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3년생. 東大阪조선중급학교, 茨城조선초중고급학교 사범과, 조선대학교 통신학부 졸업(당시). 静岡조선초중급학교, 東京제2초급에서 교편을 잡았다. 고학년 집단장, 6학년 담임.
연분홍 벗꽃이 만발하게 피여난 4월11일, 번쩍거리는 새 교사에서 배우는 도꾜조선 제2초급학교 6학년 교실을 찾았다.
국어수업. 윤명실교원(59)은 학생들에게 과제로 준 짧은 글을 발표시켰다. 최근년간 도내 우리 초급학교들에서는 짧은 글짓기에 대한 교육연구가 심화되고있다. 이날 과제는 《몸이 굳어지다》와 《앞장서다》를 써서 각각 2개이상의 문장으로 된 짧은 글을 짓는것이다. 윤교원은 학생들이 발표한 짧은 글을 칠판에 써놓고 《고칠 곳이 없을가?》 물어본다. 학생들은 제 힘으로 문장을 다듬어간다. 윤교원은 《5학년시기에 배운것처럼 이음말을 쓰면 2개의 문장을 쉽게 이을수 있어요.》라고 설명하였다.
6학년 국어의 제1과는 《우리는 학교의 맏이》라는 이야기글교재다. 주인공인 《나》는 축구소조에서 하급생들의 본보기가 되려고 애쓰고있다. 그러나 6학년생들이 운동장 뒤처리를 하는 당번날이 되자 같은 6학년 소조원인 《수남이》가 난데없이 《그런건 4학년생들에게 시키지 뭐.》라고 우기는 바람에 화가 난 《나》와 《수남이》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진다.
윤교원은 이 글교재를 놓고 학생들에게 여러 질문을 던지면서 새로 배우는 단어들의 뜻과 사용방법에 대해 함께 생각하도록 한다. 올봄부터 《학교의 맏이》가 된 학생들에게 교재의 내용을 실지 자기 생활과 비추어 생각시키는것은 빠뜨리지 않는다.
등장인물의 감정을 살려 읽도록 지도하는데 《나》의 분노와 《수남이》의 반발을 학생들은 리해하면서도 막상 교과서를 읽어나가면 정확히 발음하는데 신경이 쏠려 감정표현이 잘 되지 않는다. 결국 감정을 살려서 읽는것은 숙제가 되였다.

40년이상 우리 아이들의 교육에 열정을 기울여왔다.
윤교원은 42년의 교원생활의 대부분을 도꾜제2초급에서 보내왔다. 3명의 아이를 낳아 키우고 에다가와재판을 싸우면서 중단없이 교단에 서왔었다. 《이전 교사는 큰비가 오면 물이 새여서 교실바닥에 5cm정도 물이 고였다. 그래서 비온 다음날 첫교시째는 학생들과 물을 퍼내였다.》는것도 이제는 즐거운 추억으로 되였다. 에다가와재판도 인상깊다. 《제 힘으로 학교를 지켜야 하는데 우리의 힘만 가지고서는 어쩔수도 없는 절박한 상황속에서 정말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때 겪었던 심각한 시련이 재일동포가 놓인 가혹한 현실과 민족교육의 현장에 대해 세상에 널리 알리는 기회가 되였다. 남들이 뭐라 해도 민족교육을 리해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 민족의 차이, 거주지의 울타리를 벗어난 많은 량심들의 지원에 얼마나 고무되였던가. 우리 교육을 아끼고 지키려는 량심의 힘으로 재판에 이긴것이 정말 기쁘다. 그 시련을 통해서 많은 친구를 얻은것도 참 좋았다.》
윤교원은 에다가와재판을 계기로 조선학교 학생들과 조선어로 이야기해보고싶어하는 일본시민들의 요구에 따라 조선어강좌 《미래》의 강사를 맡아있다. 《미래》는 올해 8년째를 맞이한다. 또한 전교생이 우리 글로 창작한 문집 《〈만경봉〉호》는 42호를 발간했다. 이것은 도꾜제2초급의 소중한 재산으로 되고있다.(김윤순)
교육의 현장에서 경험이 풍부한 어머니교원은 귀중한 존재다. 결혼생활에 있어서 지금도 녀성들의 부담이 많은 속에서 녀성은 자주성을 꽃피우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가정과 직장에서는 일하는 녀성의 의지와 자세를 존중해주면서 그들이 최대한 힘을 발휘할수 있도록 적절한 역할을 수행할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윤교원의 민족교육에 대한 마음은 순수하고 강하다. 학생들은 물론 젊은 교원들의 지도에도 열성을 기울이고있다. 그는 하루에 1시간이상, 년간 150여시간 다른 교원의 국어수업을 방조하고있다. 민족교육의 기둥인 국어교육에 대해 타협을 모르는 교원이다.
42년간 우리 말 문집을 계속 발간하는것도 쉽지 않다. 윤교원자신이 도꾜제2초급뿐만아니라 민족교육의 귀중한 재산이다.
(리화숙 東京제2초급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