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ホーム » Archives by category » 문화 » 력사 (Page 18)

〈조선력사인물〉려옥과 《공후인》(1)

우리 인민은 예로부터 자기의 고유한 음악과 예술을 창조하여오면서 훌륭한 전통을 이룩하였다. 비록 살림은 가난하였으나 그속에서도 서로 돕고 정을 나누면서 자기들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

〈조선력사인물〉민족사의 첫 건국시조 단군(5)

이것은 당시로 볼 때 매우 발전된 법이라고 말할수 있다. 그 시기 법들은 대체로 눈에 손상을 주었을 때는 눈으로, 이발을 다쳐놓았을 때는 이발로, 물건인 경우 같은 물건으로 해를 [...]…

〈조선력사인물〉민족사의 첫 건국시조 단군(4)

이 모든 력사적사실들은 단군이 실재한 인물임을 기정사실로 인정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때문에 단군숭배사상은 력사를 거쳐 내려오면서 공고한것으로 되였으며 많은 사가들과 인민들이 단군시 [...]…

〈조선력사인물〉민족사의 첫 건국시조 단군(3)

〈조선력사인물〉민족사의 첫 건국시조 단군(3)

서쪽으로는 단군호라는 호수가 있다. 이곳의 마을이름을 단군동이라 하였고 동쪽마을은 아달동이라 불렀다. 발굴당시 단군릉에서는 두 사람의 뼈가 나왔다. 무덤에는 86개의 크고작은 뼈들 [...]…

〈조선력사인물〉민족사의 첫 건국시조 단군(2)

〈조선력사인물〉민족사의 첫 건국시조 단군(2)

단군신화는 《삼국유사》뿐아니라 1287년 고려의 리승휴가 쓴 《제왕운기》에도 밝혀져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조상에 대한 존경심이 각별하고 시조인 단군에 대한 숭배심이 깊었던것으로 [...]…

〈조선력사인물〉민족사의 첫 건국시조 단군(1)

〈조선력사인물〉민족사의 첫 건국시조 단군(1)

단군은 고조선을 세운 건국시조이다. 지금으로부터 5000여년전에 단군이 평양에 도읍을 정하고 동방에서 처음으로 《조선》(고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당시 평양을 《부루나》라고 불 [...]…

都教委 고교부독본에서 력사의 사실개찬

간또대진재조선인《학살》을 《생명이 빼앗겼다》로 도꾜도교육위원회가 독자적으로 발행하는 일본 고등학교 일본력사의 부독본(副読本) 《에도에서 도꾜로》에 있는 1923년 9월 1일에 들이 [...]…

고구려시기의 서산성 발굴고증/축성기술과 당대 력사연구에 큰 의의

고구려시기의 서산성 발굴고증/축성기술과 당대 력사연구에 큰 의의

23일발 조선중앙통신은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의 교원, 연구사들이 고구려시기의 력사유적인 서산성(적두산성)을 발굴하고 그에 대한 과학적인 고증을 하였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보도하 [...]…

표대유족에서 돌숟가락을 발굴/고조선전기에 해당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연구집단이 표대유적 고대집자리에서 돌숟가락을 새로 발굴하였다. 표대유적은 1994년 평양시 삼석구역 호남리의 표대마을 앞벌에서 발견된 대규모의 부락터유적을 [...]…

기록영화 《누치가후우(命果報) – 玉砕場에서의 証言》 박수남감독에게 듣다

기록영화 《누치가후우(命果報) – 玉砕場에서의 証言》 박수남감독에게 듣다

《玉砕》의 미명아래 벌어진 학살/조선인군속, 《위안부》도 희생 《누치가후우(命果報)》는 오끼나와의 말로 《목숨이 있어야》라는 뜻을 가지고있다. 태평양전쟁 말기, 본도결전의 버림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