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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조선정전협정체결 60돐

2013년 02월 12일 14:09 론설・콜럼

올해는 조선정전협정체결 60돐이 되는 해이다.정전협정은 현재의 조미관계의 출발점으로,조미관계의 력사성을 리해함에 있어서 필수의 전제문제로 된다.

조선측이 주도

1953년 7월 27일 10시 판문점에서 조선측과 중국측의 대표를 일방으로 하고 미국을 우두머리로 한 《유엔군》을 다른 일방으로 하여 조선정전협정이 체결되였다.협정은 모두 5 개조 63개항으로 되였다.협정은 조선측이 제시한 기본원칙에 따라 체결되였다.서문에서 정전은 평화협정체결까지의 잠정적조치라는것을 명시하고 본문에서 정전의 공고성을 보장할수 있게 하는 구체적인조치들을 규정하였다.뿐만아니라 협정발효후 3 개월이내에 관계국들의 정치회의를 열고 조선에서 모든 외국군대의 철거,조선문제의 평화적해결 등의 제문제를 토의할것을 규정함으로써 조선의 통일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하여놓았다.정전협정의 조인은 미국의 패배를 의미하였다. 《유엔군》총사령관 클라크는 《나는 력사상 승리하지 못하고 정전협정에 조인한 최초의 미군사령관》이 되였다고 통탄하였다.

더구나 《유엔군》이란 유엔헌장에 위반된것이였다. 유엔군은 안보리와 유엔가입국간의 병력제공협정 체결(43조), 안보리 상임리사국 전원의 참모장으로 구성되는 군사참모위원회의 설치(47도)를 결성조건으로 하는데 병력제공협정을 맺은 나라는 없었고 쏘련이 안보리를 보이코트하고있었다. 조선전쟁에 참전한 《유엔군》은 다국적군이였다.

리행을 짓밟아온 미국

정전협정조인직후인 8월 8일에 《한미호상방위조약》을 가조인하여 미군의 남조선주둔을 규정하였다.정전협정에서 규정된 정치회의는 54년 4월 아시아문제의 해결을 위한 제네바회의의 일환으로서 조선,남조선,중국,미국,쏘련,영국,프랑스의 참가밑에 시작되였다.조선대표는 외국군대의 철거와 전조선위원회의 조직,남북조선총선거를 통한 평화적통일실현의 방안을 제시하였다.이에 대하여 미국대표 덜레스와 남조선대표만이 반대하였으며 덜레스는 회의도중에서 귀국하여 회의자체를 파탄시키고말았다.이후 정전체제는 장기간에 걸쳐 지속되게 되였다.

평화협정의 모색

정전협정은 평화를 의미하지 않았다.미국은 58년이후 정전협정을 위반하여 각종 핵무기를 남조선에 반입하였다.정전위원회 및 중립국감독위원회의 기능도 상실되여 90년대에는 새로운 정전기구로 바꾸어졌다. 세계를 긴장시킨 충돌사건도 빈발하였다.88년이후 《비핵화》문제를 둘러싸서 조미접촉이 시작되여 여러번 합의문이 조인되였으나 미국의 《압력》정책은 달라지지 않았다.사실상 정전체제는 조미간의 《힘의 균형》으로 보장되고였었다.

조선은 세기를 이어온 미국과의 《전면대결전》을 선언하였다.미국은 힘으로 조선과 대치하는 기반이 이제 허물어졌다.조선외무성은 《대전》의 종결은 전투행위가 아니라 정치담판에 의해서도 이루어질수 있다고 공언하고있다.미국은 정전협정의 정신으로 돌아서서 평화협정체결의 길에 나서야 한다.

(조선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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