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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아동문학〉그림토끼들의 운동회 -하- / 최낙서

2012년 05월 21일 12:48 주요뉴스

맨 마지막경기를 장식한 종목은 사람 찾아 달리기였어요.

곰은 웅성웅성 떠들어대는 구경군들에게 잠간만 조용해달라고 부탁하고나서 호르래기를 불었어요.

삽화 김조리

《호르륵!》

곰이 부는 호르래기의 신호에 따라 토끼들은 학생들이 앉아있는쪽으로 총알같이 달려갔어요. 자기를 그려준 학생을 데리고 뛰게 되여있는 경기였으니까요.

이번에도 철호의 토끼가 맨앞에서 달려왔고 달수의 토끼가 두번째로, 수남이의 토끼가 세번째로 달려왔습니다.

보나마나 철호의 토끼가 1등을 할것은 뻔하였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도 다 있습니다.

달수와 수남이의 토끼는 자기의 주인을 제꺽 찾아가지고 함께 달려가는데 철호의 토끼는 먼저 달려오긴 했으나 자기를 그려준 주인을 도무지 찾아내지 못하는것이였어요.

재빛토끼는《철호야!- 철호야!-》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운동장을 뱅글뱅글 돌아갔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있던 검둥이도 안타깝던지 《철호야! 빨리 나가렴.》 하고 말하는것이였습니다.

그러자 철호는 벌떡 일어나 재빛토끼앞으로 달려나가며 소리쳤어요.

《나 여기 있어! 여기… 》

아니 그런데 이걸 어쩌면 좋겠습니까.

철호의 그림토끼는 두눈이 휘둥그래지더니 《난 널 잘 모르겠는데…》 하고는 훅 지나가는것이였습니다.

《재빛토끼야, 넌 주인도 몰라보니? 내가 철호란 말야 철호!》

화가 난 철호는 짜증 섞인 말투로 이렇게 소리치고는 무작정 재빛토끼의 손을 잡아들었지요.

《안돼. 네가 대신 뛰여주면 안된다니까.》

재빛토끼는 철호의 손을 뿌리쳤습니다.

그리고는 또다시 《철호야- 철호야!》 하고 고함을 지르며 저쪽으로 급히 뛰여가는것이였지요.

그러자 운동장에는 《와하하하…》 하고 웃음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

망신을 톡톡히 당한 철호는 얼굴이 새빨개서 그 자리에 멍하니 못박힌듯 서있었습니다.

학생들은 서로 마주보며 별일도 다 있다고 중얼중얼 떠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였습니다.

철호를 안타깝게 찾아다니던 재빛토끼가 너무 기뻐 껑충껑충 뛰며 큰 학생들이 앉아 구경하는곳으로 냅다 달려가는것이였어요.

《철호야, 너 여기 있으면서 왜 대답도 안하니?! 빨리 뛰자!》

재빛토끼가 무작정 잡아끄는 바람에 한참이나 줄줄 따라갔던 철남이는 겨우 손을 뽑아가지고 냅다 달아나고말았습니다.

운동장에서는 또다시《와하하하…》 웃음통이 터졌어요.

《저 앤 철호 형이 아냐?》

《그러게말이야!》

《응, 이제야 알았어. 철호의 그림을 철남이가 대신 그려준게로구나!》

《그 말이 맞았어. 야- 망측두 하네. 숙제야 제힘으로 해야 공부가 되지 그게 뭐람.》

《글쎄말야, 철호는 엉터리로구나》

아이들이 서로 왁자지껄 떠드는바람에 철호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싶었습니다.

이때 학생들의 말을 듣고있던 검둥이가 철호의 옆구리를 툭 치며 물었어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검둥아, 좀 가만있지 못하겠니?》

철호는 덤벼대는 검둥이에게 눈을 흘겼습니다.

사실 철호는 어제 그림숙제를 하다가 잘 안되니까 형님인 철남이한테 그려달라고 졸라댔습니다. 그래서 형님이 그린 토끼를 이튿날아침 슬쩍 가져다냈던것이랍니다.

그런데 이렇게 망신을 당할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림토끼들의 운동회에서는 달수의 토끼가 1등을 하였지요.

심판원인 곰은 영예의 우승을 한 달수가 그린 그림토끼의 목에 화려하고 우아한 꽃목걸이를 걸어주었습니다.

운동장에서는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어요.

철호의 재빛토끼는 너무 분해서 쿨쩍쿨쩍 소리내여 우는것이였답니다.

눈물을 흘리는 재빛토끼를 바라보고있던 철호는 그냥 앉아있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림토끼에게 다가가 말했어요.

《재빛토끼야, 참 안됐어. 내 잘못으로 해서 너까지 망신을 당했구나. 이제부터는 그런 일이 없을테니 너무 섭섭해 말아.》

그러자 재빛토끼도 한결 마음이 놓이는듯 주먹으로 눈물을 뻑뻑 문지르며 빙그레 웃었어요.

검둥이도 그제야 모든것을 알아차렸던지 옆에 와 입을 헤 벌리고 앉아있었습니다.

철호는 자기의 재빛토끼를 번갈아 바라보고있는 검둥이의 발쑥한 코를 콕 찔러주며 말했지요.

《나도 이제 숙제를 내 힘으로 꼭꼭 한단 말이다. 알겠니?》

《히야!》

검둥이는 너무 기뻐서 고개를 횡횡 저었습니다.

그림토끼들의 운동회가 끝난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맑게 개여있었습니다.

1977. 2 《아동문학》

(작품소개-조선대학교 교육학부 언어교육강좌장 맹복실)

작가소개

최낙서(1933∼)

동화작가. 황해남도 삼천군(참정리) 출생. 김일성종합대학부설 작가과정 리수후 작가동맹 맹원이 되였다. 아동문학창작 전공이며 현재 조선문학출판사 근무. 교훈적성격의 소설이 많으며 알려진 작품으로서는 중편소설 《개구리박사의 려행》, 《꿀단지》, 《나무자물쇠의 선물》외에 단편소설, 시, 야담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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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토끼들의 운동회 -상-

(조선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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