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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력사를 잊지 말자

2012년 02월 22일 15:42 메아리

일제가 조선왕조정부를 군사적으로 협박하여 《을사조약》(한일보호조약)을 강요한 후 통감부를 두고 이또 히로부미가 초대통감으로서 서울에 도사리게 된것은 1906년 2월 1일이다.메아리

◆이날은 우리 민족이 일제식민지로 전락된 잊을수 없는 굴욕의 날이다. 이또는 문관이면서 군대통수권을 갖고있었다. 당시 일본헌법에는 군사통수권은 군인만이 행사할수 있게 규정되여있었다. 이또가 문관인데도 불구하고 이 권한을 갖고있었다는것은 조선인민을 군사적억압으로 다스리겠다는 일제의 의도를 그대로 드러내놓은것이다.

◆이또가 맨먼저 손댄것은 우리 나라의 외교권을 박탈하는것이였다. 외교권이 없는 나라와 국가관계를 맺으려는 나라는 없으니 외교권을 박탈당한 조선왕조정부는 사실상 국제적으로는 국가로서 말살된것이다. 우리 민족이 망국의 비운을 안고 수난의 길을 걷게 되는것은 이때로부터다.

◆일제의 외교권략탈책동을 리면에서 적극 도와준것은 미국이 일본에 외무성고문으로 파견한 스티븐스였다. 이자가 얼마나 악랄했고 우리 민족의 증오의 대상으로 되였는가는 미국에 돌아간 후 재미교포에 의하여 처단된 사실에서도 알수 있다.

◆대동강에 침습한 《셔만호》사건으로부터 시작된 조미관계의 력사에서 미제가 직접 침략하거나 일제의 침략을 도와준 일은 있으나 우리의 민족해방운동을 지원하거나 동정을 표시한바는 한번도 없다.

◆오늘 우리 민족의 력사적원쑤인 미제, 일제와 동맹을 강화하고 동족인 북을 적으로 삼고 치려는 민족반역행위를 거듭하고있는 리명박패당은 필시 력사의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것이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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