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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 100년사》의 유산/계승되는 주석님의 업적 1

2012년 04월 10일 10:26 공화국

주체사상 창시 / 강성국가, 《자체의 힘으로 건설한다》

대조고의 시발 마련한 강선의 정신력

2012년까지 강성대국의 대문을 활짝 열어제끼자 – 천리마의 고향을 찾은 령도자의 호소가 새로운 대고조를 일으켰다. 2008년 12월 24일, 추운 겨울날이였다.

초고전력전기로 제작

그날 김정일장군님께서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를 찾으시였다. 지난날 강선제강소라고 불리운 이곳 기업소는 금속공업의 정수라고 할수 있는 초고전력전기로를 수개월사이에 제작하여 령도자를 모시였다.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 초고전력전기로

천리마제강에서 설계,제작한 초고전력전기로

국내 굴지의 강철생산기지인 천리마제강의 낡은 생산공정을 최첨단기술에 기초한 공정으로 갱신하는것은 2000년대 들어 계속 제기되여온 현안이였다. 핵심과제는 초고전력전기로의 도입이다. 앞선 나라들은 60년대에 그것을 실현하여 강철의 질을 보장하면서 생산원가를 낮추었다. 조선에서도 80년대에 국산화를 위한 연구에 착수하였다.

90년대 후반의 경제적시련을 이겨내여 《고난의 행군》의 승리적결속을 선포한것이 2000년이다. 그동안 강철공업의 미루어져왔던 과제가 다시 부상하였다. 당초의 계획은 최신설비들을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 사들이는것으로 되여있었다.

천리마제강의 오랜 기술자인 리재경씨(75살)는 계획에 동원되면서도 《남에 의거하는 방식》에 내심 반대했었다. 금속공업성 부상이 직접 틀어쥔 사업이 결실을 맺을수 있도록 방조를 주기는 했으나 주대없이 일이 벌어질 때면 주저없이 의견을 주었다. 대립과 갈등이 빈번했다.

《생산현장의 로동자들은 애당초 자체의 힘으로 해결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였는데 간부들은 <기술신비주의>에 사로잡혀있었다.》

누가 시키지는 않았으나 리재경씨는 초고전력전기로의 설계에 착수했다. 때를 같이하여 외국산설비의 도입계획이 난관에 부딛쳤다. 자금문제가 걸리고 국제정세에도 변화가 있었다. 미국의 부쉬정권은 과거의 조미합의를 모두 백지화하고 대결로선을 추구하였다. 교전국 조선의 강철증산을 달가와하지 않은 미국의 의향이 사방나라들의 손발을 묶었다. 초고전력기전로를 사들이는 계획은 좌절을 강요당했다.

자력갱생의 전통계승

몇해동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태가 지속되였는데 2007-08년에 걸쳐 새로운 기운이 싹텄다.금속공업의 현대화는 투자를 많이 먹는데 단번에 하려고 하지 말고 자금이 마련된데 따라 생산에서 은을 낼수 있는 부분부터 하나하나 실현해나가야 한다. -전국의 방방곡곡을 찾으시여 현지지도강행군을 이어가시는 장군님의 심중에는 천리마제강의 현대화문제도 자리잡고있었다. 그이께서 제시하신 문제해결의 방법론이 현장의 기술자, 로동자들에게 전달되였다.

조선의 실정에 맞는 초고전력전기로의 설계는 그 시점에서 이미 완성되여있었다. 한번 결심하다보니 설비제작은 와닥닥 해제낄수 있었다.

천리마제강의 로동자, 기술자들은 자기 힘을 믿는 주체사상의 신봉자들이다. 리재경씨는 초고전력전기로의 제작은 《우리가 강선의 넋을 되찾은것》이라고 말한다.

《강선의 로동계급에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심어주신 분은 김일성주석님이시다. 일제를 타도하시고 조국에 개선하신 주석님께서 지척에 있는 만경대고향집에 들리시기 전에 강선제강소 로동계급을 찾으시여 조국건설의 주인이 되라고 가르치시였다. 그래서 모두가 분발하여 일제가 파괴한 설비도 빠른 시일안으로 복구했었다.》

강선 방문한 주석님

강성제강소를 찾으시여 천리마작업반장과 담화하시는 김일성주석님

50년대의 전후복구건설시기에는 이곳 기업소에서 천리마대고조가 일었다. 이미 제시된 계획에다가 1만t의 강재만 더 생산하면 나라가 허리를 편다-1956년 12월 강선을 찾으신 주석님의 호소가 시발점을 마련하였다.

《주석님께서는 항상 앞날을 내다보시고 국사를 펼치시였다. 우리는 전후에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는 로선을 택했다. 그때 기계에서 밥이 나오냐고 하면서 그것을 남에게 의거해야 한다고 하는 종파분자들의 헛소리에 넘어갔더라면 우리는 오늘처럼 강성국가건설을 다그칠수 없었을것이다.》

1956년 12월과 2008년 12월. 령도자들의 강선방문은 목적과 의도가 같았다. 자력갱생에 의한 혁신을 호소하는것이였다. 그리고 대고조가 일었다.

최첨단돌파의 실력

김정일장군님께서 천리마제강을 찾으신 후 경제분야에서 획기적인 사변들이 있었다. 주체철, 주체섬유, 주체비료 등 국내의 원료원천에 기초한 제품생산이 본 궤도에 올랐다.

천리마제강에서 제작된 초고전력전기로는 단순히 자력갱생의 산물이라는데 머무르지 않는다. 기술적측면에서도 최첨단수준에 도달한 설비다. 례컨대 천리마제강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전기로에 대한 전력공급최량화의 기술은 세계에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것이다.

조선에서 초고전력전기로의 국산화를 실현했다는 소식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리재경씨에 의하면 당초 설비를 사들이는 대상으로 상정했던 유럽나라에서도 대표단이 여러번 파견되여왔다.

천리마제강 리재경씨

초고전력전기로의 설계에서 중심역할을 수행한 리재경씨

《조선이 초고전력전기로를 불현듯 내오는것을 보니 기술혁신에 관한 그 무슨 비밀기관이 있는듯 싶다고 그들이 말하기에 주체사상을 신조로 삼는 조선의 로동계급은 다른 나라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강한 정신력을 발휘하여 무에서 유도 창조한다고 대답해주었다.》

국내에서도 초고전력전기로와 쇠물을 쏟아내는 천리마제강의 강철직장을 참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당과 국가의 책임일군들, 자력갱생의 본보기를 따라배우려는 전국의 공장, 기업소 지배인들이 이곳을 찾았다.

참관자들속에는 인공위성의 개발과 제작에 참여하는 과학자, 기술자들도 있었다. 천리마제강의 기술자 리재경씨에 의하면 그들이 자력갱생의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옛 강선땅을 찾은것은 2009년 2월, 《광명성-2》호발사의 두달전이였다고 한다.

《천리마대고조의 시대를 살았던 우리와 같은 세대도 전기로분야에서 최첨단을 달리는데 인공위성을 개발하는 젊은 기술자들의 수준이야 알고도 남음이 있다.》

 2012년의 위성발사

2009년 4월의 시험통신위성 《광명성-2》호의 발사는 2012년을 향한 인민들의 대고조진군을 힘있게 고무추동하였다.

한편 1990년대 후반의 고난의 행군시대, 인민들이 생활고에 시달리던 나날에 어렵게 결정한 기술투자가 훌륭한 결실을 맺은것으로 하여 경제부흥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번졌다. 2012년을 향한 대고조의 불길이 타오르는 가운데 세계최점단의 CNC(콤퓨터수치제어)공작기계의 계렬생산이 실현된것이다. CNC는 정밀한 기계공학의 결정체인 인공위성과 운반로케트의 제작에 있어서도 불가결의 기술이였다.

《사람이 모든것의 주인이며 모든것을 결정한다.》-그 원리가 조선인민을 강자로 만들었다. 객관적조건이 아무리 어려워도 목표를 달성하는 묘술을 찾아내게 하였다.

주체사상에 기초한 자립적민족경제로선, 그 도달점이 김일성주석님 탄생 100돐에 즈음하여 과시된다.

적대국들과의 치렬한 대결전속에 주석님께서 일떠세우신 자주, 자립, 자위의 나라를 굳건히 지키시여 현지지도강행군으로 강성부흥의 도약대를 마련하신 장군님께서 2011년 12월 17일, 달리는 야전렬차에서 순직하시였다.

광명성 2호 발사

자립적민족경제로선이 인공지구위성의 발사라는 성과를 안아왔다. (사진은 2009년의 《광명성-2》호 발사장면. 조선중앙통신)

그러나 조선은 주춤거리지 않았다. 장군님의 유훈을 한치의 드팀도 양보도 없이 관철해나갈데 대한 방침을 김정은최고사령관께서 제시하시였다.

《김일성동지의 탄생 100돐을 맞으며 실용위성을 쏴올리는것은 김정일장군님의 유훈이며 오래전부터 계획되고 추진되여온 정상적인 사업이다.》(조선외무성 대변인 3.27)

2012년 4월 조선의 첫 실용위성 《광명성-3》호의 발사계획이 추진되였다.  나라의 경제발전에 이바지하는 최첨단기술의 결집체는 앞으로 개발, 제작되여나간다.

새로운 주체100년대의 개막-자체의 힘으로 강성국가를 건설해가는 조선의 의지는 확고부동하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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