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book

이 사이트를 SNS로 공유하기

〈《조선신보》와 나〉인생의 원점이 된 신보배달/조광훈

창간 70돐에 즈음하여

1945년 10월 10일 《조선신보》의 전신인 《민중신문》이 창간되였으며 제호는 《우리 신문》을 거쳐 《해방신문》이 되였다. 미국은 일본당국을 부추겨 1950년 8월에 《해방신문》을 강제페간시켰으나 1952년 5월에 복간 1호를 낸 후 제호는 《조선민보》로, 1961년 1월에 《조선신보》로 되였다. 나는 이 글에서 《조선민보》, 《조선신보》와의 잊을수 없는 인연을 3가지 쓰려고 한다.

초급부 5학년때부터

총련결성 이듬해 우리 가족은 이바라기에서 오사까로 이사갔는데 아버지는 총련지부 부위원장을 하면서 분국장을 겸하였다. 내가 초급부 5학년이 된 해 아버지는 나를 불러 《조선민보》를 배달해보라고 하셨다. 아마도 사회경험을 시키려는 의도였을것이다.

어느날 새벽, 《조선신보》배달을 하는 필자(촬영-리동호기자)

어느날 새벽, 《조선신보》배달을 하는 필자(촬영-리동호기자)

민보의 글을 다는 리해할수 없었으나 조국의 7개년계획의 전망도나 귀국실현을 위한 각지 동포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은 어린 가슴에도 자극을 주었다.

***************************************

※이 계속은 회원이 되시면 열람하실수 있습니다.

 회원이신 경우, 오른쪽 또는 아래에 있는 「로그인」항목에서 로그인해주세요.

 회원등록을 희망하시는 분은 「신규회원등록」에서 등록해주세요.

 죄송합니다만 2013년 4월 20일까지 회원등록하신 분께서도 다시한번 등록해주시기 바랍니다.

 비밀번호를 잊으신 경우 「회원비밀번호분실접수 폼」을 찾아주세요.

***************************************

로그인(ログイ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