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도 늦은 어느날 대왕포언덕에서는 봄맞이놀이가 한창이였다. 큰 차일을 펴고 궁녀들이 모여들었으며 이름모를 가지각색 음식에 향기로운 술이 동이마다 철철 넘쳐났다. 수백의 종들이 엉 [...]…
백제에서는 건축과 의학기술도 발전하였다. 특히 주목되는것은 천문학과 기상학이 발전하였다. 백제의 천문학자들은 살별(혜성), 별찌(류성), 행성들에 대하여 나타났던 날자와 시간, 위 [...]…
온조는 형을 기꺼이 맞아 궁전에서 함께 살도록 하였다. 그러나 비류는 동생을 마주볼 면목이 없었다. 바다에 호기심을 가지고 미추홀에 도읍을 정하였지만 바람이 세고 풍랑이 심하였으며 [...]…
형을 바래운 온조는 신하들과 함께 마한의 하남 위례성(경기도 광주지방)에 도읍을 정하고 자그마한 나라를 세웠다. 온조는 처음 나라이름을 《십제》라고 정했다. 그것은 자기를 받들어온 [...]…
고구려의 동명왕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다. 맏이 유류는 고주몽이 동부여에 있을 때 본부인인 례씨에게서 태여난 아들이고 둘째, 셋째인 비류와 온조는 졸본부여(구려)에서 낳은 아들들이다 [...]…
《이제는 이겼구나. 원쑤를 마지막까지 부시자!》 《한놈도 살려보낼수 없다!》 양만춘의 명령에 따라 그들은 총공격으로 넘어갔다. 군사들은 성문을 열어젖히고 성난 사자마냥 적군을 향해 [...]…
성벽에 높이 가설한 목책에 올라 큰 싸움을 여유있게 지휘하던 양만춘의 눈앞에 당태종의 모습이 나타났다. 《네놈이?! 내 좀 버릇을 고쳐주어야지.》 양만춘은 지체없이 대궁을 들어 지 [...]…
고구려군 장수인 고정의는 자기 의견을 이렇게 내놓았다. 《너무 급하게 공격하지 말고 군사를 정돈해가면서 여러날을 두고 기습병들을 파견해 그들의 수송로를 끊어버리면 적들은 량식이 떨 [...]…
양만춘은 당나라의 움직임에 대해 손금보듯 알고있기에 성을 더욱 튼튼히 꾸렸다. 그는 앞날을 예견하여 성벽을 수리하고 다졌으며 식량도 넉넉히 마련했다. 더우기는 군사들의 무술훈련에 [...]…
양만춘은 먼길을 달려 성안에 이르렀다. 새 임금을 맞은 후로 평양성안은 흥성거리고있었다. 영류왕이 페위하고 보장왕이 새로 즉위하자 양만춘은 막리지로 모든 실권을 틀어쥔 연개소문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