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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일본의 《독도령유권》주장의 부당성과 군국주의적령토팽창책동을 폭로단죄하는 사회과학부문토론회 진행

2015년 02월 19일 07:26 력사

조선중앙통신에 의하면 일본의 《독도령유권》주장의 부당성과 군국주의적령토팽창책동을 폭로단죄하는 사회과학부문토론회가 18일 사회과학원에서 진행되였다.

토론회에서는 독도가 예로부터 조선의 고유한 령토이라는데 대하여 이미 밝혀진 과학적이며 구체적인 사실자료들로 론증하고 력사적으로 감행되여온 일본의 령토강탈책동을 폭로단죄하는 론문들이 발표되였다.

사회과학원 소장 후보원사 교수 박사 조희승은 독도가 력사적으로 조선의 고유한 섬이라는데 대해 밝혔다.

울릉도가 고대시기(혹은 그 이전시기)에 발견개척되였다는 사실은 독도의 발견, 개척의 가능성을 시사해주고있다.

울릉도를 기본령역으로 하면서 독도까지 함께 지배한 우산국은 6세기 초엽 신라에 귀속되였으며 그후 조락하여 고려의 울진현에 편입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 들어와서도 울릉도, 독도는 의연히 강원도의 울진현에 소속된 조선의 불가분리의 령토였다.

봉건왕조는 당시의 근대 국제법의 요구에 맞게 독도의 령유권을 재확인하기 위하여 1900년 10월 25일 칙령 제41호를 공포하여 일제가 《시마네현고시》 제40호를 조작하기 5년전에 령토수속을 하고 내외에 명백히 선언하였다.

김일성종합대학 부학부장 박사 부교수 리광희는 일본의 울릉도, 독도강탈책동이 력사적으로 감행된데 대해 다음과 같이 까밝혔다.

일본의 독도침략책동은 14세기 후반기이후 왜구의 울릉도침입으로부터 시작하여 조선강점시기에 이르기까지 집요하게 계속되였다.

임진왜란때에도 울릉도에 침입하여 섬을 페허로 만들었으며 17세기에는 울릉도와 독도에 기여들어 수많은 산림과 수산자원을 략탈하였다.

일본은 조선봉건왕조의 울릉도, 독도령유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도 그 강탈을 위한 새로운 모략도 꾸미였다.

《명치유신》직후인 1869년 12월 외무성의 고위관리들을 조선에 보내여 울릉도, 독도가 조선에 속하게 된 경위를 알아내도록 하였으며 1882년 임오군인폭동후 하나부사를 전권대표로 파견하면서 조선봉건왕조로부터 울릉도를 양도받을데 대한 비밀지령을 주었다.

김철주사범대학 부학장 박사 부교수 한영찬은 일본의 《독도령유권》이란 《시마네현고시》로부터 출발하여 기만과 모략, 간교한 술책으로 일관된 파렴치한 력사외곡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시마네현고시》가 불법무효의 허위문서라는것은 전후 일본의 령토처리를 규정한 국제협약들에서 독도를 일본이 포기할 대상으로 규정하고 조선의 령토로 한데서도 잘 알수 있다.

까히라선언, 포츠담선언에서는 일본이 폭력과 탐욕으로 략취한 지역은 일본령토에서 제외된다는것과 일본의 령토를 4개의 기본섬과 앞으로 련합국에 의하여 결정되는 《여러 작은 섬들》로 명백히 규정하였다.

사회과학원 실장 박사 부교수 황명철은 일본의 《독도령유권》주장은 군국주의적령토팽창야망의 발현이라고 폭로하였다.

그는 일본이 《독도령유권》주장을 통하여 노리는 목적은 당면하게는 독도수역의 풍부한 자원을 장악하여 경제적리권을 독점하며 나아가서는 저들의 령토야망, 재침기도를 실현하기 위한 전초기지, 군사적교두보를 마련하려는데 있다고 까밝혔다.

일본반동들은 해외침략의 첫번째 대상으로 우리 나라를 꼽고있으며 조선을 발판으로 하여 대륙에로 진출하여 또다시 아시아를 제패하려고 꿈꾸고 있다고 그는 말하였다.

토론자들은 일본반동들이 파렴치한 《독도령유권》주장과 《다께시마(독도)의 날》을 당장 철회하며 시대착오적인 망상에 사로잡혀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할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조선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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