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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성동맹결성 65돐기념 도꾜동포녀성들의 축하모임에서, 뜨거운 마음 토로

계주봉을 이어받아 힘차게 전진

녀성동맹결성 65돐기념 도꾜동포녀성들의 축하모임이 1일 도꾜 우에노에서 진행되였다. 모임은 젊은 세대부터 고문들까지 광범한 동포녀성들의 참가밑에 저고리패숀쇼, 소공연 등 다채로운 연목들로 장식되였다. 모임은 민족교육을 지키고 동포들의 제반 권리옹호를 위해 힘차게 투쟁을 벌려온 녀성동맹의 빛나는 65년간의 발자국을 가슴에 세겨 앞으로는 모두가 힘을 합쳐 동포사회를 지켜나가자는 열의로 충만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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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회장에는 그러한 뜨거운 마음으로 무대에 올라 발언한 녀성들이 있었다.

안병옥고문

도꾜도본부의 안병옥고문(83살)은 올해 4월 김일성주석님탄생 100돐을 경축하는 재일동포녀성대표단 단장으로 조국을 방문하였다. 안병옥고문은 작년말 뜻밖에 김정일장군님을 여읜 상실의 아픔과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고 김정은제1위원장의 령도따라 힘차게 나아가는 조국인민들의 모습을 통하여 강성국가건설의 밝은 미래는 반드시 펼쳐진다는것을 조국에 체류하는 동안에 확신하였다고 한다. 《최상최대의 민족적명절이라는 뜻깊은 자리에 참가할수 있었던것만이라도 영광인데 그간 김정은제1위원장의 육성을 직접 듣게 되였을뿐만아니라 그이를 3번이나 몸가까이 모시는 최상의 영광도 지녔다.》고 가슴뜨겁게 말하였다. 열병식장의 주석단에 나오시여 그들을 향하여 손을 저어주신 젊으신 김정은제1위원장의 모습을 보면서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시려 불철주야로 현지지도의 길을 이으시며 온갖 로고를 바치시다 순직하신 김정일장군님께서 그 자리에 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고 생각하니 눈물을 금치 못하였다고 말하였다. 녀성동맹결성 65돐을 맞는 올해 오늘까지 한평생 주석님과 장군님을 모시고 살아왔던것처럼 앞으로 제1위원장을 받들어모시고 녀성동맹조직과 조국통일위업실현을 위하여 더 힘껏 사업해나가겠다고 다짐하였다.

김복련고문

조선대학교를 졸업한 후 50여년간 오직 녀성동맹사업의 한길에서 살아왔다고 하는 도꾜도본부의 김복련고문(76살)은 참으로 보람찬 나날이였다고 돌이켜보았다. 그 동안 배우지 못한 자기의 슬픔과 고통을 자식들에게 다시는 물려줄수 없다고 한품 두품 모은 돈을 학교에 바치면서 민족교육을 지켜왔을뿐아니라 비가오나 눈이 오나 적들의 박해와 탄압을 박차고 귀국과 조국왕래실현, 민족교육권옹호투쟁에 나서는 할머니, 어머니들의 애국적인 모습에 고무격려되였으며 힘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인생속에서 잊지 못할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1973년 제1차 재일동포녀성조국방문단으로 조국을 방문하고 김일성주석님의 영광을 지닌 접견을 받은것이다. 《주석님께서 내 어깨를 두드리시고 장하오, 장하오라고 하시면서 앞으로도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꿋꿋이 투쟁해야 한다고 하신 말씀은 나의 사업과 삶의 지침으로 되였다.》. 그는 녀성동맹일군으로서 걸어온 한생을 긍지와 자랑으로 여기고 김정은제1위원장을 중심으로 단결하여 지난 시기와 마찬가지로 조국인민들과 숨결을 같이 하면서 녀성동맹사업과 고문회사업에서 힘써나가겠다고 말하였다.

리정애부위원장

쥬오고또지부 리정애부위원장(59살)은 오늘까지 20년이상 분회장과 비전임부위원장의 직책을 맡아 사업을 벌리고있다. 녀성동맹조직과 접하게 된 당시는 모르는것이 많은 속에서도 나어린 딸의 손을 잡고 다니며 분회와 지부모임에 참가하군 하였다. 그때마다 자기들을 따뜻이 보살펴준 동포들의 사랑이 고마왔다고 감회깊이 돌이켜보았다. 《녀성동맹은 흔히 무섭다, 시끄럽다, 집요하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어수선한 일본의 사회환경속에서 아이들을 지키고 생활의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의연히 나서야 할 때가 있다.》고 하며 밝은 미래를 내다보며 더 빛나게 사업해나갈 결의를 다졌다.

죠난지부 《자라라회》의 책임자를 맡는 홍애순씨(33살)는 오사가에서 출생하여 2001년에 도꾜에 취직하였다. 낯설은 지역에 이사온 후 몇년동안에는 재일조선인운동과 거리가 멀어진 시기도 있었으나 아는 선배들의 초청으로 인권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게 되였다. 작년에는 딸이 태여난것을 계기로 우리 학교에 대하여 《밖에서 지원하는 사람》이란 인식에서부터 당사자라는 인식으로 달라졌다고 하는 그는 보다 많은 우리 아이들이 우리 학교에 입학할수 있는 사업의 일환으로 잠시동안 중지되여있었던 학력전 어리니와 엄마들의 교류마당인 《자라라회》를 죠난지부 현경옥위원장들과 함께 다시한번 가동시켰다.

홍애순씨

《나처럼 다른 지방에서 와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상황에 있는 사람이 우리 유치원, 우리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지역동포들과 일상적인 교류를 하고 학교와 련계를 가지면 자연히 아이들을 우리 학교에 보내게 될것이다.》.

그는 주로 어머니세대의 녀성들과 아이들이 그 마당을 즐길수 있게 다양한 기획을 조직하고있으며 학교와 지부하고도 련계하면서 활동을 벌려나가겠다고 결의하였다. 그는 또한 기혼자, 미혼자 관계없이 보다 광범한 녀성들이 참가할수 있도록 하는것이 중요하다며 《재일조선인운동에서 선대들이 구축한 업적을 따라배워 더욱 빛내여나가면서 앞으로 자기가 해야할 일, 할수 있는 일을 찾아나겠다.》고 결의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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