 수많은 시민들로 련일 흥성거리고있다.
관성렬차를 조종하는 주림호씨는 손님들에게 자기가 맡은 유희기재의 특징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그들을 렬차의 탑승장소로 친절히 인솔하고있다. 그는 《지난 시기보다 손님들의 미소를 더 많이 보게 되였다.》고 한다.
물놀이장에서 일하는 류춘일씨도 래년 여름에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다. 바닥에 새로 깔아놓은 보도타일도 제때에 손질하고있다. 《자기가 인민들에게 죄를 지었다고 자각했을 때에는 가슴이 미여질듯 아팠지만 지금은 일하면서 보람이 있다.》고 한다.
개건보수공사가 진행되는 기간 자기 집에 가지 않고 군인들과 함께 현장에서 《낮과 밤이 따로 없는 전투》를 벌린 그는 유희장에서 일하는 봉사자로서 다진 새 결의를 이렇게 표현하였다.
《령도자들의 인민사랑이 씨앗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잘 가꾸어 대화원을 꾸리는 원예사가 되여야 한다.》
유희장을 변모시키는 공사는 낡은 관례와 악습을 일소하는 거창한 인간개조의 과정이였다. 종전에는 자기에게 흠잡을데가 있고 그것을 방심해두고도 량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었다. 그러던 로동자가 자기 일터에 대한 애착을 절절히 노래하는 로동자시인이 되였다.
(조선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