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하는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붉은 기》

2026년 07월 05일 08:33 공화국

은정대흥목재가공공장 한성민지배인의 가보

은정대흥목재가공공장(평안남도 평성시)은 국내의 목재가공분야에서 손꼽히는 단위들중의 하나이다. 공장은 최근년간 삼지연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의 호텔들과 화성지구의 여러 봉사망들의 내부장식과 목재가공을 맡아 진행하면서 자기의 얼굴을 더욱 뚜렷이 하였다.

한성민지배인

이러한 성과의 바탕에는 목재가공분야에 한생을 바쳐가고있는 한성민지배인의 노력이 깃들어있다.

1986년에 어느한 목재가공종합공장 기술공정원으로 일하던 그는 평성에 가구분공장을 내올데 대한 과업이 제기되자 그것을 스스로 맡아나섰다.

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조건에서 그것도 적은 로력으로 시작을 떼야 하는 일은 그에게 아름찬 과제가 아닐수 없었다. 그렇다고 조건이 좋아질 때까지 앉아 기다릴수도 없었다.

한성민지배인은 그때를 회상하며 《어려운 일에 괜히 나선다고 일부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 때 나에게 정신적힘이 되여준것이 바로 아버지가 넘겨준 한폭의 붉은기였다.》라고 말한다.

일본에서 태여난 그는 어릴적부터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자랐다.

그의 아버지 한학수씨는 조국의 품에 안기기 전까지 일본 오사까에서 교육일군으로 일하였다.

그가 아버지에 대하여 회고할 때면 어머니가 들려준 하나의 이야기를 늘 첫머리에 떠올리군 한다.

1952년 당시 오사까 나까니시소학교의 교장이였던 아버지는 미제가 조선전쟁을 일으키였던 6월 25일에 학교개교식을 진행하기로 결심하였다. 아버지는 교사정면에 김일성주석님의 초상화를 정중히 모시고 청사지붕에는 공화국기발을 높이 게양하게 하였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로 개교식을 시작하도록 하였다. 당시 조선학교들에 대한 일본당국의 탄압이 심화되던 때에 진행된 류다른 개교식은 오사까의 116개의 조선학교들에서 다시 학교의 문을 열기 위한 투쟁의 봉화로 되였다.

주석님에 대한 열렬한 흠모심과 애국으로 일관된 아버지의 교육활동은 그의 성장에 커다란 자양분이 되였다.

자녀교양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있던 아버지는 1964년 10월에 12살 난 그를 조국으로 떠나보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