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40층에서 누리는 새 살림 / 창전거리 고층아빠트 주민을 찾아서
2012년 08월 30일 10:55 주요뉴스【평양발 리상영기자】지난 6월에 준공된 창전거리의 살림집들에서 주민들이 새 생활을 누리고있다. 42층짜리 아빠트에 입사한 장영길씨(58살, 평양시 중구역 상하수도관리소 로동자)의 가정을 찾았다.
《불편 느끼지 않는다》
창전거리에는 이번에 모두 14동의 고층아빠트들이 일떠섰다. 장영길씨의 가족이 입사한 9호동은 경상동 종로네거리의 일각에 위치하고있다.
1층현관에서 승강기를 타고 그의 집이 있는 40층을 향한다. 평양승강기공장에서 생산된 국산승강기로 곧바로 올라가면 소요시간은 1분 30초이다.
《잘 오셨습니다.》 장영길씨와 그의 안해 조옥희씨(57살, 모란봉 공원관리소 온실작업반 로동자)가 문앞에서 기자를 맞이해주었다.
3칸짜리 새 집의 크기는 90여㎡. 공동살림방과 2개의 살림방, 부엌, 목욕탕, 창고 등이 그쯘하게 갖추어져있다. 침대, 옷장, 이불장, 밥상 등의 가구들도 새로운것이 설치되였다. 지상 40층의 베란다에서는 평양시내 경치를 한눈에 바라볼수 있다.
《새 집에서 생활하여 두달이상 지났는데 아직도 자기 집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장영길씨가 웃으며 말한다.
현재 이 집에서는 부부만 2명이 살고있다. 맏딸(28살)은 3년전에 시집을 갔고 20살난 둘째딸과 올해 3월에 중학교를 졸업한 막내아들(17살)은 군사복무를 하고있다. 《넓은 집을 배당받았는데 집안에 2명밖에 없으니 너무 조용해서…》 조옥희씨도 롱담삼아 이야기한다.
새로 준공된 창전거리 살림집들에는 총 2,784세대가 입사하였다. 그중 만수대지구의 원래 주민이 약 2,500세대이다. 독신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주민세대가 다 3칸짜리이상의 집을 배당받았다. 2세대가 함께 사는 가정은 4칸짜리, 5칸짜리 집에 들어갔다.
장영길, 조옥희부부가 입사한것은 준공식의 2일후인 6월 22일. 입사전날, 시인민위원회로부터 입사증을 받았을 때 처음으로 자기들이 40층에 들어가게 된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조옥희씨는 《새 집이 얼마나 멋이 있는지, 집안에 들어선 순간 기가 막혔다. 마음 편안히 생활할수 있으니 밤에도 얼마나 잠이 잘 오는지 모른다.》고 새 생활의 소감을 이야기한다.
장영길씨도 《김정은원수님께서는 창전거리건설을 지도하시면서 합격도장은 인민들이 찍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평범한 로동자가정에 이렇게 훌륭한 집을 안겨주었으니 나라의 혜택이 정말로 고맙다. 생활에서 불편한 점이란 없다.》고 말한다.
입사시에는 각종 생활필수품과 식료품들이 국가에서 공급되였다. 준공후에도 아빠트건설을 담당한 일군들이 계속 현지에 남아서 제기되는 문제에 대처하고있다.
주민들의 감격
1980년에 결혼한 장영길, 조옥희부부는 둘다 만수대지구에서 나서자랐다. 장영길씨의 집은 원래 만수대언덕에 있었다. 1970년대에 김일성주석님의 동상을 건립할 때 집이 철거되여 현재 아동백화점이 있는 자리의 한칸짜리 아빠트에 살림을 옮겼었다.
지난해 4월, 창전거리를 건설한다는 결정이 주민들에게 전달되였다. 조옥희씨는 《우리도 새 집을 받을수 있구나! 너무 기뻐서 마음이 높뛰였다.》고 회고한다. 부부는 철거주민의 생활을 돌보아줄데 대한 국가적조치에 따라 세대주의 직장이 준비해준 집에서 준공의 날까지 살았다. 《공사장의 모습을 밖에서 바라보면서 오늘은 건물이 1층 올라갔구나, 래일은 어느만큼 공사가 진척될가 하고 1년후에 자기가 살게 될 집을 그려보군 하였다.》
둘다 도시경영부문 로동자이며 오래동안 만수대지구에서 살아온 부부가 맨 먼저 입사할수 있도록 조치가 취해졌다. 《한칸짜리 집에서 살아온 자기들이 3칸짜리 새 집을 돈 한푼 들이지 않고 배당받는다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장영길씨는 이야기한다. 종전에 비해 집의 크기는 3배로 되였다.
직장사람들과 친척들의 축하와 부러움속에 새 살림을 꾸린 장영길부부가 자랑하는것이 베란다에서 바라보이는 평양시내의 경치이다. 대동강을 끼고 동평양지구와 릉라도, 모란봉, 만수대지구까지 한눈에 안겨온다. 지난 7월 27일에 진행된 전승절경축축포야회도 보았다고 한다.
이날은 시집을 간 맏딸 장금향녀성과 그의 남편 최경철씨, 자식인 최태영어린이가 집을 방문하고있었다. 새 집에서 손자와 함께 휴일의 한때를 보내는것도 그들의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군사복무를 하는 자식들에게는 새집들이를 한 사실을 편지하여 알렸다. 안해가 《자식들이 군사복무를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이 집을 잘 꾸려야 한다.》고 말하자 세대주도 《훌륭한 새 집을 마련해준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자기 직장에서 일을 더 잘 해나가겠다.》고 결의를 피력하였다.
(조선신보)
(사진 리상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