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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력사학학회 비망록, 《미국은 조선전쟁을 도발한 침략자》

조선중앙통신에 의하면 조선력사학학회는 24일, 《미국은 조선전쟁을 도발한 침략자이다》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비망록을 발표하였다.

우리 군대와 인민이 3년간의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에서 세계사적인 승리를 이룩하고 영웅조선, 영웅인민의 기개를 온 세상에 높이 떨친 때로부터 60년이 되여온다.

조선전쟁은 미국이 우리 공화국을 무력으로 압살하고 전조선을 타고앉으며 나아가서 아시아와 전세계를 손아귀에 틀어쥐려는 타산밑에 계획적으로 준비하고 도발한 범죄적인 침략전쟁이였다.

침략자들은 오늘까지도 조선전쟁도발의 진상을 한사코 은페하고있을뿐아니라 적반하장격으로 우리 공화국을 《도발자》로 매도하면서 반공화국압살책동에 광분하고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력사학학회는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승리 60돐을 맞으며 조선전쟁도발자로서의 미제의 흉악한 정체를 만천하에 폭로하기 위하여 이 비망록을 발표한다.

미제는 북남대결과 동족상쟁의 불씨를 안아온 침략의 원흉

조선전쟁은 미국에 의하여 산생된 민족분렬과 동족대결의 비극적산물이였다.

제2차 세계대전후 미국은 범죄적인 조선침략정책, 세계제패정책에 따라 조선의 절반땅을 강점하고 하나의 민족을 둘로 갈라놓았으며 동족대결을 부추기면서 우리 겨레에게 온갖 불행과 고통을 강요하였다.

백수십년전부터 미국은 아시아대륙의 관문인 조선을 침략하여 저들의 지배하에 넣는것을 국가정책으로 내세웠다. 미국지배층은 1845년 2월에 《조선개방안》을 국회에 상정시키고 우리 나라에 대한 침략을 실현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다하였다.

1866년 침략선 《셔먼》호의 침입을 계기로 조선침략의 길에 나선 미국은 만경대인민들과 평양성군민의 투쟁에 의해 참패를 당한 후에도 1868년 《쉐난도아》호와 《챠이나》호의 침입, 1871년의 대규모무력침공사건을 련이어 일으키면서 우리 민족을 정복해보려고 미쳐날뛰였다.

미제는 1905년 《타프트-가쯔라협정》의 체결후 일제의 조선강점과 식민지통치를 부추기면서 장차 조선을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책동을 체계적으로 감행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말기에는 조선침략정책실현에 본격적으로 달라붙어 우리 나라에 대한 점령계획을 완성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의 조국해방작전개시와 쏘련군대의 대일작전참가를 계기로 일본의 패망이 예상외로 앞당겨지자 자칫하면 조선반도전체를 잃을수 있다고 타산한 미제는 1945년 8월 10일-15일 일본군의 항복접수를 위한 《분담선》의 미명하에 38°선 분계선을 서둘러 고안해냈다. 이에 대하여 남조선출판물들도 《38°선은 미국이 쏘련에 우호적인 정부가 〈한〉반도에 수립되는것을 막으려고 그어놓은 선이였다.》라고 폭로하였다.(남조선잡지 《신동아》 1990년 7월 425페지)

미제는 38°선 분계선을 고안해낸후 태평양지역련합군 총사령관 맥아더의 《일반명령 제1호》를 통하여 조선의 38?선이남지역에 대한 군사적점령을 련합국들에 일방적으로 통지하였다.

1945년 9월 8일부터 10월말까지의 기간에 《해방군》의 벙거지를 쓴 미군이 총한방 쏘지 않고 남조선을 강점하였다.

《해방자》로 자처하는 미국이 국제협약에도 배치되게 전패국이 아닌 조선을 분할점령한것은 실로 용납 못할 범죄였다.

남조선에 진주한 미군은 단순한 강점군이 아니라 전조선을 무력으로 타고앉기 위한 침략전쟁무력이였다. 미제가 남조선에 들이민 3개사단 병력중 2개사단은 38?선접경지대에 배치되여 각종 포와 땅크, 현대적인 저격무기 등 최신무장장비들을 갖추고 임의의 시각에 침략전쟁을 일으키려고 대기하고있었다.

하기에 미국인들자체가 《실제로 조선인민을 반대하는 월가의 전쟁은 그의 장군들이 남조선에 발을 들이민 바로 그 순간 1945년 9월에 시작되였다.》고 자인하였던것이다.(미국도서 《아메리카현대사》 일문판 148페지)

트루맨의 특사가 1946년에 북남조선을 돌아보고 제출한 보고서에서 《조선은 아시아에서 미국이 성공하는가 못하는가 하는것이 걸려있는 사상상의 싸움터이다.》라고 쓴것과 해방직후 남조선을 행각하였던 웨드마이어가 정부에 보낸 보고서에 《… 조선의 통일과 독립은 미국의 전반적리익에 있어서 중대한 위협으로 되기때문에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된다. 군사점령의 범위도 전조선으로 넓혀야 한다.》라고 쓴 사실 등은 미제의 남조선강점이 북남대결과 동족상쟁을 일으키려는데 목적이 있었음을 실증해준다.(미국도서 《트루맨회고록》 제2권 일문판 224페지, 일본도서 《아메리카의 극동군사전략》 18페지)

조선의 통일독립을 반대하고 남조선의 친미주구들을 사촉하여 침략전쟁을 일으키려고 한 미제의 흉악한 정체는 군정통치과정에 적라라하게 드러났다.

1945년 9월 7일 미제는 맥아더사령부 포고 제1호를 통하여 남조선전역에서 군정을 실시한다는것을 공포한데 이어 9월 11일에는 미《군정청》을 설치하였다. 남조선강점 미군사령관 하지는 《군정청》을 남조선에 있어서의 유일한 《정부》로 선포하였으며 남조선인민들자신의 손으로 세운 인민위원회들을 강제로 해산해버렸다.

남조선에서 실시된 군정통치의 부당성에 대하여 후날 남조선사가들자체가 《태평양전구에서 군정실시가 당연시되였던 일본에는 기존의 통치조직을 활용하는 간접통치방식이 적용된 반면 준우호국민으로 간주한다던 남〈한〉에만 철두철미한 군정이 실시된 정확한 리유는 분명치 않다.》고 인정하였다.(남조선도서 《한국전쟁 38선충돌과 전쟁의 형성》 134페지)

미제가 군정통치를 통하여 노린 목적은 남조선의 진보민주세력을 탄압하고 남조선사회를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분야에 걸쳐 예속시키며 저들의 반공침략정책, 동족대결정책수행에 리용해먹을 친미반동세력을 규합해놓는것이였다.

군정통치를 반대배격하는 전체 조선인민의 투쟁기운이 높아가자 미제는 조선문제를 부당하게 유엔에 끌고가 남조선에서의 단독《선거》에 관한 《결정》을 꾸며내고 폭압과 사기협잡의 방법으로 친미적인 반공대결《정권》을 조작하였다.

미제에 의하여 남조선에 세워진 친미괴뢰정권은 《승공통일》과 《실지회복》에 환장이 된 극악한 사대매국노, 호전적인 반공광신자들의 집단이였다.

미국의 적극적인 후원밑에 괴뢰대통령자리에 올라앉은 리승만은 상전의 지령대로 미군의 계속적인 남조선주둔을 《요청》하고 북반부의 5개도에 《도지사》들을 임명하는 추태를 부리며 동족대결에 미쳐날뛰였다.

반공대결《정권》의 호전적인 정체에 대하여 미제의 어용도구로서 남조선에 기여들었던 《유엔조선위원단》까지도 《위원단은 때때로 <대통령>, 외무부장관 기타 지도적 또는 세력있는 정치가들의 성명에 주의를 돌렸는바 그 성명들에서는 … 폭력에 의한 통일방법이 종국적해결》이라고 한데 대하여 자인하였다.(1950년 9월 5일 《유엔조선위원단》보고서)

미제는 괴뢰들과 《과도기간 잠정적군사 및 안전에 관한 행정협정》을 체결하고 남조선강점을 《합법화》하였으며 쏘련군대가 공화국북반부에서 완전히 철거한 후에도 침략무력을 계속 주둔시켜놓고 북남대결을 고취하였다.

미제가 국제협약들을 짓밟고 조선침략야망, 세계제패야망에 따라 남조선을 강점하고 우리 민족에게 분렬의 고통을 들씌운 죄악의 력사는 북남대결과 동족상쟁의 원흉으로서의 정체를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미제는 조선전쟁도발준비를 주도한 장본인

남조선에 괴뢰정권이 조작된 후 미제는 공화국북반부를 침략하기 위한 전쟁준비를 본격적으로 다그쳤다.

조선전쟁도발준비를 주도한 장본인으로서의 미제의 음흉한 정체는 침략전쟁수행의 돌격대적역할을 놀게 될 괴뢰군을 편성하고 급속히 증강시킨데서 명백히 드러났다.

미제는 《군사영어학교》에서 길러낸 일본군과 괴뢰만주군, 장개석군 출신의 악질반공분자들로 《국군》을 조작하고 병력확장에 박차를 가하였다.

1949년 7월 미국무장관은 리승만역도의 《특사》와 《10만명의 상비병, 10만명의 전투경찰》을 포함한 40만명의 괴뢰군무력을 갖출데 대하여 모의하였다.(1950년 9월 5일《유엔조선위원단》보고서)

군정통치기간에 수많은 잉여전쟁물자를 남조선에 들이민 미제는 1949년에 소총, 중기 및 경기관총, 실탄, 로케트포, 각종 차량, 여러 구경의 포와 박격포탄, 함정, 비행기 등 1억 1,000만US$에 달하는 무장장비 및 군수물자로 괴뢰군을 무장시켰으며 《원조》의 미명하에 8 500만US$이상의 군사장비를 또다시 넘겨주었다.(미국 《UP통신》 1951년 5월 2일)

미제는 당시로서는 세계최대규모인 500명의 군사고문단을 남조선에 주둔시켜 괴뢰군의 지휘체계, 부대편성 등을 미군형식으로 하고 군사훈련도 거기에 맞추어 진행하게 하였다.

1949년 4월 리승만역도가 자기의 졸개에게 보낸 비밀편지에 《군력을 충분히 마련해야 북으로 밀고들어가 … 38°선의 철의 장막을 압록강까지 옮》길수 있다고 쓴바와 같이 미제가 남조선괴뢰군을 급속히 증강시킨 목적은 다름아닌 북침전쟁도발에 있었다.(《1949년 4월 10일 리승만이 조병옥에게 보낸 편지》)

괴뢰군이 북침전쟁능력을 갖춘데 대하여 미국무장관은 1951년 5월에 《… 공격이 개시되였을 당시까지 이 보안군대(괴뢰군)는 우리의 원조로써 15만명으로 증가되였다.》고 증언하였으며 1950년 6월 미군사고문단 단장은 기자회견에서 《… 남조선군대는 현재수준으로 보아 외국의 동등무력의 2~3배의 병력을 물리칠수 있는 실력이 있는것으로 본다.》고 호언장담하였다.(미국 《UP통신》 1951년 5월 2일, 《서울신문》 1950년 6월 9일)

침략전쟁준비를 주도한 미제의 정체는 전쟁계획작성 및 완성을 통해서도 더 잘 알수 있다.

미제는 조선전쟁계획(《A, B, C계획》)작성에 맥아더사령부의 《G-2》, 《G-3》과 같은 첩보공작 및 작전연구전문기관들과 전 일본군 고급장교들로 조직된 《력사반》과 《카토》기관을 인입하였다.

전쟁계획을 3단계로 나누고 제1단계는 조선침략전쟁으로부터 시작(A)하며 제2단계는 전쟁의 불길을 중국으로 확대(B)하고 마지막단계에는 씨비리에로 침공(C)하며 작전개시를 1949년으로 예견하였다.

그 내막에 대하여 일본잡지 《인물왕래》(1964년 9월 67페지)는 전쟁음모에 가담했던 구일본군대좌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였다.

《작전은 3단계로 나누어져있었다. 우선 38°선에 미군과 〈한국〉군을 포함한 10개사단을 집결하고 동부와 서부 2개의 작전구역을 만든다. 서부전선은 곧장 평양으로 진격하며 이에 호응하여 해군, 공군의 협력하에 평양북쪽에서 상륙작전을 진행한다. 동부전선은 좌익을 양덕으로 정하고 평양과 원산의 련계를 보장하며 우익은 원산을 향하여 곧바로 진격한다. 여기서도 원산북쪽으로 해군부대의 상륙작전을 진행한다. 이 두 전선이 함께 압록강까지 진격하여 조중국경을 돌파한다. 여기까지가 작전의 1단계로서 이전 일본군의 자료를 기초로 정밀한 계획이 세워져있었다. 다음으로 조중국경돌파와 동시에 작전은 제2단계에 들어가며 일본군대와 유엔군이 참가하는 순서로 되여있었다.》

미제는 북침전쟁계획의 실효성을 검증하기 위하여 《북벌》에 미쳐돌아가는 괴뢰군을 무장도발에로 내몰았다.

1947년부터 시작된 적들의 도발행위는 《북벌》계획작성이 완성단계에 들어선 1949년에 고조를 이루었다.

1949년에 적들의 무장도발회수는 전해에 비해 무려 2.8배이상인 2 617회에 달하였다.

당시 미군사고문단 단장은 《38°선을 둘러싸고 벌어지고있는 여러 사건들은 남〈한〉이 38°선북방의 일부를 점령하고있어서 발생한것이다.》고 결론하였다.(남조선도서 《한국전쟁 38선충돌과 전쟁의 형성》 388페지)

미제와 괴뢰도당의 광기어린 북침무장도발행위로 말미암아 38°선일대에서는 전쟁을 련상시키는 격전들이 6.25전야까지 계속 벌어졌다.

괴뢰군이 38°선일대의 선전포고없는 전쟁에서 거듭 참패를 당하자 미제는 조선전쟁을 도발한 즉시 유엔의 간판을 리용하여 일본주둔 미군을 투입하기로 작정하였다. 그에 따라 괴뢰군이 38°선을 돌파하고 미군을 즉시 투입하는것으로 조선전쟁계획이 수정되였으며 그 시기도 1950년으로 미루어졌다.(인디아신문 《크로스 로드》 1950년 12월 22일)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전쟁계획이 수정된 후 미제는 그 실행준비를 최종단계에서 완성하면서 자기의 침략적본성을 더욱 드러냈다.

앞으로 벌어지게 될 조선전쟁에 미공군과 해군을 신속히 투입하며 추종국가무력을 대량 끌어들이기 위한 준비가 추진되였다.

수원, 광주, 대구, 제주도, 김포 등지에 공군기지들이 건설, 확장되고 미태평양함대에 인천, 부산, 려수, 묵호, 진해 등의 항구들을 리용할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였다.

1949년 8월초 남조선에서 리승만역도와 장개석도당사이에 조선전쟁시 국민당《정부》가 비행기와 함선, 각종 무기, 탄약을 제공하고 군사인원들을 괴뢰군복장을 입혀 참전시킬데 대한 밀담이 벌어졌다.

1950년 2월중순에는 도꾜에서 맥아더와 리승만, 요시다사이에 장래의 조선전쟁에 대비한 군사동맹관계수립을 둘러싸고 모의가 벌어졌다.(미국신문 《스타즈 앤드 스트라이프스》 1950년 2월 16일)

리승만의 도꾜행각시 맥아더는 그에게 남조선이 북침전쟁을 먼저 도발하고 괴뢰군과 일본군이 공동으로 싸우며 맥아더의 지휘를 받는다는것을 골자로 한 《11개조 훈령》을 주었다.

미제는 북침전쟁준비의 일환으로서 우리 공화국의 내부실정을 샅샅이 탐지하기 위한 첩보활동을 추진시키고 《후방안정》의 간판밑에 남조선전역에서 애국적민주력량에 대한 무차별적인 탄압을 감행하였다. 《승공통일》, 《실지회복》의 광기어린 《북벌》선동으로 남조선땅은 살벌한 전쟁분위기에 휩싸였다.

미제는 북침전쟁도발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교활하고 비렬한 음모도 추진시켰다.

1949년 10월 10일 리승만의 미국인 개인정치고문은 역도에게 공격이 가장 좋은 상책이며 때로는 유일한 방어라는 점에 찬동한다, 침략의 루명을 벗기 위해서는 우리가 반대로 계속 노력하고있다는 그럴듯한 강한 인상을 미국의 관리들과 언론계에 주어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였다.

1949년 10월 미제는 유엔총회 제4차회의에서 《조선에서의 군사분쟁》을 《감시》, 《보고》한다는 미명하에 조선전쟁도발의 진상을 가리우고 흑백을 전도할 사명을 지닌 제3차 《유엔조선위원단》을 조작해냈다.

한편 조선전쟁도발후 유엔안전보장리사회와 총회들에 제기할 《기초문건》들과 《결의안》들도 미리 꾸며졌다. 이에 대해 1951년 6월 유엔담당 미국무차관보는 미국회 상원세출위원회 청문회마당에서 조선문제를 《유엔에 끌고간다는것은 결정되여있었으며 어떠한것을 말하겠는가도 대략 결정되여있었다.… 결의안의 골자만은 작성해두었다.》고 실토하였다.(미국도서 《비사 조선전쟁》 일문판 75페지)

미제에 의하여 추진된 주도세밀한 침략전쟁준비를 두고 당시 서울주재 미국특파기자는 조선전쟁이 일어난 직후에 쓴 글에서 《이번 전쟁만큼 완전히 준비되여있은 일은 우리들의 력사가 시작된이래 없는 일이였다.》고 평하였다.(미국잡지 《라이프》 1950년 7월 15일)

이러한 사실들은 미제가 대대적인 병력증강과 《북벌》작전계획의 완성, 각종 무장도발책동 등을 통하여 조선전쟁도발준비를 계획적으로 추진시킨 장본인이라는것을 만천하에 고발하고있다.

미제는 6.25전쟁방화의 주범

전쟁준비를 완벽하게 갖추어놓은 미제는 1950년 6월 25일 남조선괴뢰군을 내몰아 동족상쟁의 불을 지르게 함으로써 조선전쟁방화범으로서의 정체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1949년말 1950년초에 들어와 대내외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한 트루맨행정부는 매파인물인 덜레스를 국무성의 대외정책고문으로 들여앉히고 강경적인 극동정책으로 방향전환을 하였다. 그 골자가 바로 조선침략전쟁도발이였다.

1950년 6월 서울에 날아든 덜레스는 38°선일대의 괴뢰군진지들에 대한 현지시찰을 벌려놓고 작전지도와 모형사판까지 들여다보면서 전쟁계획을 최종검토하였다. 2차 괴뢰국회개원식에 나타나서는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공식적립장을 알려주고 《북진통일》을 암시하면서 괴뢰들에게 각방의 《원조》를 확약하였다. 이어 우리 공화국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며 유엔결정에 따라 미군이 출동할 때까지 2주일만 지탱할데 대한 지령을 주었다.

덜레스는 리승만과 괴뢰외무부 장관에게 앞으로 있게 될 《위대한 극적사변》에서 《용기와 결단》을 발휘하라고 하면서 《전쟁이냐 평화냐》라는 도서까지 쥐여주었다.(《1950년 6월 20일 덜레스가 림병직에게 보낸 편지》)

백악관의 전쟁지령이 하달된 후 남조선에는 경계령이 선포되였다.

괴뢰군의 배비변경이 진행되고 38°선일대에는 군수 및 후방물자(총량의 70%이상)들이 집결되였다. 그에 대하여 맥아더는 1951년 5월 미국회 상원외교위원회에서 《〈한국〉군은 38°선을 잃었을 때 자기의 병참선을 잃고말았다. 그들이 거기에 있던 물자들을 모조리 파괴할수 없었던것은 명백하다. 이때문에 북조선군은 자기의 최초의 일격으로 38°선?서울사이의 지역에 보급기지를 획득할수 있었고 이러한 기지의 덕택으로 생각대로 〈한국〉군을 압박할수 있었던것이다.》라고 증언하였다.(남조선도서 《한국전쟁 38선충돌과 전쟁의 형성》 402페지)

덜레스의 서울행각과 때를 같이하여 미국방장관, 미합동참모본부 의장이 도꾜의 맥아더사령부에 기여들었다. 도꾜회담의 명분은 대일강화조약문제라고 하였으나 그것은 한갖 기만에 불과하였다.

당시 도꾜주재 미국기자들자체가 도꾜회담내용을 두고 《조선이나 대만문제가 토의되는것 같다.》, 《최신최대형을 포함한 미국특별폭격기편대가 즉시 극동에 날아갈것이 명령되였다.》라고 신문지상에 보도하였다.(미국신문 《뉴욕 타임스》 1950년 6월 20일, 《뉴욕 포스트》 1950년 6월 28일)

결국 이들의 도꾜행각은 덜레스의 서울행각과 마찬가지로 이미 기정사실로 되여버린 조선전쟁에 미극동군부대들을 투입하는 문제를 결정하고 전투준비태세를 현지에서 검토하기 위한것이였다. 이들은 미극동군의 군사기지들에 대한 시찰을 진행하고 도꾜의 궁성광장에서 미군부대들의 때아닌 열병식도 벌려놓았다. 그들이 떠나간후 주일미군의 비행기들은 출동대기상태에 들어가고 군용트럭들에 대한 도색작업이 벌어지는 등 복닥소동이 일어났다.

미제는 조선전쟁도발직전에 미국인가족 수백명을 인천에 머무르고있던 노르웨이선박에 실어 은밀히 남조선에서 빼내갔으며 전쟁도발자의 정체를 가리우기 위한 각종 서투른 기만극을 연출하였다.(미국신문 《뉴욕 헤랄드 트리뷴》 1950년 8월 26일)

《유엔조선위원단》의 현지감시반이 38°선 시찰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간 6월 23일 밤 10시부터 38°선북쪽지역에 대한 괴뢰군의 대대적인 포사격이 시작되였다. 다음날인 24일 4시까지 적들은 옹진반도에서만도 105mm류탄포와 81㎜박격포로 200여발의 포탄을 발사하였다.(일본신문 《아사히신붕》 1950년 6월 26일)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미제는 괴뢰군부대들을 내몰아 마침내 침략적이며 범죄적인 조선전쟁을 도발하였다.

미제는 조선전쟁이 일어나자마자 사전계획대로 허위와 기만으로 일관된 남조선주재 미국대사와 《유엔조선위원단》의 보고라는것을 유엔에 제출하고 유엔안전보장리사회 긴급회의를 소집케 하였다. 회의에서 확인조차 하지 않은 허위보고자료에 근거하여 공화국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우리 군대의 38°선에로의 철퇴를 요구하는 《결의》 제82호를 강압적으로 조작해냈다. 당시 《결의》에 찬성투표를 한 영국대표자체도 서울에 주재하고있는 외교관으로부터 전투개시를 확인한데 불과하였다고 토설하였다.(미국도서 《비사 조선전쟁》 일문판 66페지)

미제는 유엔안전보장리사회 《결의》 제83호가 채택되기 12시간전에 주일미공군과 미제7함대를 조선전선에 파견하여 본격적인 군사작전을 개시하였으며 7월 7일에는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서 미군주도하의 침략무력을 조직할데 대한 《결의》 제84호를 조작하고 《반공십자군원정》에 나섰다.

침략자, 도발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터무니없는 《남침기습설》을 떠들며 세상사람들을 기만하였으나 인류의 량심과 정의를 결코 속일수 없었다.

세계의 공정한 여론에 의하여 조선에서 침략전쟁, 동족상쟁의 불을 지른 도발자, 방화자들의 정체는 적라라하게 드러났다.

미국도서들자체가 《실제로 공격개시로 선정된 시기는 북조선측의 견지에서 볼 때 대단히 부적당한 시기인듯이 생각되였다. 바로 그전 월요일에 리승만반대파가 압도적다수를 차지한 새 국회가 서울에서 소집되였던 탓이다. 내부로부터의 압력에 의해 곧 통일교섭에 나설 준비가 되여있는 새 정권으로 전환할지도 모를 정권을 왜 공격했을가? 공격개시에 불리한 또 하나의 리유가 있었다. 쏘련은 그해 1월 공산중국의 유엔가입불승인에 항의하여 유엔보이코트를 시작한 이래 안보리사회에 출석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북의 《남침기습설》에 의문을 표시하였다.(미국도서 《비사 조선전쟁》 일문판 87페지)

조선전쟁방화의 주역을 맡았던 맥아더역시 《이 전쟁은 나의 계획이였다.》고 실토하면서 침략전쟁을 도발한 죄행을 스스로 인정하였다.(미국도서 《아메리카현대사》 일문판 152페지)

제반 사실은 조선반도에서 동족대결과 상쟁의 화근을 만들고 침략전쟁의 불집을 터뜨린 장본인, 전쟁방화범은 다름아닌 미국이라는것을 립증해주고있다.

미제는 남조선에서 모든 외국군대를 철거시킬데 대한 1975년 11월 유엔총회 제30차회의 결의에 배치되게 남조선에 계속 틀고앉아 반공화국압살과 새 전쟁도발책동에 광분하였다.

6.15자주통일시대의 흐름에 역행하여 조선반도정세를 또다시 전쟁국면에로 몰아가고있는 장본인도 다름아닌 미국이다.

미제는 우리의 정정당당한 《광명성-3》호 2호기의 발사와 자위적인 제3차 지하핵시험을 계기로 유엔에서 온갖 부당한 《제재결의》들을 련이어 조작하고 조선반도에 핵전쟁의 불구름을 몰아오고있다.

미국은 지난 1950년대의 조선전쟁에서 방대한 병력과 최신형무장장비들을 총동원하고서도 조선인민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도장을 찍은 치욕의 력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제2의 조선전쟁을 일으켜 그 무엇을 얻을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망상에 불과하다.

만일 미제와 적대세력들이 신성한 조국강토에 한점의 불꽃이라도 튕긴다면 희세의 선군령장들의 손길아래 무적의 백두산혁명강군으로 장성강화된 우리 군대와 당의 두리에 철통같이 뭉친 인민은 정의의 핵보검을 틀어쥐고 한결같이 떨쳐나 침략자와 매국노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을 기어이 성취하고야말것이다.

위대한 천출명장 김정은원수님께서 계시여 세기를 내려오며 계속되는 조미대결전은 선군조선의 빛나는 승리로 결속될것이다.

(조선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