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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인민항쟁

2012년 10월 15일 14:23 메아리

재일동포속에서 10월인민항쟁을 아는 사람은 이제는 적게 되였다.

◆《쌀을 달라》는 요구를 들고 1946년 10월에 궐기한 이 투쟁에는 230만명의 로동자, 농민, 시민, 학생이 참가하여 남조선 전역을 뒤흔들었다. 이 항쟁은 19세기말 갑오농민전쟁에 비길만한 규모로 불타오른 민중의 항쟁이였다.

메아리◆10월인민항쟁의 특징은 종래 보수적이라고 하던 농민이 일제시기를 릉가하는 미제의 가혹한 식량공출강요에 항거하여 일떠선것이다. 미군정청과 결탁한 지주, 부패한 관료배는 식량난을 기화로 쌀값을 천정부지로 폭등시키고 민중을 도탄의 괴로움속에 빠뜨렸다.

◆10월인민항쟁은 바로 이런 미군의 식민지정책에 맞서 싸운 투쟁이였다. 트루맨도 《회고록》에서 인정하듯이 미점령군은 민중을 사격하여 학살했고 리승만테로집단도 도처에서 살해, 파괴활동에 광분했다.

◆10월항쟁은 70일간 계속된 치렬한 투쟁속에서 사망자와 행방불명자 3,900여명, 부상자 2만 6,000여명, 검거자 1만 5,000여명이라는 심대한 희생자를 내였다.

◆해방직후 남조선민중속에는 《미군은 해방군》이라는 인식이 한때 있었다. 그러나 미군의 잔악한 탄압을 직접 체험한 민중들은 이것이 환상이라는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였다.

◆미제는 이때 인민의 창의로 조직되고 해방직후의 혼란된 치안과 사회질서를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논 인민위원회를 해산시키고 인민의 반대를 류혈적탄압으로 누르며 단독선거, 단독정부수립을 강행했다.

◆38도선설정을 제기하고 민족을 분렬시킨것은 미제다. 조선의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였다. 이 분렬의 비극을 고정화하고 리승만괴뢰정권을 내세운것도 또한 미제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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