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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대결에 종지부 찍고 잘 살 때가 왔다》/핵전쟁의 위협, 체험자들의 목소리

【평양발 리태호기자】해외동포기자에게 공손히 인사를 해준 소박한 녀성은 미국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몸을 내밀며 《원쑤미제에 대한 분노》를 털어놓았다.

《악마와 같은 미국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려야 한다. 어째서 살인귀들이 우리 땅에 앉아 계속 조선사람들을 못살게 하는가.》

미국에 대한 원한을 털어놓는 백화순씨(사진 리태호기자)

《야수적학살》의 기억

황해남도 재령군에 사는 백화순씨(72살)는 9살때 아버지를 잃었다. 28살이였던 그의 아버지는 인민들의 안전을 위한 보위부 련락원으로서 활동하고있었는데 미군의 일시적인 강점하에 있었던 지금의 황해남도 신천군 신흥에서 미군병사와 괴뢰앞잡이들에게 잡혔다. 미군병사들에게 목을 줄로 매이고 끌려갔던 그의 아버지는 그만 생매장당하여 숨을 거두었다.

전쟁시기 미국이 핵폭탄을 떨군다는 이야기가 돌아가 남쪽에 피난해간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 길에서 폭격에 맞아 많은 사람들이 숨졌고 식당에서 일하던 그의 고모도 그때 희생되였다고 한다.

아버지를 잃은 백화순씨는 방공호에서 생활하고 공부도 하였는데 신천의 다른 방공호들에서는 미군이 사람들을 가두어놓고 불을 지르거나 수류탄을 던져넣어 집단적으로 학살하는 만행이 벌어졌다고 한다.

《원한의 땅》 신천에서 미제침략자들이 감행한 귀축같은 주민학살만행은 60여년이 지난 오늘도 조선인민들의 가슴속에 분노와 함께 새겨지고있다.

1950년 12월 7일 미군은 400명의 어머니와 102명의 어린이들을 화약창고에 가두어놓고 머리우에 조짚과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으며 수류탄까지 던져 무참히 학살하였다. 신천군에서는 3만 5,383명이 학살당하였다. 그들중 거의 절반이 어린이, 로인, 녀성들이였다.

《비록 내가 나이는 들었으나 지금이라도 당장 총을 잡고 달려가 원쑤들을 갚고싶다. 미국이 조선에서 저지른 야수적인 만행과 전후의 핵위협, 악랄한 경제제재의 부당성을 온 세계에 전해달라.》

절절히 당부하는 백화순씨의 눈에는 뜨거운 것이 고여있었다.

리병학씨(사진 리태호기자)

대대로 이어져온 원한

1950년 12월 5일 미군은 평양의 대동강, 강원도 양양군, 사리원-해주도로 등에서 피난하는 조선사람들에게 폭격과 기관총사격을 가하였다. 당시 미국대통령이 《원자탄을 투하할 생각》이라고 발표(11월 30일)한데 놀라고 남쪽으로 피난하려고 한 인민들이 이때 미군의 폭탄과 총알에 맞아 희생된것이다.

평양은 미군의 폭격으로 페허가 되였다. 전쟁전 평양시의 인구는 46만 4,000명, 면적은 52k㎡였다. 전쟁전기간에 평양시에 투하된 폭탄의 수는 42만개를 넘었다.

락랑구역에 거주하는 로동자 리병학씨(48살)는 가족들에게 전해져온 피맺힌 원한을 토로하였다.

그의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는 전쟁시기 미군의 일시적강점하에 있었던 평양에서 미군과 그 지휘하에서 활동하던 치안대에게 학살당하였다. 그의 할머니는 목을 매이고 끌려가 참혹하게 학살당한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자식들, 손자들에게 대대로 전하면서 반드시 원쑤를 갚고싶다고 가슴치며 통곡하군 했다고 한다.

그의 맏딸은 지금 포병으로서 군사복무를 하고있다. 그는 나라를 지키는 전선에 서있는 딸을 자랑으로 여기고있다.

《미국은 핵공갈과 회유기만으로 우리에게 변화를 바라는것 같은데 말도 안된다.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로선을 받들어 보란듯이 경제강국, 사회주의문명국을 건설함으로써 미제가 더이상 조선을 건드리지 못하게 할것이다.》

리신석직장장(사진 리태호기자)

고통의 대가 받아내야

핵무기를 휘두르며 세계를 제마음대로 정복하려던 미국은 정전협정체결 이후에도 조선사람들에게 갖은 고생을 강요해왔으며 핵공갈, 전쟁위협을 되풀이하고 가혹한 경제제재를 들씌워왔다.

평양화력발전소 타빈보수직장 리신석직장장(51살)은 미국과 추종세력들의 경제제재로 인하여 전력생산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은데 대하여 강조한다. 그는 그동안의 시련과 고통의 대가를 받아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였다.

90년대의 《고난의 행군》, 강행군의 나날, 이곳 발전소에서는 설비, 기재들을 보수, 수리하는데 필요한 자재와 비품의 수입통로가 막혔다. 조미합의에 따라 제공되여있었던 중유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정상적인 전력보장을 못했다. 미국의 대조선고립압살정책의 영향을 받았던것이다. 이곳 로동자, 기술자들은 자력갱생의 정신을 발휘하여 자체로 기술개건을 하고 전기생산을 보장하였다.

리신석직장장의 아버지는 남조선에서 넘어온 의용군으로서, 어머니는 철도근무원으로서 조국해방전쟁에 참가하였다. 한편 그의 외아들은 현재 군사복무를 하고있다.

그는 《지구상에는 미국이 손들라고 하면 손드는 나라밖에 없는것 같은데 이 기회에 미제를 우리 땅에서 쓸어버리고 조선사람의 본때를 보여주고싶다.》고 말하였다.

리경화씨(사진 리태호기자)

평천구역에 사는 가정부인 리경화씨(39살)는 아들이 전쟁을 무서워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김정은원수님만 계시면 반드시 승리하며 나라도 강성부흥한다. 너는 걱정말고 공부랑 축구랑 열심히 하라.》고 이야기해준다고 한다.

그는 인민들이 더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도록 하겠다고 하신 령도자의 의도를 받들어 아이들에게 평화롭고 행복만이 넘치는 조국을 넘겨주는것이 어른들의 의무라고 말한다.

《다른 나라에 총하나 쏜적이 없는 우리 나라 인민들이 어째서 허리띠를 조이며 살아야 했던가. 이제는 참지 못한다. 세기를 이어온 대결전에 종지부를 찍고 우리 민족이 편안히 잘 살 때가 왔다.》

(조선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