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통신, 김일성주석님의 조국해방전쟁승리업적에 관한 보도 발표


《미제국주의를 타승한 위대한 전승의 력사는 영원할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은 25일,  김일성주석님의 조국해방전쟁승리업적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보도를 발표하였다.

주체로 빛나는 김일성조선의 새로운 100년대가 시작된 력사의 해에 조국해방전쟁승리 59돐을 맞이한 우리 군대와 인민은 지금 크나큰 긍지와 자부심에 넘쳐있다.

전승의 축포가 오르던 력사의 그날을 더듬어보는 전쟁로병들로부터 전후의 새 세대들에 이르는 우리 인민모두는 3년간의 조국해방전쟁에서 가장 포악한 미제국주의를 때려부시고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영예롭게 수호해주신 위대한 김일성대원수님의 불멸의 애국업적을 가슴뜨겁게 되새기고있다.

조국해방전쟁에서의 승리는 우리의 사상의 승리,전략전술의 승리,정신의 승리였다.

선렬들이 물려준 위대한 전승의 업적과 전통은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귀중한 혁명유산이며 우리 군대와 인민이 최후의 승리를 위한 투쟁에서 억세게 틀어쥐고나가야 할 백승의 기치이다.

1. 위대한 주체사상,선군사상의 빛나는 승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비범한 사상리론적예지로 전쟁의 승리를 이룩하는데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주체의 원리에 기초하여 풀어나가시였다.

1945년 가을 온 나라가 해방의 감격으로 설레이던 그 시기에 벌써 《해방자》의 탈을 쓰고 남조선에 기여든 미국의 정치군사적움직임과 당시의 국제적환경을 예리하게 통찰하신데 기초하여 그의 침략적인 대외전략과 대조선정책의 본질을 주체적립장에서 규명해나가시였다.

전쟁이 일어난 6월 25일 공화국 내각비상회의에서 하신 연설 《결정적인 반공격으로 무력침범자들을 소탕하자》와 다음날인 26일 전체 조선인민에게 하신 방송연설 등을 통하여 조선전쟁은 세계제패를 위한 미국의 침략적대외정책의 직접적산물이며 그를 반대하는 우리의 전쟁은 명실공히 조국의 자유와 독립,민주주의를 위한 정의의 조국해방전쟁이라는것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의 승리를 위한 당의 전략사상도 혁명전쟁에서 인간, 인민대중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에 기초하여 명시하시였다.

1950년 6월 26일과 9월 9일 전체 조선인민에게 하신 방송연설들에서 조국해방전쟁을 전인민적전쟁으로 전환시킬데 대한 애국의 사상,단결의 사상을 제시하시였다.

8.15해방 5돐기념 평양시경축대회에서 하신 보고《모든것을 전선에로》를 비롯한 여러 보고와 연설들을 통하여 군대와 인민이 혈연적으로 결합되여 일심동체를 이루고 전체 인민이 직접 손에 무기를 잡고 떨쳐나서는 한편 돈있는 사람은 돈으로, 힘있는 사람은 힘으로 전선을 백방으로 원호해나서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전쟁의 전행정에서 군대의 정치사상적 및 전략전술적우세를 확고히 보장할데 대한 사상도 제시하시였다.

여러 로작과 연설들을 통하여 그 어떤 제국주의군대나 반동적착취계급의 군대도 가질수 없는 조선인민군의 정치사상적 및 전략전술적우월성과 위력, 그것이 혁명전쟁수행에서 노는 결정적작용과 역할, 나서는 과업과 방도를 심오히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6월 27일 연설 《조국해방전쟁의 승리를 위한 각 정당들의 과업》, 1950년 10월 11일 방송연설 《조국의 촌토를 피로써 사수하자》 등 주요연설들에서 현대전쟁의 특성과 나라의 형편, 우리 인민의 애국열의에 맞게 전선의 물질적수요를 자력갱생의 원칙에서 자체의 힘으로 보장할데 대한 사상을 제시하시고 실천에서 나서는 원칙적요구와 방도도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대부대전과 소부대전, 정규전과 유격전을 옳게 배합하며 산악전과 야간전을 잘할데 대한 주체적인 군사전략사상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전략사상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나라의 지형상특성과 인민군대의 정치사상적, 군사기술적특성에 대한 과학적분석, 항일전의 풍부한 경험에 기초한 주체적군사전략사상은 전쟁의 전행정에서 일관하게 틀어쥐고 구현해야 할 원칙으로, 전쟁에서 적용하는 모든 군사전법창조와 활용의 지도적지침으로 되였다.

혁명운동에서 인민대중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 사상의식이 노는 결정적역할에 관한 주체의 원리로부터 출발하고있는 전략사상은 가장 과학적이며 혁명적인것으로서 포악한 미제침략자들과 추종세력들을 타승하고 력사의 기적을 창조할수 있게 한 강위력한 정치사상적무기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시 당의 전략사상을 구현하기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령도하시였다.

전쟁개시 이틀후인 1950년 6월 27일 전체 당단체들과 당원들에게 보내신 편지와 전쟁 3년간 해마다 진행된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들을 통하여 전시환경에 맞게 당사업을 개편하고 전선과 후방에 대한 당의 령도적역할을 백방으로 높이도록 하시였다.

전화의 불길속을 뚫고 락원과 장산리를 비롯한 공장과 농촌, 산간지구를 련이어 찾으시여 당세포회의들을 몸소 지도하시며 당조직들의 전투적기능과 당원들의 선봉적역할을 높여나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인민군대를 정치사상적으로 더욱 강화하기 위한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결정에 따라 조선인민군 문화훈련국이 총정치국으로, 각 부대안의 문화부들이 정치부로 개편되였으며 당원들의 드높은 정치적열의속에 모든 인민군부대들에 각급 당조직들이 나오게 되였다.

1950년 7월 모범전투원들을 화선입당시킬데 대한 문제를 발기하시고 8월에는 당중앙위원회 조직위원회 결정으로 화선입당제를 채택하도록 하시였다.

공화국영웅칭호와 전사의 영예훈장,자유독립훈장 등 인민군장병들에 대한 새로운 국가표창과 부대 및 련합부대들에 대한 근위칭호, 훈장수여제를 제정실시하도록 하시여 군인들의 애국주의정신과 대중적영웅주의를 고무추동하시였다.

한계렬, 강호영, 조군실을 비롯한 인민군용사들속에서 발휘된 영웅적위훈에서 대중적애국운동의 귀중한 싹을 발견하시고 《나의 고지》운동, 복수기록운동,《민청》호쟁취운동 등을 군대내 당정치사업강화의 중요한 고리로 틀어쥐고나가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정권기관들의 기능과 역할을 백방으로 높이고 근로단체사업, 통일전선사업을 강화하며 혁명적군중로선과 계급로선을 편향없이 관철하는 문제를 비롯하여 후방의 정치사상적공고화를 위한 투쟁도 현명하게 이끄시여 당의 전략사상이 빛나게 구현되도록 하시였다.

참으로 3년간의 조국해방전쟁에서의 승리는 우리 인민을 또다시 노예로 만들려는 제국주의의 침략사상, 인간증오사상에 대한 인간중시, 인민사랑의 주체사상, 선군사상의 승리였다.

2. 천재적예지와 탁월한 전략전술,군사전법의 승리

미제가 지난 조선전쟁에 적용한 모든 전략과 전술, 전법들은 서방세계에서 수많은 침략전쟁을 치른 《저명한 전략가》들과 악명높은 호전《장군》들이 달라붙어 짜낸것이였다.

미국은 조선의 좁은 전선에 최신장비로 무장한 미륙군의 3분의 1과 공군의 5분의 1, 태평양함대의 대부분, 15개 추종국가군대와 남조선괴뢰군 및 일본군국주의자들까지 도합 200여만명의 대병력을 동원하였다.

해방된지 5년, 정규군을 가진지 2년밖에 안되는 청소한 우리 공화국과 인민이 백수십년의 침략력사와 수적, 기술적우세를 자랑하는 세계제국주의의 우두머리 미국을 타승할수 있은것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탁월한 군사적예지와 전략전술, 군사전법이 있었기때문이였다.

1950년 6월 전쟁개시 첫 시기에 벌써 조성된 군사정치정세와 적아간 력량관계를 예리하게 분석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 제1계단의 대담한 전략적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적들의 불의의 무력침공에 즉시 결정적인 반공격전을 개시하여 들어온 침략자들을 모조리 소멸하고 전지역에서 적들의 증원과 상륙을 막아냄으로써 전쟁의 승리를 이룩할데 대한 단호한 군사적조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당,전군,전민을 통일적으로 장악지도하는 공화국 군사위원회와 나라의 전반적무력을 통솔하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를 내오도록 하신것을 비롯하여 모든 사업을 전시체제로 개편하시였다.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은 천재적군사전략가이시며 불세출의 위인이신 김일성동지께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전적으로 의탁하면서 경애하는 수령님을 군사위원회 위원장으로,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독창적인 전략전술에 따라 전전선에 걸치는 결정적인 반공격이 개시되였다.

전쟁개시 3일만에 제105땅크사단의 서울돌입과 괴뢰중앙청의 공화국기게양과 같은 통쾌한 전과가 이룩되고 서울해방작전은 미국의 식민지통치체계를 밑뿌리채 뒤흔들어놓았다.

수원과 인천해방에 이어 《상승사단》이라고 하던 미제24보병사단의 선견대인 《스미스특공대》를 오산계선에서 단매에 격파함으로써 조선에서의 미군의 첫 싸움이 참패로 기록되고 미군의 비극적인 패주의 첫막이 열리게 되였다.

이와 관련하여 미극동군사령관 맥아더는 합동참모본부에 보낸 편지에서 《적은 공세적이며 잘 훈련된 직업적군대이고 군최고수뇌도 우수한 지휘를 할줄 알며 전략전술의 원칙도 잘 리용하고있다.》고 고백하였다.

군사적기적은 지상에서만 이룩된것이 아니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밝혀주신 주체전법대로 우리의 영용한 해병들은 주문진앞바다에서 단 4척의 어뢰정으로 바다의 《움직이는 섬》이라고 불리우던 1만 7,000t급 적중순양함 《볼티모》호를 격침시키고 1만 2,000t급 경순양함을 격파함으로써 세계해전사의 특대위훈을 세웠다.

우리의 용감한 비행대들도 첫 공중전에서 《B-29》전략폭격기를 포함한 적기 13대를 격추하고 10여대를 격상함으로써 세계공중전력사에 찬란한 새 페지를 장식하였다.

현대포위전의 위대한 모범이 창조된 대전해방작전의 빛나는 승리와 이르는곳마다에서의 련속적인 포위섬멸전, 적의 《부산근거지》에 대한 공격작전과 《대구의 위기》의 조성 등 세인을 놀래운 군사적기적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를 떠나 생각할수 없다.

전쟁초기 괴뢰군의 기본집단을 소멸하고 미제침략군에 섬멸적타격을 주었으며 남조선지역의 90%이상,남조선인구의 92%이상을 해방한 전쟁 제1계단의 혁혁한 전과는 주체적군사사상과 전법,탁월한 령군술의 위대성과 생활력에 대한 일대 과시였다.

1950년 9월중순 적아력량관계의 변화와 전선형편의 엄중성을 과학적으로 통찰하신데 기초하여 전쟁 제2계단의 전략적방침을 제시하시였다.

화를 복으로 전환시켜나가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신비한 지략과 전법이 있었기에 인민군대는 일시적인 전략적후퇴의 성과적보장과 정규군에 의한 강력한 제2전선형성, 힘있는 적배후타격전으로 조성된 난국을 타개하고 전쟁의 새로운 단계에 들어설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50년 10월 24일 최고사령부 작전회의에서 새로운 전략적계단에로의 이행을 선포하시고 전쟁의 전환적국면을 가져오기 위한 전쟁 제3계단의 전략적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안으시고 적주공력량이 집중되여있던 대격전장에 최고사령부 야전지휘소를 옮기신 위대한 수령님의 무비의 담력과 령도가 있어 운산지구 대포위소멸전의 빛나는 승리가 이룩되고 압록강으로 진격한다던 《감은절공세》의 파탄에 이어 《크리스마스공세》는 38?선 이남으로의 총퇴각으로 역전되였다.

1951년 6월에 적아쌍방은 38?선일대를 경계로 대치상태에 들어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선에 조성된 군사정치정세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신데 기초하여 전쟁 제4계단에서 수행해야 할 전략적방침을 제시하시였다.

그이의 빛나는 전략전술과 전법들에 의해 적들의 《하기 및 추기공세》는 오히려 1211고지방위전투와 같이 우리 식의 독특한 진지방어전, 갱도전에 의거하여 적들의 대규모적공세를 완전격파하고 현대방어전의 빛나는 모범을 창조하는 력사적계기로 되였다.

비행기사냥군조운동과 땅크사냥군조운동, 저격수조활동, 독립중기조활동, 적후파괴조활동, 기동포병중대활동, 직사포조활동을 비롯하여 이 시기에 제시하신 전법들은 그 어느것이나 다 우리 나라의 구체적지형과 실정에 맞는 새롭고 독창적인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상에서의 공격과 함께 수백척의 함선과 백수십대의 비행기를 동원하여 통천상륙을 꾀하는 적들의 기도를 앞질러 간파하시고 강력하고 집중적인 포병화력타격을 들이대여 완전히 분쇄해버리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52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제5차전원회의의 보고와 결론, 12월 30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명령 등을 통하여 미제의 《신공세》를 여지없이 박산내고 최후승리를 마련할데 대한 전략전술적방침과 전투과업을 제시하시고 불면불휴의 전선현지지도로 군대와 인민을 힘있게 불러일으키시였다.

일명 《스맥크작전》으로,《신공세》의 전주곡이라고 부르던 《정형고지》전투는 세계면전에서 대참패로 끝나고 아이젠하워와 미국의 위신은 땅바닥에 떨어졌다.

1953년 2월 7일 조국해방전쟁사에 불멸의 업적을 쌓아올리신 최고사령관 김일성동지께 온 나라 전체 군대와 인민은 다함없는 흠모의 마음을 담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칭호를 수여해드리였다.

전승의 날은 하루하루 다가오게 되였다.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에서 적들은 미제침략군 40만 5,490여명을 포함한 156만 7,120여명의 병력을 잃고 1만 2,220여대의 비행기, 3,250여대의 땅크 및 장갑차, 1만 3,350대의 자동차, 560여척의 함선 및 선박, 7,690여문의 포, 92만 5,150여정의 저격무기를 완전히 잃었거나 격파, 격상당하였다.

미국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는 《미군의 손실은 미국인이 다섯번의 대전쟁 즉 독립전쟁, 1812년전쟁, 메히꼬전쟁, 미국에스빠냐전쟁 및 필리핀전쟁에서 입은 손실을 다 합친것보다 2배이상 더 많다.》고 개탄하였다. 이것은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파멸이였다.

조선전쟁에서의 미국의 대참패는 제국주의자들의 《무기만능론》을 짓부시고 반제혁명전쟁의 참다운 모범을 창조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주체적군사사상과 천재적지략, 탁월한 령군술의 위력과 불패성에 대한 뚜렷한 증시로 된다.

3. 령도자와 군민의 정신력의 승리

조국해방전쟁에서의 승리는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혁명적신념과 무비의 담력, 수령의 두리에 일심단결된 군대와 인민의 정신력의 승리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담대한 배짱과 억천만번 죽더라도 원쑤를 쳐부시고 기어이 승리해야 한다는 위대한 수령님의 강의한 의지는 전화의 나날 우리 군대와 인민이 발휘한 백절불굴의 정신력의 근본원천으로,무한한 애국주의정신의 원동력으로 되였다.

1950년 6월 25일 내각비상회의장에 나오시며 놈들이 어리석기 짝이 없소, 미국놈들이 조선사람을 잘못보았소 라고 말씀하시던 그이의 여유작작한 모습은 신념과 의지의 제일강자이시고 혁명적락관주의의 최고화신이신 그이의 거룩한 영상을 다시금 가슴뜨겁게 되새기게 한다.

우리 수령님은 전쟁이 한창인 속에서도 최고사령부의 작전대우에 수도 평양을 비롯한 조국건설의 웅대한 설계도를 펼치시고 승리한 래일을 하나하나 마련하신 신념과 의지의 화신이시고 강철의 령장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포화속을 뚫고 서울과 수안보에 자리잡고있는 전선사령부에까지 자주 나오시여 싸우는 인민군전사들을 영웅적위훈에로 불러일으키시였다.

자정도 훨씬 지난 깊은 밤에 1211고지를 지키고있는 군부대장을 전화로 찾으시고 고지에서 싸우고있는 전투원 한사람한사람은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귀중한 보배들이며 혁명전우들이라고, 선기가 나는것 같은데 전투원들이 더운밥과 따끈한 국을 먹도록 해주고 잠자리도 춥지 않게 해주어야 한다고 사랑의 간곡한 당부를 하시였다.

전화의 불길속에 마련된 병사들을 위한 화선휴양소와 전반적무상치료제의 실시를 비롯하여 그이께서 베푸신 뜨거운 어버이사랑은 전사들과 인민들의 가슴마다에 열렬한 조국애와 원쑤격멸의 의지가 활화산처럼 용솟음치게 하였다.

인민들이 조밥을 먹을 때에는 우리도 조밥을 먹어야 한다고 깨우쳐주시고 부모잃은 아이들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최고사령부에서 부모잃은 아이들을 친히 키우시였다.

인민의 생명재산을 념려하시며 서울시에 대한 총공격개시시간을 날이 밝은 아침으로 정하신 분도 우리 수령님이시였고 일시적인 전략적후퇴의 긴박한 정세속에서도 서울시민들의 땔나무걱정을 하신 분도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이민위천의 숭고한 사상과 영광스러운 항일전에 뿌리를 두고있는 이 위대한 사랑과 믿음은 인민군전사들과 인민들을 불사신으로 만든 근본원천으로 되였다.

1950년 6월 전체 당단체들과 당원들에게 보내는 당중앙위원회 편지를 계기로 시작된 자원적인 전선탄원운동은 전사회적, 전군중적사업으로 힘있게 벌어졌다.

공화국남반부 해방지역에서도 전선탄원이 벌어졌다. 1950년 8월 15일 현재 북남조선에 걸쳐 전선탄원운동은 대중적운동으로 확대되여 그 수는 무려 124만 9,000여명에 이르렀다.

최고사령부를 끝까지 따르고 목숨바쳐 옹위하겠다는 철석의 의지, 참된 삶과 행복의 요람을 빼앗으려는 원쑤들과 사생결단하겠다는 비장한 각오, 이것이 조국의 한치한치의 땅을 피로써 사수한 우리 군대와 인민의 불굴의 정신력이였다.

공화국영웅 리대훈해안포병중대장을 비롯한 월미도의 영웅적방위자들은 이 정신력을 발휘하여 단 4문의 포로 5만여명의 대병력과 수백척의 함선, 약 1,000대의 비행기와 맞서 3일간이나 진지를 고수함으로써 적의 인천상륙을 지연시키고 인천-서울지역방어부대들에 귀중한 시간을 보장해주었으며 인민군주력부대의 전략적후퇴보장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일시적인 전략적후퇴시기 락동강연안에 진출하였던 련합부대들까지 모두가 소백산줄기와 태백산줄기의 높고 험한 령과 골짜기들, 키를 넘는 강을 건느며 인원과 무기 및 전투기술기재를 보존한채 지정된 지점에 신속히 집결하였다. 그 대오속에는 남조선의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 지식인들과 나어린 소년들도 있었다.

그것은 수령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찾아가야 전쟁에서 이길수 있다는 굳은 신념과 의리였다.

이 나라의 평범한 법동로인과 월미도의 용사들, 온 나라 군대와 인민의 심장속에 자리잡은 이 신념이 있어 간고한 후퇴의 길에서도 우리의 대오는 백배해졌다.

1211고지의 방위자들은 《우리에겐 죽어 묻힐 땅은 있어도 살아 물러설 땅은 한치도 없다는것을 똑똑히 알고있습니다. 장군님의 전사들이 서있는 한 1211고지는 영원히 조국의 고지로 남아있을것입니다.》라고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 올린 맹세대로 용감하게 싸웠다.

18살의 민청원 리수복영웅은 무명고지릉선에서 불뿜는 적의 화구를 가슴으로 막아 부대의 돌격로를 열었다. 고지에서 치명상을 입은 한 전투원은 생명의 마지막순간에 《김일성장군 만세!》를 소리높이 웨치며 수류탄묶음을 안고 적진속에 굴러들어가 육탄으로 적들을 소멸하였다.

적강점지역과 후방의 인민들도 고지의 전사들과 한마음한뜻이 되여 자기의 고향과 마을, 일터와 학교를 지키면서 전쟁승리를 위한 투쟁에 떨쳐나섰다.

각지 인민유격대들의 용감무쌍한 유격활동은 적들에게 정치군사적타격을 주고 우리 인민의 조국수호정신, 애국주의기상을 남김없이 떨치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60여개의 청소년근위대 대원들 또한 영웅조선의 청소년답게 수령님의 아들딸로서의 영예를 안고 용감하게 싸웠다.

후방의 로동계급은 《후방도 전선이다!》라는 전투적구호밑에 전선작업반운동, 전선지원청년작업반운동을 비롯한 여러가지 전시증산경쟁운동을 벌리면서 전시생산을 다그쳤다.

농촌에서는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식량을 위한 투쟁은 조국을 위한 투쟁이며 전선의 승리를 보장하기 위한 투쟁이다》 등의 전투적구호를 높이 받들고 봄씨붙임과 품앗이반,소겨리반을 조직운영하였다.

녀성들이 남편, 오빠를 대신하여 보잡이운동에 너도나도 떨쳐나섰고 남강마을녀성들처럼 싸우는 고지에 식량과 탄약을 지고 올랐다.

철도수송전사들은 《수송도 전투이다》라는 구호밑에 전시수송을 목숨바쳐 보장하였으며 군수부문 로동계급은 싸우는 고지의 전사들에게 자기들의 피와 땀이 스민 무기와 탄약들을 보내주었다.

삽시에 전체 인민들의 호응을 받는 애국운동으로 번져진 군기기금헌납운동과 조국보위복권에 대한 구매사업 등 전쟁승리를 위한 일이라면 누구나 다 높은 애국열의를 안고 떨쳐나섰다.

가렬한 전쟁의 불길속에서 한목숨바쳐 조국을 수호하는 영웅들의 대렬이 늘어났다. 공화국영웅 김창걸소대장과 조순옥간호원, 안영애간호원, 지남산유격대의 조옥희녀성을 비롯하여 3년간의 조국해방전쟁에서 533명의 공화국영웅 및 2중영웅이 배출되고 수많은 전투원들이 각종 국가수훈의 영예를 지니였다.

또한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사수하는 투쟁에서 위훈을 세운 13개의 인민군련합부대, 부대가 근위칭호를, 14개의 부대가 국기훈장 제1급 및 자유독립훈장 제1급, 제2급을 수여받았다.

이처럼 우리 군대와 인민은 《모든것을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라는 당과 수령의 호소를 심장으로 받들고 그 관철을 위해서라면 자기의 청춘도 희망도 행복도 지어 둘도 없는 목숨까지도 깡그리 바쳐 싸웠다.

이런 군대와 인민을 모르고 저들의 《승리를 예고》한 적들의 공격은 말그대로 망상이였다.

미국의 한 출판물은 자기 나라 병사들의 정신상태와 관련하여 그들은 《무엇때문에 조선에서 싸우고있는지 전혀 모르고있다.》고 하면서 미1해병사단의 한 대좌만이 로골적으로 《나는 한달에 700US$를 벌기 위하여 싸우고있다.》고 말했다고 전하였다.

우리 군대와 인민이 조국해방전쟁에서 그처럼 빛나는 승리를 이룩할수 있은것은 전적으로 위대한 김일성동지를 수령으로 높이 모시고 그이의 탁월하고 세련된 령도를 받았기때문이다.

이에 대해 클라크는 《한국전쟁비사》에 이렇게 썼다.

《북조선군이 … 성공을 거둔것은 … 김일성장군의 유능한 지휘때문이라고 할수 있다.

김일성장군은 … 일본이 2차대전에서 패망하게 될때까지 다년간에 걸쳐 일본군에 항전한 지휘관으로서 훌륭한 공적을 세웠으며 … 김일성이라는 이름은 모든 조선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조선의 애국적행동의 상징으로 되였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3년간의 조국해방전쟁시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수상,군사위원회 위원장,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서 전쟁의 모든 중하를 한몸에 지니시고 우리 당과 군대,인민을 조직령도하시여 빛나는 승리를 안아오시였다.

20세기 30년대에 아직 20대에도 이르시지 않은 젊으신 청년장군으로강도 일본제국주의와의 항일대전을 선포하시고 20성상 피어린 혁명전쟁으로 일제를 패망시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50년대에 또다시 강대한 미제를 비롯한 세계반동의 련합세력을 타승하심으로써 40대에 벌써 두 제국주의강적을 때려부신 만고의 령장으로,반제투쟁의 승리의 상징으로 세인의 다함없는 흠모와 신뢰를 받으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대원수님께서는 애국의 빛나는 전통을 이으시여 지난 수십성상 총포성없는 혁명전쟁에서 사회주의조국과 혁명을 굳건히 수호하시고 주체혁명위업완성의 귀중한 토대를 마련해주시였다.

오늘 조선혁명의 진두에는 우리 당과 인민의 최고령도자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서계신다.

불세출의 위인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두리에 한마음한뜻으로 뭉쳐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나아가는 우리 군대와 인민은 전승의 력사와 전통을 끝없이 이어나갈것이다.

(조선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