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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 졸업생들의 부모들, 크게 성장한 아이들을 보며

미더운 조선청년으로 자라난 아들과 함께

계속되는 경제불황, 조국과 조직에 대한 언론들의 악선전, 우리 학교의 통페합으로 인한 먼거리통학 등 동포들이 아이들을 우리 학교에서 배우게 하는 그 자체가 더욱더 어려워지고있는 환경속에서 대학에 이르는 체계적인 민족교육을 시킨 부모들의 심정을 조대 졸업식장에서 들었다.

망설임속에 아들을 보내여

조대 8개 학부의 졸업생들은 사람마다 가정형편이 다르고 부모들의 조대에 대한 표상, 리해정도도 다르다.
그러니만큼 자식들의 졸업후의 진로문제 등 입학당시 부모들이 안게 된 불안과 망설임은 각양각색이였다.

오사까부에 거주하는 강철수씨(51살), 신복순씨(48살) 부부의 경우도 그러했다. 강부부의 장남 강상언학생(경영학부, 오사까출신)과 장녀인 강애미학생(교육학부 보육과)은 올해 조대를 함께 졸업하게 되였다. 아들은 오사까부하 상공회 일군, 딸은 유치반 교원으로 각각 사업하게 된다.

부모들은 이날 인생의 새 출발을 하게 되는 아들, 딸을 축복하기 위해 조대를 찾았다.

그런데 아들이 조대에 진학할 때만 하여도 결코 그에 열렬한 찬동을 표시한것은 아니였다.

아버지인 강철수씨는 중급부로부터, 어머니인 신복순씨는 고급부로부터 각각 일본학교를 다녔기에 조대에 대한 아무 지식도 표상도 없었다고 한다.

주변에는 《이런 시대에 조대를 졸업하여 어디로 취직할것인가.》, 《일본대학을 다녀 일본기업에 취직하는것이 먹고 사는 길이다.》 등의 의견들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민족교육의 화원속에서 진짜 벗들을 찾았다.

그러나 아들이 조대에서 축구를 계속할것을 열렬히 희망하였으므로 최종적으로는 본인의 의향을 존중한것이다.

2년후에는 장녀인 강애미학생이 조대에 입학하였다. 부모의 슬하를 떠나 생활하게 되는 장녀를 걱정한 아버지의 마음을 돌리게 한것도 그의 등을 민것도 《내가 있으니 아무 걱정말고 애미를 조대에 보내달라.》는 아들의 미더운 한마디였다고 한다.

한편 장남, 장녀를 포함한 6남매를 모두 우리 학교에 보내는 부모들의 경제적 부담은 컸다. 自営業을 하는 부모는 자식들에게 민족교육을 시키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쉴새없이 일하였다.

아들이 조대에 입학한 후 어떻게 학창생활을 보내고있는지 한번도 자기 눈으로 보지 못한 강부부에게 있어 《방학때마다 보게 되는 아들의 모습을 통해 조대생활을 엿볼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신복순씨는 아들의 성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고 한다. 《자기 일은 자기가 해결한다는 자세가 섰을뿐만아니라 자기자신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몰라보게 깊어지고 그 과정에 자신의 인생길을 걸어가는데 흔들림없는 주대가 서게 되였다. 하는 말도 미덥게 되였고 부모들이나 둘레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행동으로 표시하게 되였다. 조대에서의 규률이 센 조직생활, 친구들과 열성적인 선생님들과의 만남, 학습과 소조활동이 아들에게 깊은 사고력을 안겨주고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다.》

부모들의 기대와 사랑에 보답하듯 학습과 소조생활을 꾸준히 해온 강상언학생은 1부 졸업식에서 론문상을 수여받았다. 축하연에서는 고생을 끼쳐온 부모들에게 《아버지, 어머니의 협력없이는 이와 같은 성장도 경험도 못하였다. 정말로 고맙다.》고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였다.

신복순씨는 《실지로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어 모든 가정이 조대진학을 선택할수 있는것도 아니다. 그런데 조대에는 자기자신의 삶에 대하여 깊이 사색하는 환경이 있고 그를 안받침해주는 친구들과 교원들이 있다. 그래서 우리 아들은 남에 대하여 감사할줄 알고 집단속의 자신, 동포사회속의 자신에 대하여 생각하고 행동할줄 아는 인간으로 성장할수 있었다. 정말로 감사하고있다.》고 소감을 피력하였다.

《지금은 진로문제로 고민하는 우리 학교 학부모들한테서 상담받으면 어지간한 목적이나 마음으로 일본대학에 진학할바에야 오히려 자식들을 사회성이 높고 순진한 인간으로 키워주는 조대에 보내는게 낫다고 적극 권유하고있다.》

학교가 아이들을 키워주었다

동포사회를 둘러싼 환경변화로 인해 우리 학교 학생수가 지난 시기에 비해 줄어들어도 해마다 이곳을 떠나게 되는 학생들의 얼굴마다에는 희망과 자신감이 넘쳐있다.
그런 모습이 부모들로 하여금 조대에 아이를 보낸 보람을 새삼스레 간직하게 한다.

걱정을 기친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랑독하였다.

리동석학생(정치경제학부, 도꾜출신)의 어머니 리선자씨(52살, 니시도꾜거주)는 3남매의 장남인 리동석학생을 꼭 조직일군으로 키워내고싶은 일념으로 조대진학에로 등을 밀었다. 리선자씨는 홀로 3남매를 키워왔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쉴새없이 일하면서 아들을 조대에 보낸 보람을 제일 느낀것은 다름아닌 크게 성장한 아들의 모습이였다고 한다. 《작년말 동석이는 알바이트로 돈을 벌고 동창생들과 함께 조대 대표로 조국을 방문하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바로 조국과 조직, 조대와 선생님들의 안받침이 있었기에 아들이 참된 조선청년으로 자랐구나 하고 감사의 마음을 금치 못하였다.》고 말하였다.

김태우씨(51살, 오까야마조선초중급학교 교원)와 어머니 오선희씨(51, 히로시마현거주)의 딸인 김진아학생(문학력사학부)은 자신들이 졸업한 문학부(당시)를 졸업하게 되였다.

진아학생은 《어린시절에는 아버지가 집에서는 상냥한데 학교에서는 엄하게 되니 교원으로 사업하는 아버지가 싫었다. 하지만 한편 학생들을 제 자식처럼 키우는 아버지 모습을 보면서 어린 마음에도 교원을 한다는것이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였다.》고 한다. 또한 4남매를 키우느라 사회복지사자격까지 받아 일하는 어머니에 대해서도 깊은 감사를 전하였다. 김진아학생은 장차 교원으로 사업하게 된다.

딸의 모습을 보면서 오선희씨는 《나는 아이들에게 밥을 먹여주고 생활을 보장해주었을뿐이고 그외는 다 우리 학교가 아이들을 키워주었다. 우리 학교에서 배우던 딸이 앞으로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립장이 된다. 믿음직한 조선사람으로 키워주어 참으로 감사하다.》고 말하였다.

(조선신보)