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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력사인물〉나라의 명예를 지켜 목숨바친 박제상(6)

박제상의 부인은 그가 왜나라로 떠난 뒤 딸 삼형제를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 제사를 지내며 목메여 남편을 부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후세사람들은 박제상의 부인이 남편이 떠났다는 소시을 듣고 쫓아갔으나 종시 따라잡지 못하고 모래밭우에 넘어져 길게 통곡하였다 하여 그 모래터를 《장사》(길게 통곡한 모래터)라고 불렀다. 또한 친척 두사람이 부인의 량팔을 부축하여 돌아오려고 하니 그가 다리를 뻗치고 앉아서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그 고장이름을 그후 《벌지지》(버티고있은 땅)라고 하였다. 민요 《치술령곡》도 나라의 명예를 지켜 목숨바친 박제상을 잊지 못해 부른 노래이다. 임진조국전쟁시기 일본에 통신사로 갔던 황진은 왜적에 대한 끝없는 증오를 가지고 박제상을 추모하여 이렇게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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