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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3세대가 한 학교에서 배우는 기쁨/안중근

2013년 05월 21일 10:06 민족교육

새 희망과 포부를 안고 2013년도 입학식을 지낸지 벌써 한달이상이 흘렀다. 올해 입학식은 여느해와는 달리 류다른 기쁨과 축복으로 꽉찼다.

참으로 력사적인 입학식이라고 할수 있다. 규모가 큰 학교, 그것도 력사가 오랜 학교에서는 례사로운지 모르겠으나 창립력사가 겨우 50여년, 졸업생수도 다른 학교에 비하면 많지 못한 우리 학교에서는 잊을수 없는 입학식이 되였다.

그것도 그럴것이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 딸 3세대가 군마조선초중급학교에서 배우게 되였으니 력사적인 경사로 될수밖에 없었다.

나는 새로 입학한 초급부 1학년 꼬마들의 명단을 정리하면서 그들의 보호자들의 이름을 확인하였다.

입학식 날에 신입생과 함께 그 부모들도 소개하기 위해서이다.

정세가 어려운데다 경제형편도 어려운데 가까이 있는 일본학교가 아니라 전차를 타고 뻐스를 타는 머나먼 통학길을 마다하지 않고 아이들을 우리 학교에 보내주는 부모들을 동포들앞에서 자랑스레 소개하기 위해서이다.

명단정리를 하는 과정에 나는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어느 신입생의 할아버지가 우리 학교 졸업생이였다. 할아버지는 우리 학교 초급부 2기졸업생이다(1962년졸업, 당시는 중급부는 없음). 또한 신입생 아버지는 중급부 29기(1994년졸업) 졸업생이다.

(옳지! 이 사실을 크게 알려야 되겠구나. 이것이야말로 민족교육의 자랑찬 력사가 아닌가! 이보다 더 자랑스러운 일은 없을것이다.)

그런데 그 가정에는 동포들에게 널리 선전해야 할 또 한가지 사실이 있었다.

이미 《조선신보》지상에서 소개되였는데 그 신입생은 왕복 3시간이상의 통학길을 혼자서 다녀야 한다. 그것도 1시간에 1, 2번밖에 안다니는 전차를 2번이나 갈아탄다. 딸애를 혼자서 보내기는 너무 걱정이여서 큰 결심을 해야 할 부모님의 심정이야 오죽하겠는가. 우리 학교에는 대담한 조치가 요구되였으며 지부, 가정과의 긴밀한 협조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취해진 조치는 부모가 도중역까지 매일 자동차로 데려와 전차를 1번만 갈아타게 하고 다음 역에서 상급생이 마중을 나와 그와 함께 학교에 다니도록 하였다. 또한 하교시에는 매일 교원들이 함께 전차를 타고 그를 도중역까지 데려가다가 마중을 나온 부모님께 보내는 조치를 취하였다.

하루이틀도 아닌 1년동안 그렇게 하자면 부모님은 장사나 가정일이 희생되는데 여간한 결심이 아니면 못할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 일은 우리 가정에 있는 애로된 문제로만 볼수 없다. 이 지역(도모지역)에서는 초미의 문제이다. 언제인가 난제의 돌파구를 열어야 하는데 우리 가정에서 해야겠다. 어렵다고 주저해서야 되겠는가.》고 굳게 결심을 다졌다.

그리하여 바로 이 가정에서 손자가 입학하게 된것이다. 입학식날 신입생의 할아버지는 귀여운 손자의 미더운 모습을 사진기에 담으려고 정신없이 샤타를 눌렀다.

나는 입학식에서 인사보고를 마치자마자 동포, 학부모들에게 이 뜻깊은 일을 소개하였다.

《여러분! 오늘 많은 신입생이 들어와 우리를 기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더없이 경사롭고 기쁜 일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우리 학교에서 3세대에 걸쳐 배우게 된 자랑스러운 가정이 나왔습니다. 우리 학교의 력사에 새로운 한 페지를 기록할 경사입니다. 우리 학교가 창립되여 50여년이 되는 력사에서 제1호말입니다. 그건 할아버지, 아버지, 그 딸 3세대가 이곳 군마초중에서 배우게 된 기쁨입니다.》

그랬더니 그 할아버지는 우두커니 서있다가 동포들의 박수갈채를 받고서야 정신차려 자신이 50여년전 군마초중을 졸업한것을 새삼스레 인식한것이였다.

입학식이 끝난 후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하였다.

《참으로 감개무량하다. 나도 자식도 그리고 손녀도 같은 학교에서 배우게 될줄이야 상상도 못했었다. 교장선생님의 말을 들으니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이며 우리 가정이 제1호라니 더없이 기쁘고 영예롭다.》 하며 못내 기뻐하였다.

할아버지의 그 말을 들으니 나 역시 기쁨을 금치 못하였다.

민족교육이야말로 재일조선인운동의 생명선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렇구나 하는 현실을 눈앞에 보며 가슴이 뿌듯했다.

어떤 사람들은 《최근에 학생수가 줄어드니 걱정이다. 먼길을 다니게 하는데 걱정이 많다.》면서 우리 학교에 보내기를 주저하군 한다.

이 가정의 모습을 통해 어떤 곤난이 앞을 막아도 우리 학교는 우리 손으로 지키며 발전시켜야겠다는 결심을 새로이 한 동시에 새 세대가 있는 한 민족교육의 불씨는 절대로 꺼지지 않는다는것을 새삼스럽게 확신하였다.

영예로운 민족교육의 새 학년도가 시작된 지금 나는 교장으로 사업하는 보람을 더더욱 느끼고있다.

《고등학교무상화》적용을 기어이 실현시키려는 뜨거운 마음이 담긴 종이두루미가 일본 방방곡곡에서 우리 학교에로 날아왔다. 그리고 문부과학성으로, 또한 스위스 제네바에로 날아갔다.

휘황한 미래에 대한 꿈을 싣고 선대들이 세우고 지켜준 우리 학교를 새로운 세대가 지키고 발전시켜줄것이라는 확신을 안고 나도 민족교육전선을 굳건히 지키리라 성의껏 두루미를 접었다. 3세대가 베우는 자랑스러운 학교에서…

(군마초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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