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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단결의 중심에서 / 최고사령관의 령도력 3〉 최고사령관 취임, 선군로선의 진두지휘자

공격전으로 주도권 장악

【평양발 김지영기자】김정일장군님을 추모하는 중앙추도대회의 이튿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는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최고사령관취임을 선포하였다.

《전략적요충지》론

적대국들과 치렬한 대결전을 벌리는 조선인민에게 있어서 《최고사령관》은 가장 애착이 가고 제일 먼저 부르고싶은 령도자의 호칭이다. 김일성주석님도 김정일장군님도 그 호칭으로 불리웠다.

최고사령관께서는 활동의 시작을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서 떼시였다. 짧은 기간에 포병, 보병은 물론 공군, 해군을 비롯한 군정, 병정, 전문병 분야에 정통하시고 군사작전과 리론을 터득하시였다. 뛰여난 천품과 남다른 예지는 담당교원들의 감탄을 자아내였다고 한다. 당시를 회고하여 교원들은 장군님의 군사전략사상의 요구를 철저히 구현하고 주체전법을 능숙히 활용한다면 《우리는 그 어떤 우세한 적도 능히 타승할수 있다는것이 김정은동지의 신념이였다.》고 말한다.

한편 그이의 사상리론적예지는 《군사분야에 한정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어린 시절에 벌써 과학론리적사유에 기초한 독창적인 정치학적개념의 정식화를 하신바 있다.》는것이다.

실례의 하나가 《지정학적숙명론》에 대한 반론이다. 조선은 큰 나라들의 짬에 끼여서 각축전의 무대로 될수 밖에 없다는 사대주의, 민족허무주의적인 사고방식을 부정한것이다. 탁월한 령도자를 모신 오늘의 조선은 《불리한 위치》가 아니라 《전략적요충지》에 있다는것이 그이의 결론이였다.

최근년간 적대국들의 요진통을 찔러 련전련승을 기록한 조선의 선군외교에 관통된것도 이러한 《전략적요충지》에 관한 사상이다. 2009년 인공위성《광명성2호》의 발사를 문제시한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을 배격하고 《6자회담 불참가》와 《자위적핵억제력 강화》의 립장을 밝힌 조선외무성 성명에도 《국력이 약하여 주변렬강들에게 유린롱락당하다가 끝내는 일제에게 통채로 삼키웠던 100년전의 치욕의 력사를 되풀이 할수 없다는것이 우리의 자주, 선군의 기본취지이다.》는 구절이 있다.

천리혜안의 지략

1월에 공개된 영화문헌에 따르면 장군님께서는 우리 대장은 나를 닮았다, 그의 신념과 의지가 얼마나 강하고 배짱이 센지 어떤 때에는 나도 탄복할 정도라고 평가하신적이 있다.

최고사령관께서 장군님의 선군령도를 받드는 《군사보좌관》으로 활동하실 때부터 그러한 배짱과 령도실력이 과시되여있었음을 말해주는 자료들이 적지 않다. 조선의 선군은 무턱대고 힘을 쓰는 일이 없다. 단호한 결단에 앞서 언제나 천리혜안의 지략이 있었다.

2010년 미군과 남조선군은 《천안》호침몰사건을 구실삼아 조선반도주변에서 대규모 군사연습을 실시하였다. 이해 11월에는 연평도일대의 조선측 수역에 포사격을 가하는 무모한 군사적도발을 감행하기에 이르렀다. 어느 자료에 의하면 그동안 조선인민군은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으로 적들의 전쟁기도를 분쇄하였으며 연평도수역에서는 호전세력들이 더 이상 도발하지 못하게 《대담하고 무자비한 대응타격》을 단행하였다.연평도포격전 이후의 사태진전은 최고사령관의 《전략적요충지》에 관한 사상의 진리성을 반증해주는것으로 되였다. 포격전의 두달후에는 중국과 미국의 수뇌외교에서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이 주요의제로 다루어졌다. 2010년 7월에는 조미고위급회담이 시작되였다.

최고사령관의 국정운영을 한마디로 집약하면 《선군의 기본취지》에 충실한것이라고 말할수 있다.

2월에 발표된 국방위원회 정책국 공개질문장에도 시사적인 구절이 있다. 질문장은 조선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체제수립을 위한 조미최고위급군사접촉이 이미 시작된 사실을 밝혔다. 자기 나라 인민을 존엄높은 인민으로 되게 하는데 목적을 두는 조선의 선군로선이 앞으로 미국과의 외교전에서도 남김없이 발휘되여나갈것이라는 관측들이 벌써 나오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