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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정, 혈연의 력사는 영원합니다/김일성대원수님 탄생 105돐에 즈음하여 《로동신문》에 게재된 오형진상임고문의 글

4월 18일부 《로동신문》은 재일조선인력사연구소 오형진상임고문의 글 《뜨거운 정, 혈연의 력사는 영원합니다-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의 탄생 105돐에 즈음하여-》를 게재하였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인류의 대성인, 민족의 태양이 찬란히 솟아오른 백다섯돐이 되였습니다.

조용히 눈길을 들어 오늘도 태양의 모습으로 영생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의 환하신 영상을 우러르니 수령님의 그 다정하고 친근하신 음성이 귀전에 들려오고 금시라도 우리들을 따뜻이 품에 안아주실것만 같아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금할수 없습니다.

저의 가정은 3대가 어버이수령님의 접견을 받은 최상의 영광을 지닌 복많은 가정입니다.

어버이수령님을 생각할 때마다 저도 우리 동포들도 모두가 눈굽을 뜨겁게 적시는것은 무엇때문이겠습니까.

그것은 숭고한 민족애, 동포애로 일관된 고결한 뜻과 열화같은 정으로 우리 동포들에게 가장 존엄높은 삶을 주시고 애족애국의 참된 길로 이끌어주신 어버이수령님의 그 하늘같은 은덕이 너무도 고맙기때문입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우리 재일동포들과 맺으신 뜨거운 정과 혈연의 력사.

세계해외교포사의 그 어느 갈피에도 있어본적 없는 령도자와 해외교포들과의 혼연일체를 이룩하시고 우리 재일동포들의 삶을 빛내여주신 어버이수령님은 진정 천년세월이 흐른다 해도 잊을수 없는 영원한 은인이심을 심장으로 절감하였기에 그 력사의 자욱자욱을 다시금 더듬어보고저 합니다.

숭고한 민족애, 동포애로 빛나는 승리의 력사

저는 위대한 수령님을 여러번 만나뵙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아안는 영광을 지니였습니다.

지금도 저는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일을 맞으며 재일본조선인축하단 단장으로 조국을 방문하였던 1990년 4월을 잊을수 없습니다.

아마도 제가 총련중앙 부의장의 중책을 지닌 후 처음으로 되는 조국방문이였다고 생각됩니다.그날 제가 우리 재일동포들의 축원의 마음을 담은 인사를 미처 다 올리기도 전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부의장동무로구만, 고맙소라고 하시며 저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였습니다.

우리들을 반갑게 맞아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해외에서 살고있는 동포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귀중한것은 조국이라고, 동무들은 지난날 조국이 없었던탓으로 일본땅에서 갖은 민족적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살아왔다고 하시며 이렇게 교시하시였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동무들이 자기의 진정한 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있기때문에 비록 해외에서 살고있지만 공화국의 해외공민으로서의 크나큰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간직하고 떳떳하게 살고있으며 참된 삶의 보람을 누리고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은 저의 가슴을 세차게 울렸습니다.

과거 일제의 징병과 징용으로 끌려오고 살길을 찾아 현해탄을 넘어와 인간이하의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노예의 운명을 강요당하였고 억울하게 죽어가도 하소연할 곳조차 없었던 재일동포들에게 있어서 인간의 존엄이란 생각조차 할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처럼 비참했던 수난자의 운명이 가장 존엄있고 긍지높은 삶에로 도약한 이 극적인 전환은 어떻게 이루어진것이겠습니까.

위대한 수령님께서 1948년 12월 공화국창건 재일조선인경축단 성원들에게 하신 교시가 지금도 저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있습니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경축단 성원들에게 남의 나라에서 당하는 망국노의 설음이 얼마나 가슴에 사무치는가 하는것을 자신께서도 직접 체험해보아서 잘 알고있다고, 자신께서 어린시절부터 나라찾는 길에 나서게 된데는 아마도 이런 생활체험이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고 하시였습니다.

일찌기 우리 민족이 당하는 망국의 고통과 이역살이의 설음을 뼈아프게 체험하신 위대한 수령님이시였기에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구원하시려고 백두광야에서 풍찬로숙하시던 항일전의 나날에도 일본땅에서 불행과 고통을 당하는 재일동포들의 운명을 두고 깊이 마음쓰시였습니다.

하기에 조국해방으로 재일동포들에게 잃었던 민족의 존엄을 되찾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이듬해 우리 동포들이 나아갈 길을 밝혀주는 력사적인 첫 서한 《재일 100만 동포들에게》를 보내주시였습니다.

되새겨보면 우리 조국은 강대한 위력으로써 동포들에게 힘을 주고 동포들을 돌보아줄것이며 모든 준비가 갖추어져 동포들을 따뜻이 맞아들일수 있게 될것이라고 하신 서한의 구절구절은 새 생활창조의 길에 들어선 우리 동포들에게 커다란 신심과 용기를 북돋아주었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조국을 방문한 우리 총련일군들을 만나주시는 여러 기회에 조국해방전쟁시기를 자주 회고하시였습니다.

1952년 12월 재일조선인련락원을 만나신 자리에서 재일동포들이 무모한 희생을 당하고있는 엄중한 실태를 료해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재일조선인운동은 남의 나라 혁명에 복무할것이 아니라 자기 조국과 민족을 위해 복무하는 민족적애국운동으로 되여야 한다는 주체적인 로선전환방침을 제시하시고 그 실현을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주시였습니다.

그리하여 주체형의 해외교포조직인 총련이 결성되게 되였으며 우리 동포들은 자기 조국, 자기 민족을 위한 민족적애국운동의 길에 들어서게 되였습니다.

력사상 처음으로 해외교포운동의 본질과 성격이 새롭게 해명되고 주체의 기치를 들고나아가는 새형의 해외교포조직이 지구상에 출현한것은 해외교포운동사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은 사변이 아닐수 없습니다.

해외동포들의 민족적존엄을 지켜주고 참된 삶의 길로 이끌어주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뜻에 떠받들려 우리 동포들의 긍지높은 삶의 력사가 줄기차게 이어지게 되였습니다.이역땅에서도 그토록 긍지높은 우리 동포들의 존엄에 대하여 생각할 때마다 저는 1967년을 잊을수 없습니다.

그해 11월 30일 도꾜의 다이또체육관에서는 1만 2,000여명의 우리 동포들이 참가한 가운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축하하는 재일본조선인중앙대회가 성대히 진행되였습니다.

이날 한덕수 총련중앙 의장동지가 11월 25일에 조국에서 진행된 대의원선거에서 처음으로 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거된 7명의 재일동포대표들을 한사람씩 소개할 때 대표들만이 아닌 참가자들모두의 얼굴마다에는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감사의 정이 뜨겁게 굽이쳤고 격정의 파도로 온 대회장이 움씰거렸습니다.저는 동포사회의 이 경이적인 현실을 체험한 동시대인으로서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가슴벅차게 느꼈습니다.

국제무대에 당당히 진출하여 활동하는 우리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모습은 또 얼마나 자랑스러운것입니까.

총련과 산하단체들은 세계평화리사회, 세계민주청년련맹, 국제상업일군직업련맹 등 수많은 국제기구들에 가입하여 활동하고있으며 세계청년학생축전과 세계교직원조합련맹대회를 비롯한 각종 국제행사들에 우리 동포들이 참가하여 위대한 수령을 높이 모신 주체조선의 해외공민으로서의 존엄과 영예를 높이 떨치였습니다.

날이 갈수록 총련과 우리 재일동포들의 자랑스러운 면모가 세계에 널리 알려지는 속에 1986년 5월 중순부터 6월초까지 한덕수의장동지일행이 총련결성이후 처음으로 쏘련(당시)을 친선방문하였습니다.

일행은 우즈베끼스딴가맹공화국의 최고쏘베트를 의례방문한데 이어 총련결성일인 5월 25일 따슈껜뜨TV방송국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날로 그 위력을 힘있게 과시하는 총련의 모습을 세계에 널리 전하였습니다.

참으로 숭고한 민족애, 동포애를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을 높이 모시였기에 주체형의 해외교포조직인 총련이 결성되고 재일조선인운동의 전성기가 펼쳐질수 있게 되였으며 세계해외교포운동의 본보기로서의 우리 총련의 위용이 만방에 과시되고 재일동포들은 크나큰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에 넘쳐 존엄있고 당당하게 살아올수 있었습니다.

하기에 저는 총련과 재일조선인운동력사는 한없이 숭고한 민족애, 동포애를 지니신 어버이수령님에 의하여 마련된 승리의 력사이며 우리 동포들이 지닌 최상의 존엄은 그 위대한 력사의 고귀한 결실이라고 긍지높이 말하게 됩니다.

한없이 뜨거운 사랑의 력사

올해의 4월은 우리 총련일군들과 동포들의 마음을 더욱더 뜨겁게 울려줍니다.한것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우리들에게 첫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신 때로부터 60돐이 되는 해의 4월이기때문입니다.

우리 수령님은 하늘이 낸 성인이시여서 시간의 흐름마저도 그 고마움과 위대함을 더해주는가 봅니다.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에 대해 말할 때 먼저 하고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첫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신것은 60년전이지만 수령님의 마음속에서는 그 이전부터 뜨거운 사랑의 력사가 시작되였습니다.

자식들을 마음껏 공부시키고싶어하는 1세동포들의 심정과 재일조선인운동에서 민족교육사업이 가지는 중요성을 깊이 헤아려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48년 12월 공화국창건 재일조선인경축단 성원들을 만나주신 자리에서 재일동포들이 해방직후 일본 도처에 국어강습소, 청년학원과 같은것을 내오고 자녀교육사업을 시작한데 대하여 아주 잘한 일이라고 치하해주시였습니다.

그러시면서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재일조선아동들을 우리 말과 글로 교육하며 조선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자주독립국가의 장래를 걸머지고 나갈수 있도록 키워야 한다고 간곡히 가르치시였습니다.

총련이 결성된 뜻깊은 해에 조국해방 10돐경축 재일조선인축하단 성원들을 만나주시였을 때에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공화국정부는 재일동포들의 민주주의적민족교육사업을 적극 도와줄것이라고 하시면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려고 한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습니다.

어버이수령님의 그 사랑의 마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더 뜨거워만졌습니다.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1957년에 조국에서 제1차 5개년계획수행의 첫해과제를 수행하자면 많은 자금이 요구되였으나 전쟁의 후과를 다 가시지 못한 나라의 경제형편은 어려웠고 계획과제에 비해볼 때 백수십억원의 자금이 모자랐다고 합니다.

그러한 때인 1957년 1월 국가예산초안을 토의하는 내각전원회의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가예산의 세부항목을 하나하나 따져가시며 마지막조항까지 다 검토하시고나서 보고를 제기한 일군에게 재일동포자녀들에 대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항목은 왜 없는가고 물으시였습니다.

재일동포자녀교육비를 예견하였으나 워낙 재정형편이 어려워 국가예산에는 반영하지 않고 별도로 림시외화계획에 반영하여 집행하려 한다는 일군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역땅의 우리 동포들을 생각하시는듯 한동안 아무 말씀이 없으시였습니다.

사실 그때 당시 우리 민족교육사업에서 제일 큰 애로는 재정난이였습니다.원래 교육사업자체가 많은 자금이 드는 사업인데다가 일본반동들의 극심한 민족차별정책으로 하여 끼니도 에우기 어려운 동포들이 많았고 그런 속에서도 푼전과 가산을 털고 례장감까지 내여 돈을 마련하느라고 했지만 재일조선학령아동들을 다 공부시킬 자금을 해결한다는것은 여간만 어려운 일이 아니였습니다.

이러한 동포들의 고충을 마음속에 안고계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윽고 회의참가자들에게 우리가 공장을 한두개 못 짓는 한이 있더라도 이국땅에서 고생하는 동포들에게 아이들을 공부시킬 돈을 보내주어야 한다고 하시며 이것은 우리의 민족적의무이라고 절절하게 교시하시였습니다.

그러시면서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것은 한두번 보내주고 그만둘 일이 아니라고, 일본에 우리 동포가 있고 배워야 할 어린이가 있는 이상 계속 보내주어야 한다고 하시며 국가예산에 새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이라는 항목을 내오고 항구적인 사업으로 틀어쥐고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시였습니다.

이렇게 되여 그해 4월에 어버이수령님께서 보내주신 1억 2,109만 9,086¥의 첫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이 우리 총련과 재일동포들에게 와닿았을 때 온 동포사회는 감격과 눈물의 바다로 되였으며 량심적인 일본인사들도 감탄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저 역시 민족교육을 받아온 세대로서 《김일성원수님 만세!》, 《조국 만세!》를 부르며 교직원들과 동포들모두가 환희에 넘쳤던 광경이 지금도 생생히 떠오릅니다.

당시 《조선민보》는 우리 동포들의 모습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지금 일본 방방곡곡 동포가 사는 곳이라면 그 어느 곳, 어느 마당에로 가나 조국에서 보내준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에 대한 화제로 광활한 희망과 기쁨에 들끓는 장면에 부딪친다. 둘이 만나나 셋이 앉으나 동포가 모인 장소라면 이 화제로 꽃이 핀다. 시간이 가는줄 모르고 감격의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저도모르게 모두들은 내가 조선공민으로서 무슨 일을 얼마나 했는가에 대한 자기반성과 앞으로는 가만히 앉아있을수 없다는 말들을 터친다.》

세계해외교포사의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의 력사를 펼쳐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민족교육사업에서 지침으로 되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고 총련의 우리 학교들에 민족악기와 동식물표본을 비롯한 수많은 사랑의 선물들도 보내주시며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습니다.

바로 이 사랑속에서 유치반으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정연한 교육체계를 갖춘 민족교육의 대화원이 펼쳐지게 되였으며 지금까지 11만여명의 동포자녀들이 우리 민족교육을 받았고 그중 1만 7000여명이 조선대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1981년 6월 6일과 7일 조선대학교창립 25돐을 맞으며 기념행사들이 조선대학교에서 진행되였는데 여기에는 일본 각계 인사들과 34개국 주일 외국대사관원들을 포함하여 외국인들이 1,000여명이나 참가하였습니다.

조선대학교 명예학장인 한덕수의장동지가 연설한 후 세계 여러 나라 단체, 대학, 연구기관들과 일본의 국회의원, 학자, 문화인들이 보내온 수많은 축하전문이 소개되였으며 학생들의 예술공연 《아, 25돐, 영광의 로정이여!》가 상연되였는데 관람자들모두가 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세상사람들이 이렇듯 아낌없는 찬사를 보낼 때마다 우리 동포들은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이라는 사랑의 생명수를 주시고 총련의 민족교육을 세계해외교포교육의 본보기로 내세워주신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고마움에 북받치는 격정을 억제하지 못하군 합니다.

하기에 저는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은 어버이수령님과 우리 재일동포들을 뗄래야 뗄수 없는 친혈육, 한식솔로 굳게 맺어준 피줄기라고 말합니다.

정으로 시작되고 그 힘으로 펼쳐진 위대한 력사의 나날들을 어찌 이 한편의 글에 다 담을수 있겠습니까.

비록 한그릇의 밥을 나누어먹는 한이 있더라도 이국땅에서 고생하는 동포들을 데려와야 한다고 하신 어버이수령님의 그 뜨거운 정속에서 마침내 세계가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민족의 대이동》이라고 격찬한 귀국의 배길이 열리였습니다.

대다수가 고향을 남쪽에 두고있는 우리 동포들이 어버이수령님의 뜨거운 정에 끌려 공화국에로 집단귀국한 이 력사적인 사변이야말로 위대한 김일성원수님의 품을 찾아간 민족의 대이동이라 하겠습니다.

언제나 친혈육의 따뜻한 정으로 극진히 위해주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속에서 재일동포들의 조국왕래도 실현되여 교육일군들과 청소년학생들, 상공인, 문예인, 체육인들을 비롯한 수많은 우리 동포들이 조국을 마음껏 오가게 되였으며 이역땅에서도 참된 애국의 넋을 지니고 총련과 동포사회발전, 나라의 통일과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한 길에서 참된 삶의 보람을 찾게 되였습니다.

참으로 어버이수령님은 한평생 우리 동포들을 자신의 살붙이처럼 여기시며 정을 다해 키워주시고 보살펴주신 뜨거운 정의 화신이시며 영원한 사랑의 태양이십니다.

일편단심으로 따른 충정의 력사

정은 넋이고 힘입니다.

어버이수령님과 우리 재일동포들사이에 맺어진 뜨거운 정, 바로 그속에 우리 동포들이 진정한 조국을 알게 하고 이역의 찬바람속에서도 애족애국의 참된 넋을 지니고 신념의 길을 걸어올수 있게 한 거대한 힘이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역살이, 망국살이의 피눈물나는 그 세월속에서도 백두산을 바라보며 살아온 재일동포들은 해방의 첫 기슭에서 받아안은 력사적인 서한에서 품어주고 위해주는 어버이수령님의 뜻과 정을 새기며 수령님을 따라나섰습니다.

우리 동포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끄시는 공화국을 유일한 조국으로 받들고 수령님의 가르치심따라 재일조선인운동을 벌리였습니다.

청소한 우리 조국앞에 전쟁의 엄혹한 시련이 닥쳐왔던 그때에도 동포들은 조국을 지키고저 있는 힘껏 싸웠습니다.

당시 저는 12살 소년이였지만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우리 동포들은 조국방위대 등 여러 조직들을 뭇고 남녀로소모두가 떨쳐나 미제의 살륙무기수송저지투쟁, 평화서명운동, 구국기금운동을 비롯한 조국수호투쟁을 힘있게 벌렸습니다.

어버이수령님의 높으신 뜻과 뜨거운 정은 동포들의 마음속에 애국충정의 일편단심을 키워주었습니다.

우리 동포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로작들을 밤을 새워가면서 자자구구 심장에 새겼고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100번읽기운동도 힘있게 벌렸으며 이 나날에 총련은 조직안에 주체의 사상체계, 령도체계를 튼튼히 세워나갔습니다.그리고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 전진하는 조국인민들의 투쟁에 발맞추어 재일조선인운동을 힘있게 전진시켜나갔습니다.

조국인민들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태워주신 천리마를 타고 비약할 때 《우리도 천리마를 탄 기세로 총련의 애국과업수행에 떨쳐나서자!》라고 결의다지며 모범분회창조운동을 힘있게 벌려 수많은 분회들을 모범분회로 만들었고 련이어 애국영예기쟁취운동으로 심화시켜 총련조직을 강위력한 애국대오로 꾸려나간 우리 동포들입니다.

조선대학교의 인가를 획득하고 민족교육의 말살을 노린 일본반동들의 《외국인학교법안》을 여러번이나 페안으로 만들었으며 기업권과 생활권 등 우리 동포들의 민주주의적민족권리를 쟁취하고 지켜냈습니다.

뿐만아니라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조국통일방침을 높이 받들고 미제와 박정희괴뢰도당의 핵전쟁도발반대, 남조선으로부터의 미군철거요구,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촉진 재일본조선인행진(1975년 7~8월), 전민족대단결실현, 조국통일을 위한 재일동포청년학생들의 대행진(1993년 8월)을 비롯하여 재일조선인운동의 매 년대마다 각계각층 동포들을 묶어세워 대중적인 통일애국투쟁을 힘있게 벌렸습니다.

이 나날에 우리 총련일군들과 동포들은 순결한 마음으로 충정의 자욱을 새겨왔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정담아 불러주신 애국자라는 부름이 너무도 고마와 동포교육자들은 한생을 묵묵히 교단에 바쳐 수많은 새 세대들을 억세게 키워냈고 진보적상공인, 애국적상공인이라는 고귀한 믿음을 억대의 재산보다 더 귀중히 여기며 상공인들을 비롯한 동포들은 조국에 일떠서는 공장과 거리, 병원 등 이르는 곳마다에 애국의 자욱을 새기였으며 노래를 부르고 과학을 연구해도 보답의 일념을 안고 수령님을 따른 우리 동포들입니다.

그럴수록 절세위인들의 사랑과 은정은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더욱더 뜨거워졌습니다.

일찍부터 어버이수령님께 충정다하는것을 총련의 기본사업방향으로 제시해주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매 시기, 매 단계마다 나아갈 길을 환히 밝혀주시고 우리 총련일군들과 동포들이 사업에서 성과를 거두었을 때에는 못내 기뻐하시며 수령님앞에 내세워주시였습니다.

총련에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는것은 재일동포자녀들에 대한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의 마음을 보내는것이라고 하시며 나라가 어려운 때에도 변함없이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시고 재일동포들이 불행을 당했을 때에는 누구보다 가슴아파하시며 사랑의 위문전문과 위문금을 보내주신분도 위대한 장군님이시였습니다.

뜨거운 동포애의 정과 믿음으로 손잡아 이끌어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가 있어 우리 총련은 애족애국의 선각자, 애국충정의 모범, 해외교포조직의 본보기로 자랑떨치게 되였으며 재일동포들은 이역의 사나운 돌풍속에서도 일편단심으로 보답과 충정의 력사를 변함없이 이어올수 있었습니다.

이 혈연의 력사속에서 자기 수령, 자기 령도자만을 굳게 믿고 따르는 애국충정의 본태가 마련되게 되였으며 바로 그속에 우리 총련의 힘이 있고 승리가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애국충정의 본태를 빛내여

오늘 우리 총련과 재일동포들은 그 어느때보다도 앙양된 기세로 모든 사업에서 새로운 전환의 돌파구를 열어나가기 위해 떨쳐나섰습니다.

그것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원수님께서 우리들이 나아갈 앞길을 환히 밝혀주시고 위대한 승리에로 힘있게 이끌어주시기때문입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올해 정초에 총련중앙상임위원회 의장동지에게 보내주신 축전에서 새해 2017년은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105돐과 위대한 장군님의 탄생 75돐이 되는 뜻깊은 해이며 주체혁명의 새시대의 요구에 맞게 재일 조선인운동을 보다 높은 단계에로 발전시켜나가야 할 전환의 해라고 가르쳐주시였습니다.

그러시면서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축전에서 《새해에 총련에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재일동포들과 맺으신 뜨거운 정과 혈연의 력사를 변함없이 이어나가며 애국충정의 본태를 계속 빛내여나가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깊은 뜻이 담겨진 구절구절에서 저는 다시금 경애하는 원수님의 따뜻한 정을 온넋으로 느끼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마음을 담아 새로운 주체100년대가 시작되는 첫해에 열린 총련지부일군대회에 력사적인 축전을 보내주시고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에 어린 사랑의 력사도 변함없이 이어주신분이 경애하는 원수님이시였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 총련일군들과 동포들을 조국에 불러주시고 따뜻이 품에 안아 영광의 기념사진도 찍어주실 때 경애하는 원수님의 그 자애로운 모습에서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뜨거운 정을 느낀 우리들입니다.

저는 지금도 공화국창건 65돐을 며칠 앞두었던 2013년 9월 7일을 잊을수 없습니다.

존엄높은 사회주의조국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너도나도 기쁨에 설레이던 그때 우리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공화국창건 65돐을 맞으며 보내주신 축하문을 받아안게 되였습니다.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였습니다.

글쎄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 이끌어주시고 경애하는 원수님 계시여 더욱 빛나는 우리 공화국의 창건을 경축하여 총련과 재일동포들이 축원의 인사를 먼저 올려야 마땅한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자신께서 먼저 우리들에게 축하문을 보내주시면서 주체의 조국은 우리 민족의 운명과 미래를 책임지고 보살펴주는 위대한 품이며 총련과 재일동포들은 우리의 귀중한 한식솔이라고 정을 담아 불러주시였습니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축하문을 전달받던 날 장내는 끓어오르는 감격과 격정의 파도로 세차게 설레였습니다.

뜨거운 믿음과 정이 넘쳐나는 그 말씀에서 우리들을 한전호속의 전우, 한식솔이라 불러주시던 위대한 장군님의 인자하신 영상이 어려와 모두가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하기에 우리 총련과 재일동포들은 그날 자애로운 친어버이사랑과 분에 넘치는 말씀으로 공화국의 65년력사에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애국충정의 력사도 깊이 아로새겨주시고 부강번영하는 조국과 더불어 저희들이 나아갈 앞길을 환히 밝혀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 열화같은 경모의 정을 담아 삼가 감사편지를 올리였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장군님의 유훈이며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강령적인 과업으로 밝혀주신 재일조선인운동의 새로운 전성기를 기어이 열고 세계해외교포운동의 본보기의 영예를 더욱 높이 떨쳐갈 불같은 결의를 편지에 담았습니다.

오늘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아보려는 일본반동들의 책동이 더욱더 우심해지고있지만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계시고 무진막강한 정치군사적위력을 과시하며 반미대결전과 사회주의강국건설의 최후승리를 향하여 힘차게 전진하는 사회주의조국이 있기에 우리의 배심은 든든합니다.

우리 총련과 재일동포들은 지난날에도 그러했던것처럼 앞으로도 일편단심 자기 수령, 자기 령도자만을 굳게 믿고 따르는 애국충정의 본태를 계속 빛내여 뜻깊은 올해를 위인칭송의 해로 장식하며 총련 제24차 전체대회를 지향하여 재일조선인운동의 새로운 전성기를 여는 비약의 토대를 구축하기 위한 사업에서 반드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킬것입니다.

경애하는 원수님 계시여 어버이수령님께서와 위대한 장군님께서 우리 재일동포들과 맺으신 뜨거운 정과 혈연의 력사는 영원할것입니다.

뜻깊은 태양절을 맞이하는 이 시각 저는 우리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한결같은 충정의 마음을 담아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 영생축원의 인사를 드리며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원수님께서 부디 건강하시기를 삼가 축원합니다.

일본 도꾜에서

재일조선인력사연구소 상임고문 오형진

주체106(2017)년 4월 13일

(조선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