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지않아 《세기의 대발견》이라고 떠들썩했던 나라현 아스까촌의 다까마쯔즈까고분이 발견된 때(1972년 3월)로부터 45년이 된다. 찬란한 채색벽화로 세상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킨 벽화고분은 누구의 고분인가 하는 문제와 함께 어느 나라의 영향을 받았는가 하는데 이목이 쏠리게 되여 말그대로 백가쟁명의 양상을 띠고 활발한 론쟁이 벌어졌었다.
뒤따라 다까마쯔즈까고분에 린접한 곳에서 기또라(キトラ)고분이 드러났다.
세월은 멀리 흘러 어느덧 반세기가 되여오는 오늘 당시 여기에 관여하였던 우리 나라와 일본의 학자들도 이제는 곁에 없다. 선배학자들을 이은 다음세대 학자로서 다까마쯔즈까고분발견으로부터 45년이 되는 오늘 다시한번 이 벽화무덤을 재조명하는것도 의의가 있다고 보면서 몇자 적기로 하였다.
다까마쯔즈까고분의 문제점을 몇가지로 묶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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