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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일본정부의 《무주지선점》 주장은 기만이다

일본이 령유권문제를 가지고 주변 나라들과의 마찰을 일으키고있다.

일본의 총우익화

독도(일본명 다께시마)와 釣魚島 및 그 부속도서(일본명 尖閣諸島)의 령유권을 둘러싸서 일본의 정계와 언론계가 《일본고유의 령토》라고 요란하게 떠들어대고 조선 및 중국과 정면으로 충돌하고있다.

그런가 하면 《중립적립장》을 표방하는 일부 사람들은 나쇼날리즘의 무익한 대립을 지양시켜 공동으로 경제, 관광 개발을 하자고 하면서 령토문제의 근원을 외면하고있다.

오늘 동북아시아지역의 국가관계는 과거에도 볼수 없었던 위험수위에 오르고있으며 일본사회도 총우익화되여가는 징조를 나타내고있다.

《무주지선점》

일본반동들이 저들의 주장의 가장 중요한 근거로 《무주지선점》의 법리를 내걸고있다.

무주지선점이란 이른바 《대항해시대》인 16세기이래 처음에는 에스빠냐, 뽀르뚜갈, 뒤늦게 영국, 네데를란드 등 서유럽렬강이 토지는 《발견》할뿐만아니라 실제로 경영하여야만 령유권을 가진다고 합의한 법리이다.

무주지선점은 ①대상지가 무주지 ②국가가 령유의 의사를 표시 ③지속적이고 평화적인 주권의 발현의 3조건을 성립요건으로 한다.

이 법리는 서유럽렬강의 식민지획득을 정당화하는 궤변이고 이로 인하여 식민지화된 《무주지》에 사는 선주민들은 보이지 않는 존재로 무시되고 말살되여왔다.

사실의 은페, 외곡

일본당국은 독도는 1905년 1월의 각의결정, 조어도는 1895년 1월의 각의결정으로 《무주지선점》의 법리에 따라 일본에 편입한것으로서 청일전쟁, 로일전쟁의 강화조약에 의한 割譲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무주지선점의 3조건에 비추어보아도 성립되지 않는다.

사실을 보면 일본 명치(明治)정부는 그 이전시기부터 독도, 조어도가 조선, 중국의 령유하에 있었다는것을 인식하고있었다. 또한 일본은 령유의 의사표명조치를 상대국뿐만아니라 국내에서도 취하지 않았다.

일본은 독도와 조어도를 로일전쟁과 청일전쟁의 혼잡한 틈을 타서 강화조약 이전에 침탈하였던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일본인연구자들도 인정하고있다.

일본반동들의 독도, 조어도와 관련한 망언은 결코 력사적인식의 무지나 법률적판단의 착오로부터 나온것이 아니다.

해외팽창야망에 들뜬 일본반동들이 의도적으로 사실을 은페, 외곡함으로써 독도, 조어도문제는 《의연》하고 《랭철》한 태도로 대한다고 하는 한편 《종군위안부》는 《법적으로 해결》된 문제라고 떠벌이며 회피하고있다.

2중적인 태도를 취하는 일본당국은 어떻게 하나 저들의 《정당성》을 과시하여 일본사회에 《애국주의》를 고취하는 또 하나의 기회로 삼으려 하고있다.

(조선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