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로부터 45년/일본군성노예제피해자 배봉기할머니


1977년 4월 23일 《조선신보》에 한 기사가 실렸다. 일본군《위안부》로 오끼나와에 끌려간 배봉기할머니의 증언이다.

1944년, 30살에 일본으로 끌려온 후 조국이 해방될 때까지 오끼나와의 《위안소》에서 일본군의 성노예로서 존엄을 짓밟힌 배봉기할머니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처음으로 자기 의사로 토로한것이 《조선신보》지면이였다.

생전의 배봉기할머니(김현옥씨 제공)

당시 그를 취재한 본지 기자에 의하면 70년대 이후 일본사회에서는 식민지과거청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고조되였으며 조선인강제련행과 징용, 《위안소》의 실태가 당사자들의 조사에 의해 조금씩 밝혀져있었다.

그런 가운데 오끼나와에 성노예제피해자가 존재한다는 총련 오끼나와현본부(당시)의 통보를 받고 기자는 즉시 오끼나와를 향했다.

처음 기자를 본 할머니는 《무척 당황하고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바라보았고 질문에도 《머리를 저을뿐 목소리를 내질 않았다.》고 한다. 몇번이고 집을 찾아가서야 겨우 입을 연 그는 원한에 사무친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았다. 《편안한 날은 없었다.》《모든게 다 고생이였다.》―.

가혹한 중로동과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조선인로동자들의 모습, 미군의 폭격으로 희생된 성노예제피해자들, 날마다 수십명에 달하는 군인들을 상대해야만 했던 자신의 쓰라린 경험 등 눈물을 흘리며 한마디 두마디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은 기자의 기억속에 력력히 각인되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45년이 흐른 지금도 국가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력사를 외곡하는 일본정부의 책동으로 인해 일본군성노예제문제를 비롯한 식민지과거청산은 해결을 보지 못하고있다.

(조선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