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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전거리살림집, 김정은원수님의 방문일화

2012년 09월 15일 14:45 공화국

인민의 마음을 끄는 《소통의 정치》

【평양발 김지영기자】올해 6월에 완공된 창전거리의 살림집들에는 약 3천세대가 살고있다. 9월 4일 김정은원수님께서는 리설주부인과 함께 새집들이를 한 근로자의 가정들을 방문하시였다. 《소탈하고 인자하신분》 – 대학교원, 도시미화사업소 로동자, 방직공장 3대혁명소조원 등 주민들의 직업, 세대는 각이하였으나 그들이 이야기하는 령도자의 인상담은 한결같았다.

창전거리살림집들에 입사한 근로자들의 가정을 방문하신 김정은원수님(조선중앙통신)

뜨거운 격려, 다정한 말씀

그날 평양기계대학 교원인 심동수씨(56살)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오후강의를 하고 교실을 나서니 《본적이 없는 일군》이 다가와 《자동차를 타고 급히 집으로 가야 한다.》고 그를 재촉하였다. 대학을 출발한 자동차는 심동수씨의 안해 한은순씨(54살)가 교편을 잡고있는 동대원중학교, 맏딸 심선영씨(27살)의 직장인 새살림중학교에 들리고 창전거리의 집으로 향했다.

《쏜살같이 달렸다. 숨이 찼다. 우리 집이 3층인데 집안에서 손을 씻을새도 없었다. 식구들과 함께 현관앞에 섰더니 바로 그 직후 김정은원수님께서 계단을 올라오시는 모습이 시야에 들었다.》

텔레비죤에서 여러번 뵙던 그 영상이였다. 리설주부인께서는 술병을 넣은 비닐구럭을 드시고 따라서시였다. 심동수씨는 온몸이 경직되는것을 느꼈다.

《심장이 쿵쿵 뛰였다. 그런데 원수님께서 급히 달려오느라 혼났지, 어서 집으로 들어가자고 미소를 지으시니 내 몸의 긴장이 순간에 풀리고말았다.》

원수님께서는 매 방들을 다 돌아보시며 생활하는데 불편한것은 없는가, 물은 잘 나오는가, 전기는 어떤가고 하나하나 물어보시였다. 그리고 방안바닥에 허물없이 앉으시여 집식구들과 담화를 나누시였다.

평양평천공업대학의 분교에서 교원으로 일하는 둘째딸 심혜영씨(25살)도 뒤늦게 집에 도착하였다.

대학교원의 부인과 딸들은 어느 직장을 다니는가고 물어보시는 원수님께 식구들은 모두 교원이라고 말씀드렸다. 한은순씨는 그때 최고령도자와 나누었던 담화를 가슴깊이 새겨두고있다.

《원수님께서는 교육자집안이로구만, 이 가정이야말로 누가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조국의 미래를 위하여 묵묵히 량심을 바쳐가는 애국자가정이요-라고 하시며 우리 식구들을 격려해주시였다.》

내가 술을 가져왔는데 집식구들에게 한잔씩 붓겠으니 고뿌를 가져오 – 원수님의 말씀대로 한은순씨는 부엌으로 나가 식장에서 고뿌를 골라 내렸다. 그때 다시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밥상도 함께 들여오 – 원수님께서 부엌에다 대고 말씀하셨는데 내가 창고에 거두어놓았던 밥상을 찾다가 먼저 방에 들여다놓고 다시 부엌으로 가보니 리설주부인께서 어느새 내려놓은 고뿌를 가시고 계시는것이였다. 그러지 마시라고 몇번이나 만류했는데 결국 나는 그이의 옆에서 가셔진 고뿌를 마른 행주로 닦게 되였다. 그때 리설주부인께서 온 식구가 교원을 한다니 정말 쉽지 않습니다, 교원이란 아침 일찍 출근했다가 밤늦게 들어오는데 가정생활을 돌볼새도 없지 않습니까, 정말 수고합니다-라고 다정한 말씀을 건네여주시였다. 고뿌를 닦으면서 가슴에 뜨거운것이 북받쳐올랐다.》

박승일가정을 찾아 축하하는 시민들(사진 문광선기자)

나라일을 화제로 담화

만수대언덕으로부터 대동강기슭을 따라 형성된 창전거리는 김일성주석님의 탄생 100돐을 성대히 경축하고 새로운 주체100년대의 시작을 자랑차게 선포한 2012년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즐비하게 늘어선 고층아빠트에 각계층 근로자들이 돈 한푼 물지 않고 입사하였다. 당과 국가는 주택공급에 머무르지 않고 주민들의 살림살이의 실태까지 료해하고있다. 일군들이 제때에 방문하고 생활에서 애로되는 점이 없는가를 확인하고있다. 심동수씨의 집에도 두달사이에 중앙당의 책임일군들, 시당과 구역당의 책임비서가 왔다.

주민들의 반향은 책임일군을 통해 최고령도자에게 보고되였을것이다. 그런데 김정은원수님께서는 몸소 근로자들의 가정을 방문하시였다. 새 집이 마음에 드는가고 직접 물어보시고 집주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시였다.

심동수씨에 의하면 원수님께서는 《방문이 늦어진 리유》에 대해서도 말씀하시였다고 한다.

《원수님께서는 인민들이 새집들이를 하게 되면 곧 나가보려고 했는데 시간을 내지 못해 이제야 왔다, 나라의 정세가 긴장해서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을 돌아보고 왔다고 하시며 우리가 신문, 방송을 통해 알고있던 자신의 활동에 대해서도 말씀하시였다.》

담화내용은 살림살이에 대한 물음만이 아니였다. 령도자와 인민이 대화를 나누면 국사에 관한 화제도 자연스럽게 올랐다. 심동수씨의 가정에서는 《교육사업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깊은 사색과 탐구의 흔적이 어린 말씀이였다. 지금 여기에 대학교원, 중학교 교원이 앉아있는데 중학교에서 아이를 잘 키워서 대학에 보내야 대학교육의 질도 높아지고 나라의 과학기술이 더 발전하게 된다, 우리 교육이 세계의 추세를 따라 앞서나가야 한다, 내가 교육부문일군들에게 그를 위한 방법론을 잘 연구해보라고 과업을 주었다, 당에서는 교육사업을 중시하고 교육자들을 내세우고있다, 그러니 교원들도 현장에서 일을 더 잘해야 한다… 원수님의 말씀은 논밭에 대는 관개수처럼 우리 식구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온 나라 대가정의 어버이》

최고령도자의 갑작스러운 가정방문에는 《사전각본》도 《인위적인 연출》도 없었다. 그 어떤 격식도 차리지 않은 《인민의 충복》의 높은 사명감이 창전거리에 화목하고 단란한 대가정의 화폭을 펼친것이다. 창전거리로 발걸음을 옮긴 령도자에게는 뚜렷한 안목이 있었다.

《생활하는데 불편한것이 없는가. 그 물음에 모든것이 다 마음에 든다고 대답을 드렸더니 원수님께서는 살림집건설이 창전거리로 끝나는것이 아니다, 집주인이 솔직히 말을 해주어야 앞으로 우리가 인민들에게 더 좋은 살림집을 마련해줄수 있다고 하시며 같은 물음을 던지시는것이였다.》

김정은원수님께서는 당과 국가의 모든 시책이 인민을 위하여 실시되는것이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라고 말씀하시였다. 조선에서는 최고령도자가 인민들속에 들어가 정치의 방향선을 세운다. 그리고 친근한 령도자와 의사를 소통한 인민들이 그이의 정치를 스스럼없이 따르고있다.

창전거리의 교육자가정은 나라의 령수를 만나뵈웠을 때의 심정을 《온 나라 대가정의 어버이를 자기 집에 모신 기쁨》이라고 표현하였다. 심동수씨는 교원들이 현장에서 일을 더 잘해야 한다는 령도자의 말씀을 《우리 집식구들에게 주신 과업》으로 접수했다고 한다.

《창전거리를 지나가신 원수님께서 다시 우리 집을 찾으시면 사업성과를 떳떳이 보고하고싶다. 그이의 뜻을 받들어 열심히 일해나가겠다.》

(조선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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