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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꾜에서 강제련행진상조사단결성 40돐기념집회

2012년 08월 24일 15:13 주요뉴스

과거청산 회피, 2000년대의 차별정책

조선인강제련행진상조사단결성 40돐기념집회가 18일, 日本体育会館(도꾜도 지요다꾸)에서 진행되였다. 여기에 각지 조사단 성원들 등 약 100명이 참가하였다.

집회에서는 먼저 주최자를 대표하여 조사단조선인측중앙본부 단장인 총련중앙 박구호부의장 겸 권리복지위원회 위원장이 인사를 하였다.

박구호부의장은 일본의 식민지통치로부터 해방된지 67번째가 되는 8월 15일을 맞이하였으나 일본은 조선민족에 대한 사죄와 보상은커녕 불법적인 식민지통치를 정당화하고 일본군성노예문제와 간또대진재조선인대학살의 사실을 삭제한 교과서를 공적기관에 통과시키는 등 반인륜적범죄행위를 외곡, 은페하려고 하고있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조일평양선언 10돐을 맞으면서도 부당한 《경제제재》조치를 해제하지 않고 《고교무상화》제도에서 조선학교를 계속 제외하고있다고 강조하면서 일본정부는 평양선언에 따라 량국간의 비정상적인 관계를 하루빨리 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어 기조보고를 한 조사단일본인측 전국련락협의회 原田章弘공동대표는 1972년의 결성이래 40년간의 활동을 돌이켜보았다.

조사단은 이해 오끼나와현에서 처음으로 일본군《위안부》피해자를 확인하고 총련 오끼나와현본부가 피해자에 대한 지원활동을 시작한것을 계기로 그후 일본각지에서 전쟁말기 조선인이 지하시설공사에련행된 사실의 조사, 강제련행피해자의 명부공개, 또한 유엔에서의 문제제기 등 폭넓은 활동을 진행하여왔다.

하라다공동대표는 현재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조선학교에 《고교무상화》를 적용시키는것이라며 《일본에 조선인들이 존재하는 특수한 력사적배경을 보다 광범한 사람들에게 알려나가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집회에서는 《조선고급학교학생의 고교무상화배제는 중대한 인권침해》란 제목으로 심포쥼이 진행되여 고도모教育宝山大学 佐野通夫教授, 龍谷大学 戸塚悦郎 이전 교수, 재일본조선인인권협회중앙본부 김동학사무국장이 발언하였다.

사노교수는 식민지통치하에서의 민족성박탈과 황민화정책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그는 조선총독부가 만든 교육제도의 목적은 식민지통치하의 사회에서 일본인에게 복종하는 보조적인 존재로서의 《식민지인》을 양성하는것이였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일본정부는 해방후도 일본에서의 조선학교의 존재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고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조선학교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고있다고 강조하였다.

도쯔까 이전 교수는 중대한 인권침해의 피해회복을 요구하는 권리에 대하여 해설하면서 유엔에서는 일본군《위안부》, 강제련행 등의 범죄처벌에 대해서는 론의되고있지만 일본에서는 《위안소》설치에 대한 군, 관헌의 관여를 인정한 고우노담화(1993년)가 있을뿐 실지로는 아무런 보상도 이루어지지 않고있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문제는 중대한 인권침해라고 언급하면서 앞으로 유엔기관에 대한 요청활동을 강화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김동학사무국장은 《고교무상화》제도에서 조선학교가 제외된 일련의 흐름, 또한 지방자치체로부터의 교육보조금의 페지, 삭감 등의 문제와 관련한 일본각지의 활동에 대해 언급하고 이제까지 축적된 경험을 운동에 살려나가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자면 행정, 언론, 시민운동 등 다각적으로 활동을 벌리는것이 중요하다며 량심적인 일본시민들과 련대하면서보다 큰 권리획득을 이룩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날 집회에서는 호소문이 채택되였다. 호소문은 조사단이 강제련행 등 일본의 과거범죄에 대한 조사활동을 계속하는것과 동시에 피해회복을 위한 립법활동의 전진, 재일조선인의 존엄의 보장과법적지위 확립을 위한 활동에 힘을 기울여나갈것을 강조하였다.

조사단의 발족

조선인강제련행진상조사단은 1972년 8월 15일, 《第2次大戦時沖縄朝鮮人強制連行虐殺真相調査団》으로 발족하였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일본정부는 조선인강제련행의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를 일체 실시하지 않고있었으며 조선인과 일본인의 합동조사단이 결성됨으로써 비로소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였다.

이후 1973년에 혹가이도, 74년에 규슈, 75년에 도호꾸지방에서 조선인강제련행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였으며 79년에는 히로시마, 나가사끼의 조선인피폭자의 실태조사가 진행되였다. 그리하여 90년대부터는 일본각지 25도도부현에 조사단이 결성되여 지역에 밀착한 조사활동이 전개되고있다.

(조선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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