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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반도위기의 연원-친일/항일을 둘러싼 균렬에서 정전체제의 성립에로(요지)/리병휘

중국대북(대만) 대동현에서 13일부터 16일에 걸쳐 진행된 《조선의 핵무장의 연원을 생각하는 전쟁과 평화 및 동아시아의 력사와 문화에 대한 국제학술토론회》에서 보고된 조선대학교・리병휘준교수의 론문 《조선반도위기의 연원-친일/항일을 둘러싼 균렬에서 정전체제의 성립에로》의 일부를 소개한다.

조선의 탈식민지화와 항일/친일의 기억

아시아태평양전쟁(동아전쟁)의 종결에 의하여 제국일본이 붕괴되면서 동아시아에 출현한 새로운 정치공간속에서는 탈식민지화의 움직임이 일제히 시작되였다. 탈식민지화의 중심과제는 정치적주권의 확립이며 그를 짊어질 주체의 형성 즉 《국민》의 창조이다. 하지만 그 공정은 식민지의 《탈환》을 노린 유럽렬강들이나 태동기의 쏘미랭전 등 외부요인에 의하여 사이공함락(1975년)까지 계속되는 《아시아30년전쟁》을 동반하게 되였다. 그러면서 동아시아에서의 《전후의 전쟁》속에서 조선전쟁만이 평화의 회복을 이루지 못하고 분단된 조선반도에는 오늘도 위기적상황이 계속되고있다.

8.15해방후 조선전쟁에 이르는 5년사에서 현재화되고, 분단에로 귀결되여가는 조선사회의 균렬이란 친일파처벌과 토지개혁을 비롯한 식민지시대의 유제, 후진성의 극복을 위한 혁명과 반혁명간의 대립이였다.

해방후 조선에서의 탈식민지화의 과정에서 당시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소작농민층의 지지를 획득하고 그 조직화에 성공한것은 좌익지도자들이였다. 그것은 민중속에 맑스-레닌주의가 침투되여있었기때문이 아니라 좌익이 일본제국주의에 대하여 변절함이 없이 끝까지 저항하고있었기때문이다. 민중들의 기준은 《항일》과 《친일》에 관한 기억이였으며 해방후 조선반도 전역에 나타난 좌익주도의 혁명적상황은 이러한 기억들의 발현이였다.

한편 일본이라는 뒤받침을 잃은 지주층, 혹은 식민지《근대화》의 산아들인 부르죠아계급은 새로운 외래권력인 미군정의 협력자가 되여 서울을 거점으로 반혁명의 진지를 구축하였다. 해방후 조선에는 지주와 농민간의 대립을 위주로 한 계급관계의 상부구조에 《항일》과 《친일》간의 대립이 여전히 존재하였다.

이와 같은 긴장관계가 쏘미량군에 의한 분할점령하에서 쏘미랭전의 진전과 불가분으로 결부되여가는 속에서 해방후 조선현대사는 분단정부의 출현, 조선전쟁의 발발, 정전체제의 성립이라는 길을 걷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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