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 100년사》의 유산 / 계승되는 주석님의 업적 3
2012년 04월 10일 13:30 공화국건국, 건당, 건국 / 최고사령관과 어깨겯고 팔 끼고
최전연초소에 펼쳐진 일심의 화폭
평양에서는 10만세대 살림집을 비롯하여 2012년을 완공목표로 전한 대규모건설사업이 진행되여왔다. 조선의 수도를 세계적인 도시로 더 잘 꾸릴데 대한 조선로동당의 방침에 따라 작년 6월부터는 대학생들도 건설현장으로 나갔다.
당을 따라 앞으로
김책공업종합대학에서 배우는 손대성학생(24)과 그의 동창생들은 만수대지구에 건설되는 인민극장주변의 지대정리를 맡았다.
《건설에 참가하는것은 응당한 도리다. 사랑과 혜택을 받아안기만 했던 청년들도 김일성주석님 탄생 100돐을 떳떳이 맞이할수 있어야 한다.》
규정된 작업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지만 대학생들은 새벽과 야밤에도 현장을 찾는다. 방대한 공사를 짧은 기간에 최상의 수준에서 해제껴야 할 돌격전은 손대성학생에게 있어서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는 구호의 생활력을 실감하는 나날》이라고 한다.
반일애국투사의 후손인 그는 민족간부의 후비양성기지인 만경대혁명학원을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였다. 학원에서 아무런 근심도 없이 배우고 성장한 20대 청년은 《조선로동당은 어머니품》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책상물림》이라고 야유되기도 하는 대학생들에게 있어서 낮과 밤이 따로 없는 건설장에서의 육체로동은 여간 힘들지 않았다. 그러나 손대성학생의 동창생들속에 락오자는 한사람도 없었다.
《완공의 그날, 이곳 만수대에 김정일장군님을 모실 일념으로 청춘의 땀을 바쳐왔다.》
2011년 12월, 대국상을 당한 건설장의 대학생들은 가슴을 치며 통곡하였다. 그들에게 새로운 힘을 안겨준것은 령도의 계승자의 뜨거운 호소다.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에서 올린 편지에 김정은최고사령관께서 새기신 친필은 청년들의 발걸음에 의해 강성할 래일이 앞당겨질것이라는 확신을 표명하면서 청년들이 나아가야 할 진로를 제시하고있었다.
《언제나 곧바로, 당을 따라 앞으로!》
《백두산강군》의 전통
조선은 적대국들과의 대결속에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하여왔다. 뜻깊은 2012년에도 최고사령관의 전선시찰은 이어지고있다. 3월 2일에는 최전연초소인 판문점을 찾으시였다.
그날은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표부 군관인 표성길중좌(41살)에 있어서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날로 되였다. 그는 유치원시절부터 《꼬마땅크 나간다》의 노래를 부르며 인민군입대를 희망했었다. 《조국통일에 이바지하는 용사가 되고싶었다.》고 한다.
나라의 갑문인 최전방초소를 지키면서도 그는 북과 남이 민족의 화해와 통일에 대한 합의를 내놓을 때면 환호를 올렸다. 그런데 최근년간은 서울의 대결정권이 부리는 망동으로 인하여 조선반도에 일촉즉발의 전쟁위기가 조성되였다. 재작년 11월에는 정전후 처음으로 포탄이 서해상을 오고가는 군사충돌이 있었다.
《서해포격전은 더이상 확전되지 않았다. 연평도포격사건을 일으킨 적들은 자기들의 도발에 단호한 대응타격으로 대답한 우리의 담력에 겁을 먹었던것이다.》
표성길중좌는 《당과 국가에 앞서 군대를 창건하신 주석님의 업적》을 변함없이 빛내여나갈 사명을 모든 장병들이 지니고있다고 말한다. 조선인민군은 항일의 전설적영웅이 창건하신 반일인민유격대의 후신이며 인민군은 지금도 《백두산혁명강군》의 호칭으로 불리우고있다.
《무력장비가 우수하다고 하여 강군이 되는것이 아니다. 조선의 군대가 강한것은 장병들이 지닌 <수령결사옹위정신>에 결정적요인이 있다. 단결은 주석님께서 항일의 나날에 마련하신 전통이다.》
내 나라 푸른 하늘
주석님께서 서거하신 후, 장군님께서는 《전통》을 계승하시였다. 군사선행, 군대중시의 선군정치를 전면적으로 펼치시여 사회주의조국을 수호하시였다. 적대국들과의 치렬한 대결전에서 련승을 이룩하시여 나라와 민족의 안전을 담보하는 자위적핵억제력도 마련하시였다.
력사의 풍파속에서 더욱 굳세여진 강철의 대오가 있었기때문에 조선은 큰 나라가 무슨 말을 하든 스스로가 선택한 길로 꿋꿋이 나아갈수 있었다. 주석님께서 창건하신 주체의 나라가 국제정치의 중심을 차지하고 정세발전의 주도권을 틀어쥐게 되였다.
장군님께서 서거하신 후, 선군로선의 계승을 선포하신 김정은최고사령관께서 판문점을 찾으신 것은 미국과 남조선당국이 강행한 합동군사연습으로 조선반도에 긴박한 정세가 조성되였을 때였다. 흐르는 공기도 팽팽하였다. 눈앞에서 적들이 욱실거리는 판문점의 한복판에서는 그날 인민군장병들이 최고사령관의 두리에 어깨겯고 팔을 끼고 천겹만겹의 성벽을 이루는 광경이 펼쳐졌다.
그에 대하여 《로동신문》은 《우리 군대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숭엄한 화폭》이라고 전하였다. 손대성학생은 평양의 건설장에서 휴식시간에 그 신문을 감명깊게 보았다.
《래일 당장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오늘 밤 12시까지는 건설을 하여야 한다는것이 우리 인민의 신조였는데, 제2차 조선전쟁은 결국 터지지 않았다.》
노래의 제목에도 있듯이 《내 나라 푸른 하늘》은 지켜져왔다. 평화에 대한 확신에 기초하여 나라는 대규모건설사업을 추진하고있다.
《수령,당, 군대와 인민의 일심단결을 깨뜨릴수 있는 힘은 이 세상에 없을것이다.》
2012년, 대학생건설자가 작업을 맡은 만수대의 언덕에 주석님과 장군님의 동상이 정중히 모셔진다. 조선의 영원한 단결의 중심이 풍치수려한 수도의 한복판에 서게 된다.
(김지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