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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포구경하며 새해 2013년 맞이

제야를 종소리가 아니라 축포로

4.25문화회관광장에서 본 축포모습(평양지국)

새해 2013년을 맞으며 0시를 기점으로 평양시내 곳곳에서 축포가 발사되였다.

수만의 시민들이 모여 축포구경으로 새해의 새날을 맞이하였다.

시민들누구나가 새해를 축포로 맞이하는것은 이해가 처음이라고 말하고있었다.

4.25문화회관광장에서 축포를 보며 환호하는 시민들(평양지국)

평양의 토배기시민들은 원래 새해를 맞는 시각에 종을 울리며 새날을 맞는것이 조상전래의 풍습의 하나였다고 말하고있다.

1946년 설을 맞으며 평양종이 울리였다고 한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1890년대부터 경사를 맞을 때나 새해, 날마다에 울려온 종을 일제의 40여년간의 식민지통치기간 울리지 못한데 대하여 이야기하시면서 해방된 새 조선에 조상전래의 풍습대로 평양종을 울리도록 하시였다.

1990년대에도 평양시민들은 섣달그믐날밤이면 평양종이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새해의 첫날을 맞이하군 하였다.

력사유적인 평양종의 보존과 관련하여 그후부터 인민대학습당의 종소리가 평양종을 대신하게 되였다.

평양시민들에게는 고유한 설맞이로정이 있다.

시민들은 만수대언덕에 모신 김일성주석님의 동상을 찾아 인사를 드리고 김일성광장에 모여 인민대학습당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새해를 맞군 하였었다.

김일성광장에서 축포를 구경하는 시민들(평양지국)

어떤 젊은이들은 친구의 집들이나 식당들에서 송년회를 하다가 12시를 앞두고 김일성광장에 모여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새해를 맞기도 한다.

올해 2013년 양력설을 앞둔 김일성광장과 4.25문화회관, 통일광장과 만경대학생소년궁전앞에도 가족들끼리 혹은 친구들이나 직장동료들끼리 모인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였다.

31일 평양의 저녁은 북서풍이 3~6m로 불고 기온이 령하 10℃정도로 몹시 추웠으나 시민들은 맵짠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축포가 오를 광장들에로 모여들었다.

저녁 10시경부터 모여든 사람들로 광장들에는 그야말로 립추의 여지조차 없었다.

어린애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온 가족들도 있고 그 붐비는속에서도 로라스케트를 타고도는 어린 학생소년들도 있었다.

정각 0시 새해 2013년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축포가 터져올랐다.

순간 곳곳에서는 와- 하는 환성소리가 터져오르고 여기저기서 풍선들이 날아오르기도 하였다.

김일성광장에서 축포를 구경하는 시민들(평양지국)

시민들은 각양각색의 황홀한 축포를 보며 환성을 올리기도 하고 또 어떤 시민들은 박수를 칠념도 못하고 무아경에 빠져 밤하늘을 쳐다보고있었다.

휘파람을 부는 청년들과 손벽을 치다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처녀들도 보였다.

사진기와 촬영기를 준비하여 가지고온 시민들은 축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시작부터 전과정을 동화상으로 촬영하기도 하였으며 손전화기로 축포오르는 모습을 찍는 시민들도 있었다.

가족과 함께 김일성광장에서 축포구경을 하고난 남성시민(29살, 정무원)은 밤하늘을 꿰지르며 솟아오르는 축포를 보며 조선의 인공지구위성이 또다시 솟구쳐오르는것을 보는것만 같다고 하였다.

평양장경중학교의 처녀교원(24살)은 담임한 학생들과 함께 교실에서 새해맞이노래모임과 다과회를 끝내고 나왔다며 뜻깊은 2012년을 보내고 김일성조선의 새로운 주체100년대가 시작되는 2013년에 터져오르는 축포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고 말한다.

《2009년에 있은 축포야회때에도 김일성광장에서 터져오르는 축포를 보았었다. 후에야 알았지만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 희한하고 장쾌한 축포야회를 우리 인민이 2012년에 진행하게 될 경축대회의 시연회나 같다고 하시였었다.》

그는 2013년을 맞으며 발사된 축포는 새해를 맞는 시민들의 기쁨을 담은것은 물론이거니와 보다는 김일성조선의 새로운 주체100년대의 장엄한 시작을 알리고 더욱 휘황한 앞날을 예고하는 예광탄으로 생각된다고 말한다.

【평양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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