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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대진재피해지 이와떼동포들의 오늘

《하루하루 정신없이 일할뿐》

2년전에 들이닥친 동일본대진재로 인하여 이와떼현 연안부는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 해일피해 등으로 자택과 점포를 잃은 동포들이 이전의 일상생활을 되찾기까지는 아직 멀었다.

오오즈찌쬬내에는 아직도 진재의 흔적이 생생히 남아있다.

가설점포에서 운영재개

이와떼현에서는 오후나도씨, 가마이시씨, 오오즈찌쬬에 사는 동포들의 자택, 점포가 큰 피해를 받았다. 집을 잃은 동포들의 대부분은 진재발생후 1년이내에 행정에서 빌려준 주택, 가설주택 등에 들어갔다. 점포를 잃은 동포들의 영업은 몇단위를 제외하여 재개되였다.

총련본부에 의하면 가마이시시에서 비데오렌탈점을 경영하던 어느 동포는 업종을 음식업으로 바꾸어 일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가마이시시에서 음식점을 경영하던 동포들은 가설점포에서 영업을 재개하였는데 올해 11월에는 시중심부에 새로 점포를 꾸릴 예정이라고 한다.

총련본부 최성수위원장은 《지진직후와는 달리 현재는 행정과의 문제가 제기되고있기 때문에 조직적으로 할수 있는 지원에는 제한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총련본부에서는 진재발생이래 달마다 꾸준히 피해동포들을 찾아가 격려하고있다.

언제인가 다시 같은 곳에서

모리오까로부터 자동차로 약 2시간. 오오즈찌쬬에 사는 동포들을 찾았다. 오오즈찌쬬는 진재당시 해일피해와 함께 대규모의 화재가 발생한 곳이다.

하원일씨(58)도 원래 이곳에서 음식점을 경영하였다. 《점방은 크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대로부터 50년가까이 계속해온 불고기가게로서 단골손님들도 많았다.》고 돌이켜본다.

2011년 12월 가설점포에서 영업을 재개한 하원일씨

그러나 해일과 화재에 의하여 순식간에 점포를 잃었다. 점포에는 자택도 병설하고있었기때문에 진재후 4개월간은 피난소에서 생활하였다. 그후 가설주택으로 이사하였다.

그는 대진재당시를 돌이켜보면서 《충격때문에 머리속이 텅 비여 아무런 생각도 못하였다.》고 말한다.

당시 하원일씨한테는 조국에서 보내온 위문금과 각지 동포들로부터 보내온 지성어린 지원물자들이 전달되였다. 또한 교또에 사는 조카의 발기에 의하여 교또부청상회 회원들이 오오즈찌쬬에서 식사공급을 하여 피해입은 사람들을 위문, 격려하였다.

영업이 재개된것은 2011년 12월이였다. 오오즈찌쬬중심부에서 좀 떨어진 산기슭의 가설점포에서 영업을 하고있다.

수도와 가스장치, 의자, 탁상, 주방기구 등의 비품조달, 벽과 마루색칠 등의 내장은 하원일씨와 부인이 다 해내였다.

메뉴의 가지수는 종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어들었으며 불고기용 로스터는 가정용 가스콘로로 대신하고있다. 하원일씨는 《이제 와서 모든것을 잃게 되였다는 실감이 난다.》고 심정을 토로한다.

매달 제1, 제3 화요일을 제외하여 오후 5시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영업을 하고있다. 손님들의 대부분은 복구작업을 위해 현장에 들어온 공사관계자들과 지원자들, 가설주택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하원일씨에 의하면 《손님들이 많은 날도 있지만 전혀 없는 날도 있다. 총체적으로 보면 이전보다 매출액은 떨어지고있다.》고 한다. 부인 真澄씨(53살)는 《지금은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나가고있다. 앞날에 대한 생각은 아직은 못한다.》고 말하였다.

하원일씨는 《진재발생이전에는 1년 365일 바쁘게 일하고있었다. 가설주택에 들어간 후부터 점포가 재개될 때까지는 온종일 아무것도 할 일이 없이 그저 멍하니 지내고있었기때문에 사람들이 몹시 그리웠다.》고 피해동포들의 심정을 대변하였다.

가설점포의 계약기간은 2년이며 그후의 전망은 없다고 한다. 《단골손님을 위해서도 언젠가 오오즈찌쬬에 돌아가 다시 그곳에서 점방을 경영하고싶다. 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겠다. 지금은 그저 정신없이 일할뿐이다.》

(주미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